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이 반일에서 반미로 정치투쟁 노선을 변화시키는 가운데, 반미 정서를 자극해 흥행한 영화 ‘장진호(長津湖)’를 비판한 언론인이 당국에 구속됐다.
‘중국상보’ 선임기자, ‘신경보’ 심층보도부 주필을 거친 중국의 유명 언론인 뤄창핑(羅昌平·40)은 지난달 30일 개봉해 기록적 흥행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관영언론에 보도되는 영화 ‘장진호’를 비판했다.
뤄창핑이 비판한 것은 정확하게는 영화 ‘장진호’가 아니라 영화의 배경이 된 장진호 전투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부터 12월 초까지 개마고원에서 벌어진 미군과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중공군) 사이의 전투로 한국전쟁의 주요 전투 중 하나다.
이 전투의 결과로 연합군이 38선 이남으로 완전히 철수했고, 중국은 연합군의 북진을 저지한다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해 이를 ‘승리’로 기록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승리라고만 하기 쉽지 않다.
장진호 전투는 중공군 9병단 병력 12만명이 미 해병 1사단, 육군 7사단 병력 총 3만명과 싸워 약 5~6만명 가까이 죽거나 다친 결과를 낳았다. 미군은 1만7천명 가량 죽거나 다쳤다.
중국 스스로도 세계 최강 미국과 싸워 승리한 전투를 70년 동안 한 번도 영화로 만들지 않다가 이번에 선전영화를 찍은 것은 4배 많은 병력을 투입하고도 3배의 피해를 입는 등 처참한 결과를 스스로도 알기 때문이다.
특히 중공군 사상자 중 직접적인 전투로 인한 사상자는 2만명 미만이었고, 3만명 이상은 극심한 추위와 부족한 보급으로 인해 싸워보기도 전에 얼어죽거나 동상으로 전투력을 손실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체제 선전용으로 제작된 영화 ‘장진호’는 이같은 마오쩌둥과 공산당의 판단착오, 병사들을 소모품으로 여기고 사지로 내모는 행위를 그대로 그려낼 수 없었기에 역사 왜곡으로 얼룩졌다.
실제로는 마오쩌둥의 무리한 명령으로 강추위와 굶주림에 스러져간 희생자들을 북한을 침략한 미 제국주의에 맞선 열사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뤄창핑은 바로 이러한 점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중국 하이난 검찰에 따르면, 뤄창핑은 지난 6일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서비스(SNS)인 웨이보에 게시물을 올려 ‘열사들을 명예 훼손한 혐의’로 7일 싼야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뤄창핑은 웨이보에 “반세기가 지났지만, 국민은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 거의 반성하지 않았으며, 마치 ‘모래 조각 부대’가 상관의 결정을 의심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썼다.
‘모래 조각’(沙雕)은 중국에서 바보를 뜻하는 온라인 은어다.
뤄창핑이 말한 ‘모래 조각 부대’는 장진호 전투에서 강추위에 총을 들고 경계를 선 상태로 그대로 얼어붙어 사망한 3개 연대 병사 200명을 가리키는 말인 ‘얼음 조각 부대’를 연상시킨다.
이는 상관의 어리석은 지시를 맹목적으로 추종해 얼어 죽은 중공군이나 오늘날 공산당의 선전선동에 놀아나는 중국인들이 차이가 없음을 비판한 표현이다.
공산주의청년단 중앙위원회, 해방군일보 등 공산당 관련 단체와 매체들은 즉각 “영웅을 모욕했다”며 반발했다. 이후 뤄창핑의 웨이보 계정은 접속이 차단돼 곧 그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리라는 예상이 파다했다.
뤄창핑은 관영매체 기자로 근무하면서도 중국 관료들의 부패를 추적하고 세태를 비판하는 기사를 자주 작성했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계란 볶음밥을 만들어 먹으려 불을 피웠다가 위치가 노출돼 폭사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위에 대해서도 ‘계란 볶음밥의 제삿날’이라는 글로 조롱한 바 있다.
마오안위의 죽음은 영화 ‘장진호’에서는 러시아어 통역으로 근무하다 미군 폭격기의 폭격으로 죽은 것으로 사실을 왜곡해 미화됐다.
이러한 애국주의 자극 전략이 먹혀들면서 일부 관객들은 영화 스탭롤이 올라가는 장면에서 스크린을 향해 경례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까지 연출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들도 영화 ‘장진호’의 기록적 흥행을 전하기 바쁘다. 이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개봉 이후 이달 7일 오전까지 33억9천만 위안(약 6282억원)의 입장권 수익을 거뒀다.
그러나 체제에 비판적인 매체들은 당국이 영화의 흥행을 과장하려 수익을 부풀려 보도하도록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다.
영화의 흥행으로 장진호 전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영화 속 역사왜곡이 들통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산당 간부 사관학교인 중앙당교의 유명 교수 출신으로 현재 미국에 망명한 학자 차이샤(蔡霞)는 “중국은 이 영화로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려 했지만, 오히려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전쟁의 진실을 탐구하는 붐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장진호 전투의 ‘혁혁한 전과’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 싶은 중국인들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마오쩌둥과 당 지도부의 헛발질로 수만명이 싸워보기도 전에 얼어 죽은 전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당사(黨史)출판사가 펴낸 공식 기록물인 ‘개국 제1전’에 따르면 중공군 9병단의 전투 사상자는 1만9202명, 비전투 사상자는 2만8954명이다. 비전투 사상자 대부분은 동상자이고 약 4천명은 동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