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과 중공군의 대만 봉쇄 훈련에 국제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중국 베이다이허 회의는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듯하다.
대만해협의 위기 고조, 미·중 관계 악화,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 등 중국 당국이 직면한 일련의 위기가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논의될 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런 논의를 하는 진정한 목적은 올가을 20대 당대회에서 인사 배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함일 것이다.
필자는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는 지금까지 없었던 3대 난제에 직면할 것으로 본다.
첫째는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의 임기 문제이고, 둘째는 후계자 선정 문제이다. 이 두 가지 문제로 인해 세 번째 문제가 제기되는데, 바로 중국 공산당 지도자가 어떻게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시진핑은 언제까지 연임할 수 있을까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지난달 31일 건군절 리셉션 행사에 참석한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비밀회의인 베이다이허에 회의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며칠째 공산당 지도부의 활동을 보도하지 않았지만 시진핑 총서기를 선전하는 글은 시종일관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국제사회는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중공군의 대만 봉쇄 훈련, 중국 당국의 펠로시 의장 제재 등으로 떠들썩했지만, 이런 내용은 중국 공산당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지 못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시진핑이 성장(省長)·장관급 세미나에서 한 연설과 관련해 시리즈 평론을 2일부터 6일까지 5일 연속 1면에 실었다. 이어 7일에는 ‘중앙군사위 판공청이 해방군과 무장경찰 부대에 <시진핑이 국정을 논하다> 제4권을 공부할 것을 요구하는 ‘통지’를 내렸다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시진핑에게 있어서 연임은 단연 최우선 과제다. 현재로서는 그의 연임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이번 회의에서는 다른 자리를 놓고 다툴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마오쩌둥(毛澤東) 이후 10년 집권 관례를 유지해왔다.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시진핑의 연임을 막지 못하겠지만, 시진핑이 5년 후 계속 연임할 수 있을지, 나아가 장기 집권도 가능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마오쩌둥 사후 집권에 성공한 덩샤오핑은 1982년 헌법 개정을 통해 최고지도부의 임기를 두 번(10년)으로 제한했다. 그는 또 후계자를 격대지정(隔代指定)하는 관례를 만들었다. 즉 현 지도자가 한 대를 건너뛰어 차차기 지도자를 미리 지정해 양성하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후진타오를 장쩌민의 후계자로 격대지정했다.
마오쩌둥의 권력은 죽을 때까지 유지됐다. 덩샤오핑은 당시 형식적으로는 2선으로 물러났지만 실제로는 실권을 잡고 있었다.
장쩌민은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민주화운동 탄압을 지지한 덕에 총서기 자리에 올랐다. 그는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했던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를 대신해 남은 임기 3년을 채우고, 두 번 임기 10년을 더해 실제로 13년간 재임했다. 그는 권좌에서 물러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공산당 원로들의 반대로 부득이 총서기의 자리를 후진타오에게 넘겼다.
실제로 10년 임기만 마치고 물러난 사람은 후진타오뿐이다. 후진타오는 실권, 특히 군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장쩌민 계파가 시종 요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집권한 후 장쩌민·쩡칭훙 계파와 사활을 건 투쟁을 벌였다. 시진핑은 반부패 캠페인을 통해 장쩌민 계파의 관료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렸고, 또 이 때문에 수많은 정적을 만들어냈다. 시진핑이 연임에 실패하면 그는 자신과 가족의 생명도 위협받을 것이다.
현재 당내에는 시진핑에 감히 공개적으로 도전할 인물은 없고, 후계자도 지정되지 않아 20차 당대회에서 최고 지도자를 교체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
중국 공산당의 내부 투쟁은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지만, 이 투쟁이 ‘당 보전’과 ‘정권 보전’의 마지노선을 깨서는 안 된다. 시진핑 연임 문제에서도 어느 파벌이든 이 마지노선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3연임에 이어 장기 집권을 허용하는 문제가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논의할 핵심 주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베이다이어 회의에서는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자의 종신제를 되살릴지 여부를 논의하고 협상하는 것이 과거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없었던 최대 난제일 것이다.
정치 원로들의 영향력은 얼마나 클까
베이다이허 회의는 1953년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베이다이허에서 업무를 보면서 시작됐다. 그들은 거기서 휴가를 즐기면서 업무를 수행하고 각종 중요 회의도 열었다. 당시 마오쩌둥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당 원로들이 국정에 개입하는 일은 없었다.
이 회의는 문화대혁명 기간에 중단됐다가 1984년에 재개됐다. 당시 후야오방이 총서기였고 자오쯔양은 국무원 총리를 지냈지만 실권은 덩샤오핑과 공산당 원로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앙고문위원회(중고위·中顧委)까지 만들어 국정에 개입했다. 1985년부터 중고위 원로들도 베이다이허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원로들이 정치에 개입하는 회의로 확대됐다.
2003년 후진타오가 집권한 이후 중국 당국은 한때 중앙기구가 베이다이허에서 업무를 보는 것을 금지한 바 있다. 하지만 비공식 베이다이허 회의는 사실상 중단된 적이 없다. 후진타오는 퇴임 당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고, 그가 속한 공청단파 관료들의 승진길도 막혔다. 현재 중국 공산당 1세대 원로들은 거의 세상을 떠났고, 2세대·3세대의 영향력도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현재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주로 2002년 이후 퇴임한 정치국 상무위원들로, 대부분 장쩌민파다. 물론 후진타오·원자바오·주룽지 등 장쩌민 파벌과 대립했던 사람들도 있고, 계파가 뚜렷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시진핑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발언은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 시진핑은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8월 6일, 인민일보는 1면에 시진핑 연설 관련 시리즈 평론 마지막 편을 실었다. ‘단결해야 승리하고, 분투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제목의 이 평론은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주위에 더욱 긴밀히 단결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는 시진핑 진영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단결하지 않는’ 목소리가 나올 것을 알고 있음을 시사한다.
8월 7일, 신화사는 ‘효율적으로 총괄하고 방향키를 잡다’는 기사를 헤드라인에 올렸다. 이 기사는 “올해 들어 국제 환경이 더욱 복잡·엄중해졌고, 국내에서는 전염병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등 불리한 영향이 뚜렷하게 증가했다”면서 “경제 발전은 극히 심상치 않고, 예상을 뛰어넘는 돌발 요인들이 심각한 충격을 가져오고 있다”고 했다. 또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은 대세를 살피고 전체 국면을 도모한다. … 중국 경제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안정적 반등을 이뤄 경제운영이 합리적 구간 내에 유지하면서 강한 근성과 거대한 잠재력을 과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내용은 실제로 당 내에서 나오는 의혹 제기 목소리에 답하면서 시진핑을 ‘일추정음(一錘定音)’의 권위로 삼고 “반드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 것이다. 또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 “모든 중요한 시점에서 시진핑은 직접 지휘하고 직접 키를 잡았다”며 “이는 우리가 각 단계마다 직면한 돌발적인 어려움과 도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고 했다. ‘일추정음’은 징을 한 번 쳐서 가락을 정하듯 누군가의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는 것을 뜻한다.
시진핑이 “직접 지휘한다”는 것은 공로가 그에게 있음을 의미하지만 실정의 책임도 그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 당국은 지난 2년여 동안 공적을 쌓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당국의 잇따른 실책으로 인해 문제가 갈수록 많이 쌓여 시진핑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시진핑의 연임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베이다이허 회의 참석자들은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진핑의 위상을 최대한 낮춰 후계자 문제를 포함한 20차 당대회 인사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향후 5년간의 발언권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후계자 문제 논의할까
7월 27일, 시진핑은 성장·장관급 간부 세미나에서 향후 5년간의 구호식 국정 강령만 제시했을 뿐 향후 10년 동안의 전망은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10년간 중국 공산당이 벌인 내부투쟁의 ‘격랑(驚濤駭浪)’에 대해 묘사했다.
시진핑 진영은 연임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장기 집권 문제는 피하고 3연임만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후계자 문제는 피할 수 없게 된다. 시진핑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5년 더 집권하는 것으로 자신의 연임 문제를 매듭짓는다면 후계자를 선정해야 한다. 베이다이허 회의 참석자들은 이런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진영은 대만해협에서는 거창한 전투 태세를 벌이며 힘을 과시했지만, 당 내 각 계파를 압도할 절대적인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진핑은 더 큰 논란을 피하기 위해 장기 집권 문제는 언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계자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시진핑이 장기 집권 의사를 밝힌 것이나 다름 없어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차세대 후계자로 유력했던 쑨정차이(孫政才)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가 낙마하면서부터 당내에서 후계자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금기시됐고, 후계자 자리에 감히 도전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후계자 논의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시진핑이 연임을 위해 후계자 선정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면 20차 당대회 인사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다.
만약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후계자 문제와 관련해 아무런 결과도 도출하지 못한다면 시진핑의 장기 집권을 막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베이다이허 회의도 더 이상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난제 많아 계파간 타협 어려울 듯
베이다이허 회의 이후, 20차 당대회가 개최되기에 앞서 19기 7중전회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 새로운 정치국 위원과 정치국 상무위원 인선도 최종 확정될 것이고, 새로운 중앙위원 인선도 대체로 확정될 것이다.
앞으로 두 달 남짓 남은 기간에 인선을 확정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므로 각 계파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상당 부분 타협을 이뤄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9기 7중전회에서 혼란이 빚어질 것이고, 그러면 20차 당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어렵고 대외적으로 보여줄 ‘정치 쇼’도 망치게 될 것이다.
시진핑 진영은 최대한 자기 사람을 발탁하려 할 것이고, 다른 파벌은 이를 막으려 할 것이다. 파벌 간 힘겨루기가 격렬하겠지만 결국 서로가 타협점을 찾을 것이다. 가장 쉬운 절충안은 현직 정치국 상무위원을 유임시키는 것이다. 시진핑이 두 번 임기 관행을 깼으니 다른 상무위원들도 유임할 수 있는 명분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커창 총리와 왕양 부총리 등도 유임 명분이 생기고 각자 계파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장쩌민·쩡칭훙 계파는 자오러지(趙樂際)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의 유임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다. 만약 후춘화(胡春華) 부총리가 리커창 총리 후임으로 지명되면 첫 상무위원 인선이 될 것이다. 남은 자리를 놓고도 시진핑 진영과 다른 계파 간의 각축전이 벌어질 것이고, 시진핑 진영 내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정치국 위원 인선도 마찬가지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중국 공산당 권력자들이 이권을 다투는 비밀 모임이다. 현 당국자는 전임자들의 발언권을 낮추려 할 것이고, 전임자들은 남아 있는 약간의 영향력이라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난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려울 것이고 베이다이허 회의는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는 중국 공산당 정권이 초래한 일련의 난국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중국 공산당에는 이러한 난국을 타개할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뒤를 이을 후계자도 없다.
베이다이허 회의도 중국 공산당 정권도 퇴장할 때가 됐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머잖아 중국 역사의 신기원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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