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고 규정하고, 첫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동맹국인 일본·싱가포르와, 최근 미국과 외교관계를 강화한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이 지지를 나타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각) 백악관 연설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면서 무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영토를 더 많이 점령할 근거를 만들어 내고 있다며 “이는 우크라이나 침공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전날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 지역 2곳의 독립을 인정하는 법령에 서명하고 해당 지역으로 파병을 지시했다. 러시아 상원은 22일 참석 인원 15명 전원의 만장일치로 러시아 군대 해외파병안을 의결했다. 분리주의 지역 주둔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 은행 2곳을 차단하고 또 러시아 국가채무와 관련된 포괄적 제재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러시아가 계속 우크라이나 진입을 진전시킬 경우, 제제 수위를 가파르게 상승시키겠다며 러시아 상류층과 그 가족까지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대통령 연설 후 러시아 국책은행인 VEB와 PSB, 이들의 자회사 42곳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VEB는 러시아 국책 개발은행으로 300개 이상의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고 있다. PSB는 러시아 국방부 방위사업 70%의 자금을 지원한다. 이제 두 은행은 미국 내 보유자산이 동결되고 미국 내 기업이나 개인은 이들과 거래가 금지된다.
러시아 국가채무에 관한 제재는 주로 국채 거래와 관련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 정부가 자금 조달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서방 금융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하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돈줄이 옥죄이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동유럽에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방어 조치로 발트해 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3국에 더 많은 미군 병력을 파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발트해 국가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전날 저녁 55분에 이르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 우크라이나가 따로 떨어질 수 없는 ‘러시아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진정한 의미의 독립국이었던 전통이 없다. 현대 우크라이나는 완전히 러시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볼셰비키가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가 소련 시절 국가형태로 만들어져, 해체 후 국가가 된 것이며 그 이전에는 “러시아와 혈연, 가족관계로 묶인 친적”이라는 것이다.
미국 의회는 여야 한목소리로 바이든 대통령에게 더 광범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지난 17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미국인들은 우크라이나 파병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파병을 긍정적으로 본 비율은 13%에 그쳤다.
유럽 국가들도 러시아에 제재 채비를 갖추고 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부 장관과 조제프 보렐 유럽연합(EU) 외무장관은 EU 27개 회원국이 러시아 당국을 겨냥한 제재 목록 초안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전쟁 가능성에 대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사뭇 다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2일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는) 평화적인 해결책에 관심이 없다”며 “매일 그들은 돈바스(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군대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면전은 없을 것이며, 러시아의 광범위한 (침공 수위) 확대도 없을 것”이라며 “만약 침공 수위가 높아진다면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전쟁 태세에 들어가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우크라이나가 침공을 시작했다는 신호를 계속 발신하고 있다. 존 피터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CNN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며 “침략은 침략이며,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지역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지만 “(푸틴 대통령은) 전면적이고 비극적인 선택 전쟁을 여전히 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