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 중국 후베이성 지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중국 농업농촌부는 후베이성 선눙자(神農架) 삼림지구에서 최근 ASF로 죽은 멧돼지 7마리가 발견됐다고 홈페이지에 보도했다.
지난 19개월 동안 수백만 마리의 돼지가 전염병으로 죽어 나갔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국가적 대응은 더욱 방치됐다. 로이터통신의 조사 결과 ASF의 급속한 확산은 중국 당국이 체계적으로 발병을 축소했기에 가능했다고 규명했다.
수의사, 육류업계 분석가, 양돈 농부들은 돼지 축산 농가에 대한 구제금융 자금 부족, 돼지고기 수송과 도살에 대한 느슨한 제한 조치, 중국 당국의 전염병 은폐가 전 세계 양돈 업계를 위협할 정도로 ASF 확산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대응에서도 중국 정권의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실책이 드러났는데, 인체 감염 위험이 높은 전염병에 대해 국민은 침묵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거나 전염병의 실상을 폭로하는 온라인 게시물을 단속하며,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
중국에서 15년을 보낸 수의사 에드가 웨인 존슨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없어서 농민과 양돈업계는 물론 정부까지도 전염병이 어떻게, 왜 이렇게 빨리 확산됐는지 알 수 없었고 예방하기도 어려웠다”고 진단했다. 통제하기 위해서 병의 근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중국 농촌부는 로이터통신에 성명을 통해 “ASF 발생에 관해 모든 지역에 시의적절하고 정확한 보고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전달했으며, 은폐나 보고지연에 대해 무관용 정책을 지켰다”고 밝혔다.
하지만 돼지고기 돈육 관련 일선의 농민, 공급업체와 인터뷰에서는 그 반대 주장이다. 12명 넘는 농민이 ASF발병을 현지 당국에 보고했지만, 중국 정부 공식 통계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중앙 당국에도 보고되지 않았다. 중앙 정부의 규정에 따라 지방 당국은 ASF로 죽은 돼지 수만큼 농가에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 공무원들은 또한 정치적 실책을 낳을까 우려해 농부들이 집단 발병사례를 보고해도 관행적으로 바이러스 감염 검사를 거부해 왔다.
허난(河南)성에서 돼지를 사육하는 농부 자오 씨는 그의 농장에서 ASF로 돼지가 전멸했지만, 현지 관리들이 그의 말을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담당 관리는 “우리 지역에는 ASF가 단 한 건도 없다. 내가 신고하면 우리 지역에 감염 사례가 발생하게 된다”며 그를 돌려 보냈다.
감염 확산을 도운 느슨한 제한 조치
ASF 바이러스에 감염된 돼지는 고열, 식욕 저하, 설사에 시달리다 내부 출혈과 피부가 붉게 변하고 장기가 부어올라 1주일 안에 죽음으로 이어진다. 치사율 100%인 무서운 돼지 전염병은 구제역과 달리 아직 상용화된 백신도 없다.
육류업계의 추정에 의하면 지난해 4억4천만 마리에 이르던 중국의 돼지 사육 두수 중 절반이 ASF 확산에 따른 예방적 조치로 살처분됐다. 이는 전 세계 돼지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1월 돼지고기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116%나 올랐다고 발표했다.
2018년 8월 중국 북부 랴오닝성 선양에서 처음 보고된 ASF는 8개월여 만에 31개 성.직할시∙자치구에 모두 퍼졌고, 아시아 10개국으로 확산됐다.
2007년 ASF가 러시아 및 코카서스에서 발생했을 때부터 수의사들은 여러 번 중국 당국에 위험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양의 한 농장에서 첫 사례가 발견된 지 불과 2주 만에 남쪽으로 1000km 떨어진 곳에서도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 원인은 돼지고기 가공업체 WH그룹이 헤이룽장성에서 사들인 돼지 때문이었다.
존슨 수의사는 초기 발병 후 4주가 지나서야 중국 정부가 전 지역에 돼지 차량 운송을 차단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운송 제한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의 돼지고기 소비자들이 냉장고기보다 도축장에서 나온 신선한 고기를 선호하는 것 또한 전염병 확산에 일조했다. 이는 살아 있는 돼지 수십만 마리가 매일 주요 도시의 도축장과 가공공장으로 장거리 이동하며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의사들은 바이러스가 더러운 농기구나 축산 트럭에서 몇 주 동안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고 했다.
보고되지 않는 돼지 열병
로이터 통신은 중국내 돈육 생산성이 높은 지역에 발병 건수 사례가 극소수임을 발견했다.
북방에 인접한 허베이·산둥·허난 지역은 2017년 중국에서 도살한 돼지 7억 마리 중 약 20%의 공급처다. 3개 지역에서 보고된 감염수는 각각 한 건씩 뿐이었다. 업계 소식통은 수백만 마리의 돼지가 죽었다고 전했고, 믿을 만한 여러 개의 일화가 보고됐다.
로이터 통신은 3개 지역 당국에 논평 요청을 했으나 산둥·허난성 당국은 응답하지 않았고 허베이농업부는 “전염병을 엄격하게 보고하고 검증했다”면서 “현재 병세가 안정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허난성 농민 6명이 2018년 말과 2019년 상반기에 발병을 보고했고 현지 당국이 돼지 사체 처리를 도왔지만 바이러스 검사는 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2019년 3월 허난성의 농부 왕수시는 돼지 400마리를 잃었다. 중국 당국은 당시 질병 검사 키트 판매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 씨는 직접 검사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먹지 않았고, 항열제를 주사해도 소용이 없었다”며 “낫지 않으면 돼지열병”이라고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지난해 9월 호주의 한 연구에 따르면 항구와 공항에 도착한 아시아 여행객에게서 압수한 육류제품 중 48%가 ASF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였다. 호주 동물 건강 연구소장인 트레버 드류는 이 연구 결과가 “당국에 보고되지 않은 감염 건수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방콕에 본사를 둔 짜웬포크판(CP) 그룹은 중국산 돼지고기를 대량 유통하는 태국의 최고 재벌기업이다. 중국 지사 CP의 영업을 총괄하는 바이산린은 랴오닝·산둥·허난·장쑤성 농장에서 ASF가 발병했다고 밝혔다. 상장회사로서 로이터 통신에 응답한 드문 예이다.
로이터통신이 확인한 농업부 ASF 감염 자료에 따르면 CP가 밝힌 감염 사례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중국 정부 보상 규정이 감염 보고 은폐와 축소의 동기
뉴욕 외교위원회의 보건 관리 전문가 황옌중은 중국 정부의 보상 규정이 지방 정부로 하여금 발병 보고를 회피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2015년 ‘ASF 비상 실행 계획’을 발표해 전염병이 발견된 농장과 반경 3km 이내의 모든 돼지를 살처분하라고 명령했다. 2018년 중앙 정부는 도살된 돼지 한 마리 당 보상금을 기존 800위안(약 13만7000원)에서 1200위안(20만5000원)으로 인상했다. 중앙정부가 지역에 따라 40~80%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지방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
2019년 4월 농업부는 ASF를 억제하기 위해 중앙 정부가 101만 마리를 도살하는 데 6억3000만 위안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인터뷰에 응한 10여 명의 농부 중 누구도 돼지 1두당 1200위안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허난성 왕 씨는 돼지가 죽은 지 거의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바이러스 감염된 돼지고기 유통
농부들은 전염병 징후 초기에 돼지를 재빨리 파는 방법을 택했다. ASF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이되지 않는다고 알려졌으나, 세계식량자원기구(FAO)에 따르면 ASF 바이러스 생존 기간은 냉동 고기에서 1000일, 건조한 고기에서 182~300일이다. 가공·요리된 고기에 바이러스가 살아남아 있을 경우, 사람이 먹고 남은 고기를 돼지에게 먹인다면 바로 감염될 수 있다는 얘기다.
2018년 11월, 황바오쉬 중국동물보건역학센터 부국장은 음식 쓰레기를 돼지에게 먹여 바이러스가 전이된 사례가 23건이라고 밝혔다. 중앙 정부가 ASF 확산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감염된 돼지를 판 사례는 부지기수였다. 남부 광시성 보바이현의 황 씨는 지난해 4~5월 돼지500마리를 잃었다. 지방정부에 신고했지만 관리는 “돼지를 팔 수 있을 때 서둘러서 팔라”고 충고할 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 농업부는 2019년 8월 발병 신고를 하지 않은 지방 정부에 질병 관리 실패의 책임을 물어 600명 넘는 현지 직원을 징계 조치했다고 밝혔다.
7월 도축장의 모든 돼지를 검사하도록 한 중국 정부의 새로운 규정에도 불구하고 감염된 돼지를 판매하는 관행이 계속됐다. 농업부는 11월에 도축장에서 채취한 2000개 이상의 샘플 중 5%가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올해 1월 발표했다.
돼지열병 제2의 확산 기미
지난 1월 한창푸 중국 농업부 장관은 ASF에 대해 상황이 안정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통계는 신뢰를 잃었다. 농업부가 163건의 ASF로 돼지 119만 마리가 살처분됐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중국 전체 돼지의 1%에 불과하다. 매월 돼지 숫자를 추적하는 별도의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9월까지 돼지 숫자가 전년보다 41%나 줄어들었다.
네덜란드 사료재조기업 아그리팜(Agrifirm)의 요한 드 셰퍼 상무는 최소 60%의 돼지가 줄었다고 했는데, 사료업계 다른 사람들과 일치하는 평가였다.
문제는 일부 지역에서 제2의 확산 기미가 보인다는 것이다.
로이터 통신이 입수한 중국 최대 증권회사 국태군안증권 분석가들의 내부문서에 따르면, 지난해 농경지가 밀집한 허난성의 남부와 서부에서 약 60%의 돼지가 죽었는데 최근 동부로 전염 경로가 이동하면서 20%가 더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돈 농가 또한 허난성을 경고했다.
허난성의 자오 씨 농가는 지난해 10월 겨우 두 마리만 남긴 채 키우던 돼지 196마리를 일주일 만에 잃었다.
자오 씨가 당국에 신고하러 가니 관리는 발설하면 3km 이내의 모든 돼지를 살처분해야 함을 상기시키며 함구하도록 했다. 그는 이웃을 위해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자료 조작을 계속 이어졌다. 1월에 군 공무원들이 자오 씨의 농장을 방문해 사육하는 돼지가 180마리라고 기록해 갔다.
두 마리만 남아 있을 뿐인데, 그는 “나라가 어둠 속에 갇혀 있다”고 씁쓸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