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원화만 약세…환율 1500원선 위협 속 서학개미도 주춤

2025년 12월 16일 오전 9:58
미국 달러화 | 로이터/연합미국 달러화 | 로이터/연합

달러인덱스 하락에도 수급 압박 지속
해외투자·연말 달러 수요 겹쳐 고환율 고착화 우려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에 바짝 다가서며 외환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달러 약세 흐름과 달리 원화는 주요국 통화 가운데 유독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고환율 부담에 해외 주식 투자에 나섰던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세도 눈에 띄게 둔화되는 모습이다.

14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12일 원/달러 환율의 주간거래 종가는 1473.7원으로 집계됐다. 야간거래에서는 장중 1479.9원까지 오르며 1500원 선에 근접했고, 종가는 1477.0원에 마감했다. 이는 지난 4월 초 이후 최고 수준이다. 환율은 추석 연휴 이후 상승세를 이어오며 11월부터는 1450원대 위에서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월평균 환율 역시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주간거래 종가 기준 월평균 환율은 1460.44원으로,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8년 3월 이후 가장 높았다. 이달 들어서도 2주간 평균 환율은 1470.4원으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연평균 환율은 1420.0원으로, 외환위기였던 1998년 연평균(1394.97원)을 웃돌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특히 달러 약세 국면에서도 원화만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시장의 우려를 키운다. 이달 들어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0.69% 하락했지만, 같은 기간 호주달러와 캐나다달러, 유로화, 영국 파운드, 일본 엔화 등 주요 통화는 모두 강세를 나타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달 중순 이후 하락해 98선까지 내려왔지만, 원/달러 환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괴리의 핵심 원인으로 달러 수급 압박을 지목한다. 개인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 투자 확대, 기업과 기관의 환헤지 수요, 연말 결제·송금 수요가 겹치며 달러 매수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종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최근 환율 상승 요인의 약 70%가 국민연금과 개인 투자자 등의 해외 투자 증가에 따른 수급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해외 투자 흐름은 여전히 강하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1월 한 달간 국내 개인 투자자는 해외 주식을 55억2400만 달러 순매수 결제했다. 이달 들어서도 지난 12일까지 약 11억 달러를 순매수했다. 다만 환율 부담이 커지면서 최근 들어 매수 규모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예탁결제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 6∼12일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 결제액은 2억2828만 달러로, 한 주 전의 10억786만 달러 대비 77% 넘게 감소했다. 2주 전과 비교하면 감소 폭은 더욱 크다. 이 기간 환율은 1468.8원에서 1473.7원으로 4.9원 상승했고, 야간 거래에서는 1480원에 육박했다. 고환율로 환전 부담이 커지자 서학개미들도 투자 속도를 조절한 것으로 풀이된다.

환율 급등에 외환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환율이 1480원 선에 근접하자 정부는 휴일이던 지난 14일 긴급 회의를 소집해 시장 상황을 점검했다. 당국은 구체적인 회의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외환시장 안정 조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대응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수출기업의 환전 동향과 해외 투자 흐름을 정례 점검하고 있으며, 환전 인센티브 제공 등 정책 수단도 검토 중이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와 외환시장 안정을 조화시키기 위한 ‘뉴 프레임워크’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연말 만료 예정인 외환당국과 국민연금 간 연간 650억 달러 한도의 외환스와프 계약 연장 여부 역시 주요 변수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낙원 NH농협은행 FX파생전문위원은 내년 환율 범위를 1400∼1520원으로 제시하며 달러 매수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만 놓고 보면 적정 환율은 1360원 수준이지만, 수급 요인을 고려하면 내년 평균 환율은 올해와 비슷한 1420원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달러 약세 국면에서도 원화만 흔들리는 현상이 이어지면서, 고환율이 단기 변동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