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알래스카에서 미∙중 고위 당국자가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회담을 가진 가운데, 양제츠 중국 공산당(중공) 외교부문 수장이 미국 측을 향해 말을 가리지 않았을 정도로 양측의 교전이 치열했다.
그러나 회담 첫날, 중공이 재차 경제적 통일전선(통전·적과 내통하는 공작)을 벌여 월가의 거물 JP모건이 중공 초상은행(招商銀行)의 전략적 투자자로 영입됐다. 같은 날 중공은 지속적인 외자 유치를 위해 보험업 관리 세칙을 개정했다.
양제츠가 ‘전랑(戰狼∙늑대전사)식’ 발언을 하면서도 중공이 경제적 이익을 내세워 미국 월가를 통전한 것은 중공이 아직 현재 미∙중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도 일부 미국인을 끌어들이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중 회담, 공개석상에서 교전… 말속의 말
3월 18일부터 19일까지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잭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양제츠 중공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양측은 실제 회담 시작 전, 언론과의 사진 촬영에서 이례적으로 날카로운 언사로 맞섰고, 10분 만에 끝났어야 할 개회사는 결국 1시간여로 늘어났다.
양제츠는 중공의 ‘전랑식’ 퍼포먼스를 다시 선보였다. 개회사는 원래 2분씩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양제츠 혼자서만 무려 17분가량 발언했고 심지어 “우리가 서양인에게서 받은 고생이 아직 부족하냐”며 말실수를 하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제규범을 준수하는 데 대해 블링컨 장관은 미국 측이 이번 회의에서 언급할 문제는 미국과 중국 양국뿐 아니라, 이 지역의 다른 나라, 그리고 전 세계에 관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규칙에 기초한 국제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더 폭력적인 세상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블링컨 장관은 “‘규칙에 기초한 질서’라는 말 외에 또 다른 선택지는 권력이다. 즉 승자독식이라는 진리 말이다. 우리 모두에게 있어 그건 더 폭력적이고 불안정한 세계”라고 말했다.
중공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직접 반박했다.
양제츠는 “세계 대부분 국가가 미국이 말하는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미국의 발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국제적 여론이고, 소수자가 만든 규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이른바 ‘규칙에 기초한’ 국제 질서라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진 연설에서 양제츠는 어떤 방면에서는 비교적 말투가 온화했다. 경제 같은 방면 말이다.
양제츠는 회담에서 “양국 간 경제 접촉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고, 이러한 갈등은 이성적으로 다뤄야 한다. 미∙중 무역은 이미 매우 큰 성과를 거두었으니, 한층 더 올라가야 한다. 미국의 재중(在中) 기업 대부분은 중국의 비즈니스 환경이 좋다고 여기고 있으며, 아무도 그들에게 중국에 머무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은 중국에서 혜택을 볼 수 있고,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 있고 싶어 한다”고 주장했다.
리린이(李林一) 시사평론가는 양제츠가 ‘미∙중 무역은 이미 큰 성과를 거두었으니 한 층 더 올라가야 한다’고 말한 것은 중공이 예전처럼 약간의 경제적 이익을 양보하고 미국인을 상대로 통전을 벌일 준비가 되어있단 뜻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월가의 금융 개방이다.
앞서 리커창 총리는 양회에서 ‘이익의 양보’를 언급했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금융 기업의 합리적인 이익의 양보를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미∙중 회담 때도 나온 말이다.
2020년 6월 17일,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과 양제츠는 하와이에서 회담을 가졌다. WSJ은 당시 그 회담을 ‘일촉즉발’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리커창 총리는 국무원 상무회의를 열어 “금융 기관이 기업에 더 합리적으로 이익을 양보하도록 유도하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리커창 총리가 ‘이익 양보’ 발언을 한 지 이틀 뒤인 2020년 6월 19일, JP모건은 한 선물회사를 완전히 지배하도록 승인 받았다. 8월엔 또 다른 월가의 거물, 블랙록(BlackRock)이 중국에서 허가를 받아 전체 공모 펀드를 개설할 수 있는 최초의 외국 자본 기업이 됐다. 시티그룹은 9월 2일 중국에서 증권투자펀드 위탁 운용을 승인 받았다.
미∙중 회담 중 월가를 전략적 투자자로 끌어들인 중공 은행
이번 미∙중 회담에서 공식적으로 교전이 벌어졌던 그 날, 중국의 금융 분야에서는 미국 월가 기업들과 관련된 소식들이 나왔다.
3월 19일 저녁, 초상은행은 100% 투자 회사 은행 모집에 대해 외부 전략 투자자로 JP모건을 도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공고에 따르면 이 전략적 투자자는 약 26억 6700만 위안(약 4633억원)을 출자하며, 이 중 약 5억 5600만 위안(약 966억원)이 초상은행 재무관리 자본으로 계상된다. 증자가 끝난 뒤 초상은행은 90%, 전략적 투자자는 10%의 지분을 갖게 된다.
이번에 도입된 전략적 투자자는 모건그룹의 아시아 내 자산운용 부문과 주요 운용사로, 모건그룹이 100% 지분을 간접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중국은행보험감독위원회(은보감위)는 ‘외국보험공사 관리조례 개정 등에 관한 세칙’을 발표해 외국 보험기업과 외국 금융기관 외자 투자보험공사의 진입 기준을 더욱 명확히 했다.
세칙 개정 전 외국계 보험사의 외국인 주주는 외국 보험회사로 제한되어 있었다. 개정 후 외국인 주주는 외국계 보험회사, 외국계 보험기업, 기타 외국계 금융기관 등 모두 3개 부류로 늘어났다. 또한 외국계 보험회사의 유일 또는 주요 주주는 외국계 보험회사나 외국계 보험기업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밖에 중공 은보감위는 합자(合資)생명보험의 외자 비율 제한을 없앴는데, 이번 개정으로 시행세칙 중 외국인 주식 비율에 관한 제한 규정이 삭제됐다.
“중공, 미∙중 관계 굉장히 의식하고 있다”
리린이 평론가는 이번 미∙중 회담에서 양제츠가 ‘전랑식’ 발언과 함께 경제적 이익으로 미국 월가를 통전했다는 것은 중공이 실제로 미∙중 관계를 굉장히 의식하고 있고, 일부 미국인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 관료는 시진핑의 ‘세계를 똑바로 보는 모습’도 보여줘야 하고, 국내에서 중공의 통치를 지켜내기 위한 퍼포먼스도 해야 한다. 현재 국내의 경제 카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중공은 민족주의를 부추겨 정권을 지탱해 나갈 수밖에 없다.
중공 외교관의 강경한 언사에 대해 잘리나 포터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지난 19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중국 측의) 이런 외교 연설이 과장되거나 심지어 국내 청중에게 들려주려는 것뿐임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중 양측의) 토론은 기자들이 방을 비운 뒤에야 차분해졌으며 예정된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실질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3월 18일 회의 직후 ‘신축년(辛丑年) 비교’라는 제목의 그림이 중공 관영 매체의 추진에 힘입어 순식간에 웨이보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사진에는 1901년 신축조약 체결 당시의 현장 사진과 지난주 미∙중 고위급 회담 사진이 붙어 있었다. 두 회의 모두 신축년에 이루어졌다.
해당 사진은 중공 기관지 인민일보의 웨이보에 올라온 것으로, 런민일보가 ‘미국은 자격이 없다”는 양제츠의 말을 인용하기도 해 많은 논평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