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 근절을 촉구하는 운동이 한창이다. 3월 말에 이미 비슷한 시위가 적지 않았고, 중국인들은 오는 4월 4일(일요일) 엄청난 규모의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가 존재하느냐고 물으면 답하기 쉽지 않다. 차별을 받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계가 하나의 집단으로서 증오의 대상이 되느냐고 물으면 답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증오에 대해 언급할 때 아시아계로서 몇 가지 분명히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현재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는 주로 우월한 인종인 백인 사회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인 대부분이 깊이 느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나 뉴욕처럼 중국인이 많은 곳에서는 대부분 백인이 아닌 흑인들이 아시아인을 공격한다. 이는 유대인이 공격당하는 것과 유사하다.
둘째, 아시아계에 대한 제도적 차별과 증오는 주로 민주당에서 비롯된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인 시민단체인 동원회(同源會)는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
동원회는 이달 초 이런 성명을 냈다.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 CRT)은 좋은 학교에서 아시아계를 너무 많이 쫓아내려 한다. (그들은) 아시아계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CRT는 오늘날의 ‘중국인 배척법’이다. CRT야말로 진정한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다. CRT는 묵시적 편견/감수성 교육에 가려져 우리 작업장에 나타난다. 그것은 문화적/인종적으로 감수성 교수법을 가장해 우리 학교에 침투했다. 그것의 교육 과정에는 뉴욕타임스의 ‘1619 프로젝트’와 시애틀의 ‘민속수학(Ethnomathematics·인종, 지역, 사회적 환경, 역사적 맥락에서 연구하는 학문)’ 등의 학과가 설치된다.”
뉴욕타임스가 내놓은 ‘1619 프로젝트’는 미국의 건국 연도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을 기념하는 1776년이 아니라 흑인 노예가 처음 미국에 도착한 1619년이라고 주장한다.
CRT는 비판적 인종 이론이다. 이것은 민주당 진보 진영의 큰 무기다. 버락 오바마 시절 미국 전역에서 추진되기 시작한 이 이론은 2020년 미국 곳곳에서 발생한 인종 소요와 관련돼 있다.
미국의 소수인종 입학 우대정책의 경우 인종 간 밸런스를 따져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한다. 중국인과 아시아계는 교육을 중시하고 가정을 중시하는 역사적 전통이 있기 때문에 학교 성적이 상대적으로 좋으나, 많은 아이가 이 정책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이것은 제도적인 문제다. 수혜자는 백인이 아닌 흑인과 라틴계다.
이 때문에 미국 좌파 언론들은 아시아계가 상처받고 차별받고 적으로 여겨지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뉴욕타임스는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는 트럼프가 ‘중국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은 극히 웃기는 것이다. 중국인에 대한 증오는 2016년 이전부터 존재해 왔음을 재미 중국인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좌파 언론은 아시아계가 받는 불공평한 대우를 외면하고 있다. 이들은 아시아계와 중국계가 불공평에 대해 저항하면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CRT 운동이 방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좌파는 대부분 아시아계를 백인의 방조자이고 미국이라는 억압적 사회의 수혜자로 보기 때문에 비판받는 인종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계가 ‘도덕적 백인(Morally white)’이라는 말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필자는 미국에서 발생한 아시아계에 대한 공격 사건은 대부분 특정 인종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면, 차이나타운 상가를 약탈한 사건의 경우, 강도는 재물을 약탈하기 위한 것이지 상가의 주인이 어떤 인종인지에 신경 쓰지 않는다.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나는 중국계 공격 사건은 가해자가 대부분 흑인이다. 이는 범인의 사회적 지위 및 교육적 배경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두 가지 사건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하나는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아시아계 4명, 백인 1명, 라틴계 1명이 사망했다. 경찰은 이 사건이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한 백인 남성이 한 중국계 할머니를 주먹으로 쳤다. 이 할머니가 교회에서 공짜로 받은 구호품을 팔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미국에서 아시아계 증오 반대 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 예전에는 많은 아시아계가 시애틀, 포틀랜드, 뉴욕, 샌프란시스코에서 적으로 여겨졌지만 이런 운동이 없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이런 운동이 일어나는가?
4월 4일에 있을 뉴욕의 아시아계 증오 반대 집회 피켓을 살펴보자. 이것은 조직자가 발표한 것이다. 검은 주먹에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표지는 놀랍게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운동 표지와 거의 같다.
실제로 뉴욕에서는 3월 20일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 반대 시위가 있었다. 현장을 보면 이 시위와 집회에는 중국인을 포함해 아시아계가 다수 참가했지만, 그들은 주최자가 아니었다. 차이나타운 근처의 집회에서 발언한 자 대부분은 흑인이었다. 거리에서 교통을 유지하는 사람은 대부분 젊은 백인이었다. 그들이 외친 구호는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 “아시아인 생명도 소중하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등이다.
이 아시아계 시위는 뉴욕의 BLM 단체가 조직했음이 분명하다.
이것이 바로 아시아계 상가가 약탈당하고 중국인들이 구타당할 때인 작년이 아닌 지금 이런 시위가 벌어지는 이유다.
한편, 이번에 열리는 아시아계의 대규모 집회는, 필자가 보기에는, 실제로 재미 중국인이 중심이 된 운동이다. 이런 집회를 조직하는 사람은 대부분 중공 영사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른바 동향회(同鄕會)와 상공회(商會) 사람들이다. 이들 조직의 명칭은 중국인들에게 낯설지 않다. 이들은 항상 베이징이 필요할 때 나와 베이징이 원하는 구호를 외치기 때문이다.
지난주 알래스카에서 미중 고위급 회담이 있었다.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미국이 흑인을 학살했고 미국 내 인권 상황이 나쁘다고 비판하며 중국 인권에 대한 미국의 비판을 거부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지난 주말의 아시아계 증오 반대 시위에는 민권운동과 무관한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예를 들어 “북한과 중국을 지지하고, 미 제국주의를 반대한다”, “아시아계, 흑인, 라틴계, 백인 노동자들이 단결하자” 등이다. 이런 구호는 양제츠의 강경 발언에 대한 호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운동의 배후 조종자가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중국인이나 아시아계가 ‘차별’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미국에서 차별이라는 표현은 통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운동은 ‘아시아계 차별’이 아닌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 반대’에 초점을 맞추었다. 증오와 차별은 유사한 것 같아도 엄연히 다르다.
아시아계는 경제적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시아계는 보편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고 소득도 높다. CRT는 아시아계에는 통하지 않는다. 제도적 차별과 시스템적인 억압은 아시아계의 사회적 지위에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증오는 하나의 대체물로 이용됐다.
지난 1년여 동안 아시아계, 특히 성공한 아시아계가 급진적인 민주당을 이탈하고 보수적인 공화당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에 민주당 극좌파는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국면을 돌려놓을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나 상징적인 운동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 반대 운동은 결국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고 유야무야될 것이다.
첫째, 아시아계가 북한과 중공을 지지하고 미 제국주의를 반대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통 산업 노동자 계급도 아니다. 아시아계의 블루칼라 노동자 수는 많지 않다.
둘째, 이 운동이 구체적인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증오는 우리 모두가 반대한다.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 대한 증오를 반대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구체적인 요구 사항은 무엇인가? 실행 가능한 정책이 있는가? 답은 없다.
중국인들의 첫 번째 관심사는 학교 교육이다.
즉 그들의 아이들이 마틴 루터 킹이 말한 것처럼 피부색이 아니라 인품과 능력에 따라 공평한 대우를 받을 기회를 가지기를 바란다. 따라서 아시아계 아이는 좋은 학교에서 배제돼서는 안 되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제한적으로 입학돼서도 안 된다.
두 번째 관심사는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이다.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계는 기업가 정신을 갖고 있어 창업을 선호한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중국인은 모두 타고난 상인이며 잠재적 자산계급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 이후의 중국 경제 성장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그들은 모든 자본가들과 마찬가지로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 번째 관심사는 경찰의 보호를 받는 것이다.
그들은 경찰이 더 많은 인력을 파견해 차이나타운과 같은 아시아계 커뮤니티에 순찰을 늘리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들은 시정부에 경찰 예산을 늘릴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아시아계의 이 같은 구체적인 요구는 아시아계 증오 반대 운동을 통해 표출될 가능성은 낮다. BLM도 안티파도 민주당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중국 공산당이 배후에서 하는 역할이 더 해로울 것이다. 지난 주말 시위에서 붉은 옷을 입은 사람 한 명이 앞장서서 “미 제국주의 타도” 구호를 외치면서 중국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미국에서 중공의 ‘애국주의’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데 대해 재미 중국인들은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미국의 공산주의 바이러스는 이미 발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 민주당 내부에 숨어 민주당 극좌파의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의 구호는 ‘평등’, ‘선거권’ 등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의 이런 구호는 특히 믿을 수 없다.
1940년대 후반, 중공은 중국 대륙에서 국민당과 내전을 벌여 정권을 탈취했다. 중공이 장악한 모든 매체에서 그들은 ‘민주주의’와 ‘선거’를 장황하게 선전하며 1인 1표의 보통선거를 통해 최고 행정장관과 모든 의원을 선출할 것을 요구했다. 또 ‘일당 독재’에 반대하고, 정당이 군대를 통제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서구의 민주주의, 특히 미국을 찬양했다.
당시 중국의 많은 민중과 지식인들은 국민당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그리고 중공의 그럴듯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중공 쪽으로 돌아섰다.
10년 후 중공은 정권을 잡았고 대륙을 절대적으로 통제했다. 그때 그들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외치지 않았고, 보통선거는 아예 사전에서 사라졌고, 군대 국가화를 요구하는 것은 중범죄가 됐고, 200만 명의 중국 지식계 엘리트들을 감옥에 처넣었다.
바로 조금 전, 필자는 코로나19를 연구한 의료 전문가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봤다. 그는 주요 연구 방법 중 하나가 이 병에 걸린 사람의 시체를 해부하는 것이라며 바이러스가 인체 장기를 어떻게 하나씩 손상시켰는지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문득 나도 전문가처럼 중국 대륙에서 실패한 공산주의 실험을 해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미국의 공산주의 바이러스는 지금 같은 방식으로 퍼지고 발작하고 있고, ‘투쟁’과 ‘증오’는 이 병의 최초의 증상이다. 당시 중국 공산당이 민주주의를 선전했던 것처럼 민주당이 추진하는 ‘평등’과 ‘증오 반대’ 운동을 우리는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다른 인종을 증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