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우한폐렴(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이 다시 유행하는 가운데,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인의 공개적인 활동이 뜸하다.
집단감염이 공식발표된 11일을 전후한 이들의 행적은 베이징을 떠나 있다가 부득이한 경우에만 베이징으로 돌아와 모습을 나타내는 공통적인 행동 패턴을 보인다.
수도 베이징은 중국 공산당이 가장 엄밀하게 방어하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지난 12일 공산당 지도부 집단거주, 업무지역인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불과 2.5km 떨어진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2003년 사스(SARS)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를 기억하고 있는 당 지도부의 충격은 컸을 것으로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2003년 사스에 뚫렸던 중난하이의 기억
2003년 4월 베이징에 사스가 창궐하면서 중난하이에서도 감염자가 나오자 공산당 지도부는 대책팀인 A조와 예비팀인 B조로 나뉘어 역할을 분담했다.
A조에 속한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와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 등은 베이징에 남거나 진원지인 광둥성에 내려가 방역을 진두지휘했고, 쩡칭훙(曾慶紅) 부주석 등 B조와 퇴직 고위층, 당 원로들은 은신처로 이동하거나 베이징을 떠났었다.
당시에도 사건은폐가 논란이 됐었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후진타오-원자바오는 “실상을 알려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장쩌민(江澤民) 계파였던 당시 위생부장 장원캉(張文康)은 “사망자는 겨우 3명, 베이징에서의 생활은 안전하다”며 사건을 은폐했다.
베이징 시민들의 격분을 산 장원캉은 즉각 면직됐지만, 당 선전기관은 여전히 후진타오-원자바오 지시를 무시하고 사건은폐를 계속했다. ‘종이호랑이’로 불린 후진타오-원자바오 정권의 한계이기도 했다.
2020년 베이징, 모습 감춘 시진핑과 6인방
지난 11일 베이징 당국이 중공폐렴 신규 확진자 발표를 전후해, 중국 관영언론에서 공산당 지도부의 공식활동 보도는 눈에 띄게 줄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서는 ‘화상통화’ ‘문건하달’ ‘과거담화’ 등 눈에 띄게 소극적으로 변한 지도부의 활동을 어떻게든 기사화하기 위해 얼버무리는 기사를 실었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지난 11일 이후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화상회의만 2번 참석했다. 17일 오후 시진핑은 베이징의 한 회의장에서 중국-아프리카 방역 화상 정상회담을 주재했다. 닷새 뒤인 22일에는 중국-유럽연합(EU) 화상 정상회담에 참석했다.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인 것은 화상으로 등장한 이 두 차례가 전부였다.
서열 2위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 역시 ‘온라인’을 선호했다.
15일 베이징에서 온라인 기반으로 열린 ‘제127회 중국수출입상품박람회’ 개막식 참석이 공개적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딱 한 번의 활동이었다.
리커창은 17일 국무원 상무회의를 주재했지만, 중국중앙(CC)방송은 회의 현장 화면 없이 문자로만 전했다. 22일 중국-EU 화상 정상회담에 리커창도 참석했지만, 장소는 외부와 단절된 회의실이었다. 둘 다 화상회의였다.
서열 3위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은 6월 들어 지방 시찰 등으로 베이징을 떠나 있다가 지난 19~21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인대 회의에만 참석했다. 보도 화면 속 리잔수는 말을 하지 않을 때는 항상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서열 4위인 왕양(汪洋) 국무원 부총리는 공개석상에 세 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반드시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였다.
지난 8~12일 신장위구르자치구를 시찰한 왕양은 19일 베이징에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제37차 좌담회를 주재하고 이후 22일 정협 제12차 회의 개막식에 참가했다. 그는 두 차례 회의에서 발언할 때를 제외하면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시진핑의 책사이자 서열 5위인 왕후닝(王滬寧) 중앙서기처 서기도 화상으로만 모습을 비쳤다. 17일 시진핑이 주재한 중국-아프리카 방역 정상회담 배석 등 2차례 화상회의 참석이 전부였다.
서열 7위인 한정(韓正) 상무위원 역시 11일 이후 딱 한 번만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였다. 12일~14일 제24회 동계올림픽 실무지도팀 전체회의 석상이었다. 이후 한정의 활동에 대한 언론보도는 없었다.
가장 궁금증을 일으키는 인물은 서열 6위인 자오러지(趙樂際) 중앙조직부장이다. 그는 6월 한 달 동안 한 번도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6월 언론보도 한 번도 없었던 상무위원 1인
2003년 A·B조로 나뉘어 질병으로 사망할 경우까지 대비하고 방역에 뛰어들었던 후진타오-원자바오 정권과 비교하면 2020년 시진핑-리커창 정권은 훨씬 움츠리는 모양새다.
특히 6월 이후 관영매체에서 당 최고회의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개최 보도가 한 번도 없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현재 중국 공산당은 중공 바이러스 확산 외에도 홍콩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서방사회와의 갈등, 미중 무역협정, 인도와의 국경분쟁, 대만의 반(反) 공산당 행보 등 현안이 산적하다.
여느 때라면 벌써 몇 차례 정치국 상무위원회 개최 소식이 전해졌을 상황이다. 그런데 대면회의는커녕 화상회의가 열렸다는 보도조차 찾아볼 수 없다.
중국 문제를 추적해온 언론인 종위안(鐘原)은 “현재 당 안팎 상황을 봤을 때, 당 지도부가 몇 차례 화상회의 형태로 대책을 논의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언론에 보도를 내지 않았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그는 “화상회의를 했더라도 이를 보도할 경우, 보도 과정에서 지도부의 거취가 드러난다. 현재 당 지도부는 감염자와의 접촉을 피하려 베이징을 벗어났거나 혹은 심지어 일부는 이미 감염됐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상무위원 7인의 활동이 11일 집단감염 재발 이후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가장 감염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로 6월 한 달간 언론에 전혀 모습을 비추지 않은 자오러지 부장을 지목했다.
종위안은 “어디까지나 추측”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다른 상무위원 6명은 모두 6월에 화상으로나마 공개적인 활동을 했다. 그러나 자오러지는 지난 5월 29일 정치국 제20차 집체학습 당시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머물러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자오러지가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있다. 베이징을 이미 벗어났다는 추측이 맞는다면, 지방 시찰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