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지방법원이 미국 망명 신청자들이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멕시코에 돌아가 머물도록 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른바 ‘멕시코 잔류 정책’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명령했다.
텍사스 북부 연방지방법원의 매튜 캐스매릭 판사는 13일(현지시간) 텍사스와 미주리주 정부가 조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판결문에서 “국토안보부가 트럼프 전 행정부의 ‘멕시코 잔류 정책’을 폐기하기 전 몇 가지 중요한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명했던 캐스매릭 판사는 53쪽 분량 장문의 판결문(PDF)에서 멕시코 잔류 정책을 폐기한 바이든 행정부의 결정은 일단 미국에 들어오면 망명이 거부되더라도 자발적으로는 귀국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을 돌려보낼 수 있게 된 효과를 충분히 평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 국토안보부는 지난 6월 1일 멕시코 잔류 정책을 공식 폐기했지만, 이 정책은 실제로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1월 20일 당일 효력이 중단됐다.
당시 국토안보부 장관은 멕시코 잔류 정책이 이민자들을 돌려보내 대기하도록 하는 데 따른 비용과 운영 부담 등으로 인해 국경관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캐스매릭 판사는 바이든 행정부 국토안보부의 결정이 멕시코 잔류 정책으로 인해, 거짓 사유로 망명을 신청하는 이들이나 망명 신청을 이유로 입국한 뒤 몰래 사라지는 불법 이민 등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캐스매릭 판사는 “국토안보부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출신의 망명 신청자 10명 중 9명이 망명 심사에서 최종 탈락하고 있으며, 멕시코 잔류 정책이 시행된 뒤 이러한 (가짜) 망명 신청자들이 사실도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 행정부의 이민정책이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우며 재량권을 남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캐스매릭 판사는 멕시코 잔류 정책 폐기에 따른 긴급구제 등 방안을 마련할 7일간의 유예기간을 준 뒤, 이 정책을 즉각 부활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텍사스와 미주리주는 판결에 대해 각각 환영 논평을 냈다.
텍사스 법무장관 켄 팩스턴은 “멕시코 잔류 정책은 합법적이며 효과적이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불법적으로 중단시켰다”고 전했고, 미주리주 법무장관 에릭 슈미트는 “국경안보와 법치주의를 위한 큰 승리”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 행정부는 급증하는 불법 이민에 대처하기 위해 2019년 멕시코 잔류 정책을 가동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책 시행을 위해 멕시코로부터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고, 온두라스 등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을 멕시코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당시 국토안보부 장관이었던 커스텐 닐슨은 이 정책은 “남부 국경의 안보와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불법 이민 급증으로 인한 지역 사회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불법 이민 브로커들이 중남미 취약 계층을 유혹, 마구잡이로 밀입국시키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비인도적 사건들을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닐슨 전 장관은 “멕시코 잔류 정책은 안전하고 질서 있는 이민 절차를 회복하고, 이민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를 줄이며, 밀수업자들과 불법 이민 브로커들이 취약 계층을 돈벌이에 악용하는 사건을 막을 수 있다. 생명과 국가 안보, 공공 안전에 대한 위협을 낮추고 취약한 인구를 보호하는 정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의 국경정책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극적으로 변경됐다.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 고위 관리들은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트럼프 시절 이민·국경정책을 대부분 폐지하거나 변경했다. 그 사이 미국은 지난 7월, 21년 만에 최고치를 넘어서며 불법 이민이 기록적으로 폭증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현 국토안보부 장관은 트럼프 시절 정책은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하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정책 변경 후 국경 지역에서 급증한 혼란에 대해서는 “정책 변화와 그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명해왔다.
쿠바 이민자 출신의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은 최근 텍사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전 행정부의 잔인한 정책이 종식되고, 인도주의적 구제를 제공하는 망명법 등이 의회를 통과하며 이 나라의 법치가 복원됐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삭감했고, 우리가 이민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투입한 지원도 삭감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 최고 보좌관이었던 스티븐 밀러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마요르카스에 대해 “병적인 거짓말쟁이”라고 일침했다.
밀러 전 보좌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마요르카스 장관은) 역사상 가장 안전한 국경과 가장 효과적인 집행 체계를 이어받았다”며 하지만 현재 미국의 남부 국경은 ‘재난상황’으로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원인을 “바이든의 트럼프 정책 뒤집기”라고 분석했다.
/자카리 스티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