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일본은 ‘소재·장비’, 한국은 ‘반도체’…넵콘 재팬이 던진 메시지

강정호 인턴기자
2026년 01월 22일 오후 10:22
넵콘 재팬 2025 | 강정호/에포크타임스넵콘 재팬 2025 | 강정호/에포크타임스

반도체 호황 속 한국의 구조적 과제를 일본 산업 생태계에서 읽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호황은 얼마나 단단한 기반 위에 놓여 있을까.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 제조·연구개발(R&D) 전시회 ‘넵콘 재팬(NEPCON JAPAN) 2026’은 반도체 강국 한국이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비춰보는 거울이 되고 있다.

지난 21일부터 사흘간 도쿄만 연안 오다이바의 국제전시장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이번 박람회에는 약 1850개 기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이번 전시회는 일본 전자 산업이 완제품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도 어떻게 글로벌 생태계에서 생존해 왔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한국이 대규모 물량과 첨단 양산 공정으로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사이, 일본은 대체 불가능한 소재와 장비를 무기로 ‘병목 구간’을 장악해 왔다. 한국이 반도체를 만드는 요리사라면, 일본은 최고급 식재료와 도구를 공급하는 역할이다. 한국이 물건을 잘 만들수록 일본 기업의 매출도 함께 오르는 구조다.

◇ 일본의 ‘조용한 지배’, 소부장 생태계가 장악한 공급망

주최 측이 공개한 전시 구성을 보면 이 전시회는 반도체 완제품이나 최종 시스템보다 전자 산업을 떠받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와 공정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이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제조 기반 경쟁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무대다.

업계는 완제품 시장에서 일본의 존재감이 줄었음에도 소부장 분야에서는 여전히 핵심 공급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화학 소재, 정밀 계측·검사 장비, 고신뢰성 부품 등은 일본 기업들이 독보적인 강점을 가진 영역이다. 이러한 기술은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렵고, 한 번 채택되면 장기간 표준이 되는 경우가 많아 산업 전반의 안정성을 좌우한다.

넵콘 재팬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기술 경쟁력’을 확인하는 자리다. 전시회 곳곳에는 특정 공정에서 독자 기술을 확보한 중소·중견기업들이 포진했다. 이들은 비록 대중적 인지도는 낮지만, 글로벌 제조 현장에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공급하며 산업 생태계의 하부 구조를 견고히 지탱하고 있다.

◇ ‘제조 강국’ 한국… 외형적 성장 이면엔 ‘해외 의존도’

반면 한국 반도체의 자화상은 매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미콘 코리아’에서 확인된다. 오는 2월 11~13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 예정인 이 전시회는 첨단 공정, 대규모 생산 기술, 최신 반도체 로드맵을 중심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재’를 보여준다.

한국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핵심 제조 강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생산 능력과 기술 경쟁력 모두 안정적인 우위를 확보하면서, 데이터센터 등 인공지능(AI) 인프라 확대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수요 급증의 수혜를 가장 크게 누리는 국가로 꼽힌다.

하지만 제조 역량에 비해 일부 핵심 공정과 장비, 고순도 특수 소재 분야에서의 높은 해외 의존도는 한국 산업의 ‘아킬레스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도체 호황 속에서도 공급망의 기초가 되는 영역에서 구조적 약점이 남아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중국의 ‘속도전’ 뿌리칠 해법, 일본의 ‘축적’에서 찾다

넵콘 재팬에서 포착되는 일본의 산업 구조는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중국의 이른바 ‘반도체 굴기’가 막강한 자본력과 인해전술을 앞세운 ‘속도전’이라면, 일본의 소부장 경쟁력은 자본만으로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는 ‘시간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반도체가 중국의 거센 추격을 따돌리고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려면 왜 일본식 ‘축적 모델’을 하나의 해법으로 고려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자본으로 복제할 수 없는 미세 공정 레시피와 원천 기술의 자립 없이는 언제든 공급망의 병목에 가로막힐 수 있어서다.

결국 한국 반도체가 메모리의 성공이라는 ‘열매’에 안주하지 않고 제조의 ‘뿌리’까지 아우르는 강건한 산업 구조로 발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완제품 시장을 내주고도 살아남은 일본 기업들의 생존 전략은, 중국의 추격을 마주한 한국 반도체에 묵직한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