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스파이 기관은 어떤 모토를 사용할까?

최창근
2022년 06월 28일 오후 5:35 업데이트: 2022년 06월 28일 오후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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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이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서체로 된 원훈(院訓)석을 치우고 국가정보원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창설 시 제정한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원훈석을 다시 세웠다.

1961년 당시 초대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이 제정한 부훈(원훈)은 중앙정보부가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꾼 후에도 37년간 사용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국가정보원으로 개칭하고 원훈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꾸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 재임기인 2008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교체했고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바꾸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국가정보원 창설 60주년을 맞아 신영복체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라고 쓰인 원훈석으로 교체했다.

국가정보원 전신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1961년 부터 1998년 현재의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37년간 사용하다, 2022년 다시 사용하게 된 국가정보원 원훈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양한다’ | 연합뉴스.

결과적으로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으로 이어지는 한국 정보기관의 모토는 정권이 지향하는 가치를 담아오다 결국 창설기 모토로 돌아간 셈이다.

세계 각국 정보기관들은 어떠한 모토를 사용하고 있으며 어떠한 가치를 담고 있을까.

세계 정보기관의 대명사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모토는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이다. ‘성경’ 요한복음 제8장 32절 구절이다. 이 구절은 정보·학술기관 모토로도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연세대학교, 숭실대학교, 백석대학교 등 개신교 미션 스쿨 교훈으로 사용 중이다. 다만 정교(政敎) 분리 원칙에 따라 ‘비공식’ 모토로만 사용된다. 중앙정보국(CIA)의 공식 모토는 ‘하나의 기관, 하나의 공동체(One Agency·One Community)’이다.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자리한 중앙정보국(CIA) 본부 청사. 1999년 1970년대 국장을 역임한 미국 제41대 대통령 조지 부시(George Bush)의 이름을 따서 조지 부시 정보센터(George Bush Center for Intelligence)라고 명명했다. | 연합뉴스.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개국 정보 공유 동맹) 회원국 간 정보 감청·신호정보 업무 수집 프로젝트인 에셜론(ECHELON) 프로젝트로 널리 알려진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베일에 쌓인 조직이다.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으로서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 포트미드에 자리한 국가안전국(NSA) 본부 ‘크립토 시티(암호도시)’는 전 세계에서 도·감청한 통신 정보를 일일 평균 30억 건 이상 수집한다. 이러한 국가안전국의 모토는 영어 약자 ‘NSA’에서 유래한 ‘그런 기관 없음(No Such Agency·NSA)’ 혹은 ‘아무 말도 하지 말 것(Never Say Anything·NSA)’이다.

‘암호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미국 메릴랜드주 국가안전국(NSA) 청사. NSA는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으로서 국장은 중장이 맡는다. | 연합뉴스.

인기 TV 드라마 시리즈 ‘X-파일’로 널리 알려진  미국 법무부 연방수사국(FBI)의 국훈(局訓)은 신의(Fidelity)·용기(Bravery)·진실(Integrity)이다. 1924~72년 총 48년간 재임한 초대 국장 존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 재임 시 한 직원의 이름을 따서 영어 약칭 ‘FBI’와도 같은 국훈을 제정했다. 연방수사국은 국내 정보 수집·방첩·특수수사 업무를 수행하는 ‘연방경찰’이다.

미국 워싱턴 D.C의 에드거 후버 빌딩. 법무부 연방수사국(FBI) 본부 청사로서 초대 FBI 국장이었던 애드거 후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미-소 냉전 시기 미국 중앙정보국·연방수사국을 상대로 치열한 첩보 전쟁을 치렀던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모토는 ‘당에 충성, 조국에 충성’이다. 여기서 당은 소련공산당을, 조국은 소비에트연방공화국(소련)을 지칭한다.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였던 소련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 군사정보국(NSA)에 대응하던 소비에트연방군 총참모부 정보총국(GRU)의 국훈은 ‘당신의 영광스러운 행동으로 본 조국의 위대함’이었다. 스페츠나츠(Spetsnaz)라 통칭되는 특수부대도 이곳 소속이었다.

냉전 시기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청사.

소련 해체 후 국가보안위원회(KGB)가 재편된 러시아 해외정보국(SVR)의 모토는 ‘요원은 반드시 차가운 두뇌와 뜨거운 가슴, 깨끗한 손을 가져야 한다’로서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역시 국가보안위원회의 뒤를 잇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표어는 ‘그대들의 행동 뒤에 어머니 조국이 있다’이다.

첩보영화의 대명사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영국 해외정보기관 비밀정보부(Secret Intelligence Service·SIS)의 부훈은 라틴어 ‘언제나 비밀(Semper Occultus)’이다. 영국 외무·영연방부(Foreign and Commonwealth Office·FCO) 소속 기관으로서 군사정보총국 제6과(Directorate of 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6)의 약자 ‘MI6’로 통칭된다. 이 기관이 1912년 창설된 군사정보부 산하 첩보부대였기 때문이다. 모토 대로 MI6는 1994년에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밝혔고 2006년에야 처음으로 신문에 직원 공채 광고를 실었다. 영화 007 시리즈에도 등장하는 ‘임무상 살인이 필요한 경우 살인을 저질러도 국가가 책임을 진다’는 뜻을 내포한 ‘00’ 코드명을 가진 첩보요원은 영화와는 달리 실제는 3명이었다고 알려진다. 편제상 외무부 소속이지만 총리 직속 정보기구이다.

영국 런던 템즈 강변에 자리한 비밀정보부(MI6) 청사. MI6 소속 첩보원 제임스 본드가 등장하는 영화 007 시리즈 중 ‘스카이 폴’에서 폭파되는 장면으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영국 MI6이 해외 첩보 업무를 담당한다면 ‘MI5’는 국내 첩보·방첩 담당 기관이다. MI6과 마찬가지로 전신이 군사정보총국 제5과(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5)인 것에서 유래했다. 영국 내무성(Home Office) 산하 기관으로서 공식 명칭은 정보청 보안부(Security Service·SS), 슬로건은 ‘왕실을 수호하라(Regnum Defende)’이다. 입헌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 헌정체제의 특징을 반영했다.

영연방 국가인 호주와 캐나다 정보 당국은 교과서적인 슬로건을 내 걸고 있다. 호주안보정보원(ASIO)은 ‘국가안보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한다’를, 캐나다 보안정보국(CSIS)은 ‘CSIS는 국가안보와 국민 안전을 보호하는 데 헌신한다’를 모토로 사용 중이다.

프랑스 대외안보총국(DGSE)의 국훈은 ‘필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이다. ‘자칼’을 고용하여 샤를 드골(Charles-de-Gaulle)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계획을 저지한 안보기관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또 다른 프랑스 안보기관 국토감시국(DST)은 ‘음지에서는 엄격하게, 양지에서는 냉철하게’라는 철학적인 구호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 국가정보원 원훈과도 유사하다.

전 세계를 상대로 스파이 공작을 벌이고 있는 중국 국무원 국가안전부(國家安全部) 부훈은 ‘정예간부들은 당에 충성해야 한다(精幹內行對黨忠誠)’이다. 경찰·정보 업무를 수행하는 국무원 공안부(公安部)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라는 모토를 사용한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연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국 공산당 모토와 동일하다. 이러한 중국 정보기관에 맞서는 대만 국가안전국(國家安全局)의 국훈은 ‘충성스럽고 사심이 없다.’는 뜻의 ‘충성무사(忠誠無私)’이다. 국가안전국은 국가안전회의(國家安全會議·NSC) 직속 기관으로서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역시 미국 법무부 연방수사국(FBI)과 유사한 조직으로는 법무부 조사국(法務部 調查局·MJBI)이 존재한다.

도쿄도 치요다구 카스미가세키 중앙합동청사 제6호관. 일본 법무성과 산하 검찰청, 공안조사청 등이 입주해 있다.

내각제 국가인 일본 정보기관으로는 해외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내각정보조사실(内閣情報調査室·CIRO)과 국내 정보수집·방첩·업무가 주인 법무성 산하 공안조사청(公安調査廳·PSIA)이 있다. 두 기관의 관계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와 법무부 연방수사국(FBI) 관계와 유사하다. 약칭 ‘내조(內調)’라고 하는 내각정보조사실의 모토는 ‘내각을 직접 지원하고 우리 나라의 안전 번영’이다. ‘공조(公調)’라고 약칭하는 공안조사청은 ‘먼저 고민하고 나중에 즐거워한다’는 뜻의 ‘선우후락(先憂後樂)’을 청훈(廳訓)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휘장.

공식명칭은 ‘중앙공안정보기관(Central Institute for Intelligence and Security·CIIS)’이지만 ‘기관’ 혹은 ‘연구소’를 뜻하는 ‘Institute’의 히브리어 ‘모사드(Mossad)’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모토는 ‘성경’ 잠언 제24장 6절의 ‘너는 모략(謀略)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謀士)가 많음에 있느니라’였다. 한국어로 ‘모략(wise guidance)’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기만’ 또는 ‘속임수’를 뜻하고 ‘모사(counsellors)’는 ‘조언을 주는 자’라는 의미이다. 오늘날 모토는 역시 ‘성경’ 잠언 제11장 14절의 ‘모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이다. 한국어 ‘평안(safety)’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안전’ 또는 ‘안보’를 뜻한다. 잠언의 구절을 정보 기관인 모사드의 모토로 삼는 것은 유대인들이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구약 성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사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영국 비밀정보부(MI6)와 더불어 세계 3대 정보 기관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러한 모사드의 또 다른 슬로건은 ‘기만에 의하여(By way of deceptio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