중국 공산당 1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중화인민공화국)에서 5년마다 열리는 중국 공산당 대회는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이다. 사전에 치밀하게 짜인 각본 아래 주연·조연 배우들과 엑스트라들이 한 치 빈틈없이 차기 5년 중국을 이끌어갈 지도부를 선출한다. 이곳에서 새로운 주연(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정치국 위원)이 탄생하고 역할을 다한 주연·조연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기도 한다.
시진핑(習近平) 각본·감독·주연의 이번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의 ‘피날레’를 장식한 ‘폐막식’에서 이변(異變) 내지는 ‘돌발 상황’이 연출됐다. 주인공은 지난날 중국 정치의 ‘주역’이었던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중국 공산당 총서기이다.
10월 2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폐회식 중 시진핑 오른편에 앉았던 후진타오가 행사 도중 수행원들 손에 이끌려 돌연 퇴장했다. 당시 행사를 중계 중인 카메라에는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주저하다 마지못해 끌려 나가는 듯한 모습이 생생하게 포착됐다. 카메라 앵글에는 후진타오가 시진핑과 수행원들에게 항의를 하는 듯한 모습도 담겼다. 마지못해 퇴장하는 듯한 후진타오의 표정은 굳어 있었으며, 시진핑의 왼편에 앉은 리커창(李克强) 현 국무원 총리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모습도 전해졌다.
프랑스 통신사 AFP는 “노쇠해 보이는 후진타오는 처음에는 자리를 뜨기를 주저하는 듯 보였으나 수행원과 대화를 나눈 뒤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폐막식 현장을 떠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옆에 착석해 있던 그는 자리를 뜨면서 시 주석, 리커창 총리와 짧게 대화를 나눴고 리 총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후진타오가 왜 현장을 떠났는지에 대한 공식 설명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후 추가 공개 영상에서서는 후진타오 전 주석의 왼쪽에 앉아 있던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왕후닝(王滬寧) 중국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의 우려스러운 표정이 표착되기도 했다. 후진타오가 수행원에 이끌려 일어나자 리잔수 위원장이 예의를 갖추려는 듯 일어서려 했지만, 왕후닝 서기가 옷을 잡으며 마치 “이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듯한 모습도 담겼다. 더하여 후진타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실수로 시진핑의 노트를 가져가려 하자 시진핑이 그의 손을 막고 다시 노트를 가져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후진타오 전 주석의 퇴장은 폐막식에서 각본에 없던 사건이다. 1주일간 이어진 당 대회의 마지막 날 스포트라이트는 잠시 후 전 주석의 갑작스러운 퇴장에 쏠렸고, 그의 퇴장 사유가 불분명한 가운데 퇴장 영상이 온라인에서 널리 회자됐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서 일각에선 자신의 핵심 세력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대거 몰락하는 것에 격분한 것 아이냐는 해석도 제기됐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후진타오 재임 시절은 집단지도체제를 중심으로 외부 세계에 대한 개방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관용성이 증대되던 시기였다. 시진핑 주석 1인 체제로 인해 이러한 과거에 변화를 일으킨 데 대해 불편함을 나타낸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미국 AP통신은 “시장 중심의 개혁 지지자로 공산당 서열 2위인 리커창을 제거한 것은 세계 2위 경제력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장악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후진타오 전 주석의 퇴장은 절대권력을 추구하는 시진핑 주석의 무자비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직 국가주석이 당대회 진행 과정에서 모욕적으로 제거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강압적으로 자리를 떠나게 된 방식을 통해 권력을 틀어쥐려는 시진핑 주석의 노력이 전부 드러난다.”고 평했다
시진핑의 ‘선배’ 지도자로서 2003~13년 제6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으로 재직했던 후진타오의 퇴장은 ‘강제성’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중국 내 각종 온라인상에서는 ‘검열’을 통해 관련 콘텐츠가 삭제됐다. 이는 중국 공산당 당국이 이번 사건을 민감하게 생각한다는 방증(傍證)이기도 하다.
후진타오는 시진핑이 속한 태자당(太子黨·중국 공산당 원로 후손), 상하이방(上海帮·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필두로 한 상하이 출신 파벌)과 더불어 중국 공산당 3대 파벌로 꼽히는 공청단(중국 공산주의 청년단)파의 수장이었다. 리커창 국무원 총리, 왕양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등이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꼽힌다.
이 가운데 후진타오의 ‘돌연’ 퇴장의 파문은 지속되고 있다. 이번 제20차 당대회에서 공청단 출신은 모두 실각했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된 제20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중앙위원 명단에서 리커창 총리, 왕양 주석은 포함되지 않아 차기 지도부에서 퇴진이 확정됐다.
당 대회에서 후진타오의 퇴장은 그의 복잡한 심경, ‘공청단파 몰락’이라는 현실을 대변한다는 해석이 따라 붙는다.
후진타오와 리커창은 ‘닮은 꼴’이다.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에서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리커창은 어려서부터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다. 명문 베이징대 법대 졸업 후 동(同)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테크노크라트이다. 1992년 공청단 제1서기가 되어 만 37세에 장관급 인사가 됐다. 후진타오도 1984년 42세 나이로 공청단 제1서기를 지냈다.
이후 리커창은 공청단파 수장 후진타오의 후원을 받으며 차기 지도자로 부상했다. 후진타오는 자신과 배경·이력·성품 면에서 닮은 리커창을 차기 국가주석으로 밀었지만, ‘상황(上皇)’ 장쩌민의 견제에 밀렸고, 리커창은 시진핑에게 1인자 자리를 내어주고 2인자인 국무원 총리에 머물러야 했다. 총리 재임 시절에도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시진핑에 밀려 내치(內治)의 대표 분야인 경제 부문에서도 주도권을 잃었다. 그리고 2022년 제20차 당 대회에서 공청단파는 차기 지도부에서 탈락하여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한편, 후진타오 퇴장을 둘러싼 논란과 추측을 두고서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는 10월 22일 영문판 트위터 계정에 “자사 기자는 후 전 주석이 최근 건강을 회복하면서도 제20차 당 대회 폐막식 참석을 고집한 사실을 알게 됐다. 수행원이 후 전 주석의 건강을 위해 그를 행사장 옆방으로 데려가 휴식하도록 조치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이제 (몸 상태가) 호전됐다.”고 전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의 퇴장은 ‘자진’이든 ‘강제’든 ‘시진핑 1인 독재 체제 강화’로 귀결된 중국 공산당 정치 드라마의 결정적 장면의 하나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