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화재 참사…중국산 ‘가연성’ 그물망과 탐사보도 언론의 실종
11월 26일 오후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에서 화재가 발생, 전체 8개 동 중 7개 동을 태우며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냈다. | 우루이뤄/에포크타임스 목격자·현장 취재 언론인 “그물망 불타며 순식간에 불길 확산”
홍콩 당국, 조사 결과 없이 “그물망 방염 기준 충족” 진화 급급
중국 유령회사가 공급했지만, 中 공산당 ‘국가안전법’에 사건 파헤칠 언론 사라져
홍콩의 노후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초대형 화재가 단순한 건축물 화재를 넘어, 부실한 시공 관리와 그물망 자재의 품질 문제, 그리고 당국의 성급한 수습 발표까지 겹치며 ‘인재(人災)’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불길이 단 몇 분 만에 고층까지 치솟고 화재 경보도 울리지 않았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중국산 그물망이 급격한 확산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번 참사로 128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실종된 가운데, 책임 소재와 조사 방향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이번 화재는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중국명 홍푸위안·宏福苑)에서 지난 26일 발생했다. 불은 바닷가에 인접한 건물 부근의 지상 적치물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길이 약 6분 만에 3~4층 이상으로 치솟았고, 그사이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불은 급속히 확산돼 7개 동 전체가 거대한 화염에 휩싸였고, 여러 가구에서는 가스 폭발로 추정되는 폭발음까지 들렸다. 이번 화재는 현재까지 148명 사망, 79명 부상이라는 인명 피해를 일으킨 대형 참사로 기록됐다.
이번 사고로 충격에 휩싸인 홍콩 시민사회와 온라인은 희생자를 추모하면서도, 사고 원인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홍콩의 적잖은 전문가들은 사고의 양상과 규모, 그리고 퍼지는 속도 등을 종합해 “재해가 아닌, 심각한 인재(人災)”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온라인과 시민사회에서는 크게 두 가지 논란이 뜨겁다. 하나는 보수공사용 그물망과 대나무 비계 중 진짜 화재 확산의 주범은 무엇인지, 다른 하나는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그물망은 방염 기준을 충족했다’고 선언한 것은 아닌지다.
사고 직후부터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그물망으로 인해 순식간에 불길이 커졌다”는 목격담이 퍼졌지만, 홍콩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통적 건축 자재인 대나무 비계 대신 철제 비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고 원인을 대나무 쪽에 맞추는 모양새다.
그러나 홍콩 전 천문대장(기상청장)인 람 추잉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에 잘 타는 것은 그물망과 발포 폼(외벽 소재)인데, 왜 책임은 상대적으로 불에 잘 타지 않는 대나무에 따지나”라고 반문했다.
배우 견자단의 부인 왕스스 역시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다수 홍콩 시민들도 직접 촬영한 영상들을 통해 불길은 섬유망과 외벽 소재에서 빠르게 번졌으며, 대나무 비계가 불길 속에서 쉽사리 타지 않는다는 점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대나무 비계도 불에 타긴 했지만, 발포 폼과 그물망으로 인해 화재가 빠르게 대규모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철제 비계로 교체하면 누가 이익을 보는가”라는 질문도 나온다. 노후 주택이 많은 홍콩에서는 대형 수리 공사의 경우 건물 한 채당 수십억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집주인 1명당 최대 10만~20만 홍콩달러(약 2천만~4천만 원)를 부담해야 하는 구조다. 이익 집단이 개입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 화재 현장 | 샤오룽/에포크타임스
그물망, 왜 사건 초기부터 ‘화재 원인’에서 배제됐나
현장 취재를 한 언론인 천랑성(陳朗昇)은 화재 당시 중계 방송에서, “불길은 처음부터 섬유망을 따라 급격히 번지고 있었고, 2층까지 올라가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고 설명했다. 또한 오후 5시 무렵부터는 인근 여러 동에서 동시에 불길이 치솟는, 이른바 ‘화염의 도미노 현상’이 관측됐다고 했다.
그러나 화재 발생 이틀 만에 홍콩 경찰 당국은 “초기 감정 결과, 비계용 그물망은 방염 기준에 부합했다”며 화재 원인을 “하층 그물망에서 시작된 단순 화재”로 정의했다. 이 때문에 정식 감정·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정부가 ‘그물망 방염에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부터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졌다.
그물망 제조사가 중국 업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정부 당국의 사건 은폐 의구심은 증폭됐다. 공사 현장을 둘러본 이들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에 따르면, 건물 외벽에 설치된 그물망은 ‘산둥천쉬화섬섬유망유한회사’(山東宸旭化纖繩網有限公司·이하 산둥천쉬) 제품이었다. 품질검사 성적서는 산둥 빈저우(濱州) 검사센터 명의로 발급돼 있었다.
중국 기업정보 조회 결과에 따르면, 산둥천쉬는 산둥성 빈저우시 후이민현(惠民縣) 리좡진(李莊鎮) 난베이리촌에 등록돼 있다. 2019년 설립됐으며 등록 자본금은 300만 위안이다. 법정 대표자 이름은 ‘장산산(張珊珊)’으로 확인됐다.
장산산은 중국과 홍콩에서 제법 알려진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엄청난 규모로 코로나 감염 검사가 이뤄졌는데, 이 과정에서 몇몇 인물들이 정부와 결탁해 수천억 원을 벌어들였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 중심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장산산이었다.
싱가포르의 중국어 매체인 연합조보에 따르면 장산산은 란저우 핵쯔화시(蘭州核子華曦) 실험실을 포함해 전국 35개 진단 검사 업체 ‘감사’로 등재됐고, 이 업체들은 광둥·상하이·베이징·톈진·푸젠·안후이 등 전국에 분산돼 감염 검사를 도맡았다.
이 때문에 팬데믹 기간에는 “그녀의 회사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 곧바로 코로나가 터지고, 전원 코로나(핵산) 검사를 한다”는 말이 퍼졌다고 연합조보는 전했다.
중국 매체 시나재경도 2022년 11월 28일 기사에서 같은 문구를 인용하며 “베일에 싸인 미녀 장산산”에 관해 보도했다. 기사에서는 장산산을 24세의 젊은 여성으로 추정하며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는 장산산의 유일한 사진”을 공개했지만, 진위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그녀의 이름이 감사로 등록된 코로나 진단 검사 업체 상당수가 신생 업체들이었다며, 단 몇 달 만에 여러 회사를 등록하고서도 다수의 검사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온라인에서는 그녀가 공산당 고위층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 화재 현장. 불길이 닿지 않은 부분에 대나무 비계와 그물망이 보인다. 목격자들은 그물망을 타고 불길이 상층으로 순식간에 번졌다고 전했다. | 우루이뤄/에포크타임스
‘권력과 문제’를 감시할 언론의 실종… 중국화된 홍콩의 진짜 위기
홍콩 아파트 화재가 대형 참사인 진정한 원인, 중국산 저질 건설자재, 당국의 은폐 의혹도 논란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제 이러한 의혹을 밀도 있게 파헤칠 언론이 홍콩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홍콩 언론인 천랑성은 홍콩에 기반을 둔 시사·연예 전문 유튜브 채널 ‘전 토크(珍Talk)’와의 인터뷰에서 “과거라면 채널C, 입장신문(立場新聞) 같은 매체들이 이런 의혹을 끝까지 추적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그런 탐사 보도가 사라졌고, 시민들은 더 이상 무엇이 위험인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채널C는 홍콩 빈과일보 출신 기자들이 2021년 설립한 온라인 매체다. 2020년 중반 홍콩 독립언론 공백기에 활약했다.
실제로 자신을 홍콩 소방관이라고 주장한 한 익명의 네티즌은 이번 사건에 관해 “탐욕과 무시, 그리고 규제 실패가 결국 인간의 지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홍콩 시사 평론가 겸 건축가 제이슨 푼 역시 당국에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내 “심각한 결함” 등 사고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제이슨 푼은 ‘전 토크’에서 “사고 이전부터 해당 아파트 단지는 흑사회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엄밀히 통제했다”며 “(안전 사고 위험에도) 8개 동 전부 동시에 리모델링을 진행한 이유를 모르겠다”, “8개 동에서 화재 경보기가 작동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홍콩 시사평론가 사이먼 라우 사이렁은 “이번 사건은 단순 화재가 아니라, 처리 방식부터 정보 공개, 당국의 대응까지 전 과정이 중국식 정치 프레임에 갇혀 있다”며 “과거 홍콩이라면 구조가 우선이고 책임은 나중에 논했겠지만 지금은 모든 게 정치 논리로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20년 6월 홍콩판 국가안전법(보안법) 시행 이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같은 일부 보수화된 영어 매체를 제외하면 정부와 자본, 권력층을 겨냥한 심층 취재나 내부 고발형 보도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한때 사회 부조리뿐만 아니라 건축물 부실 공사, 공공사업 이권 구조 등을 추적하며 감시 역할을 했던 입장신문, 빈과일보(애플데일리) 등은 폐간됐다. 홍콩 에포크타임스도 인쇄소 괴한 습격 등 공격에 시달리다 언론 환경 악화로 신문 발행을 중단하고 온라인 신문만 유지 중이다.
– 이 기사는 홍콩 에포크타임스 차이쯔 기자가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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