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임금 체불, 민간서 국유기업까지 확산…中 인프라 산업의 ‘불안한 침묵’

2025년 11월 29일 오후 6:18
중국 베이징의 한 건설 현장. 근로자들의 실루엣이 보인다. 2022.2.28 | Noel Celis/AFP/연합중국 베이징의 한 건설 현장. 근로자들의 실루엣이 보인다. 2022.2.28 | Noel Celis/AFP/연합

중국 광둥성의 중견 공기업(國有企業)이 자금난을 이유로 임금과 복리후생비 일부 지급을 미루겠다고 내부 통지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비슷한 경영환경에 처한 지방 국유기업의 재정 건전성 전반에 대한 우려가 고조됐다.

지난 21일 광둥관웨이도로교량유한회사(廣東冠粵路橋有限公司·이하 관웨이공사)는 직원들에게 급여 조정 통지를 보내, 2025년 10월부터 매달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부분 급여”만 우선 지급하고, 나머지 급여와 복리후생비는 자금 사정이 나아진 뒤에 보충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사흘 뒤 회사는 다시 직원들에게 감사 서한을 보내 “경영진은 원래 직원들이 반발할까 우려했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차분했다’”면서 이 같은 침묵을 회사에 대한 “가장 깊은 신뢰”로 묘사했다.

회사는 묵묵한 직원들에 관해 경영진을 믿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소셜미디어에 나타난 직원들의 반응은 사측과 온도 차가 크다. 직원들은 “앞으로도 임금이 자주 끊기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다수 직원들은 사내 통지문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회사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조직 전체가 긴장된 분위기”라고 말했다. 10년 차 직원이라는 장(張) 모 씨는 에포크타임스에 “통지문 발표 후 적지 않은 동료들이 수입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씨는 “직원들도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공개적으로 말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을 뿐”이라며 아전인수격 해석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직하기 어려운 경제 여건으로 인해 일단 회사에 남아있자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잦은 구조조정 및 급여 체계 변경…소통 창구 없어 ‘강요된 침묵’

기술직에서 일한다는 또 다른 직원은 “지난 2~3년 동안 회사가 여러 차례 내부 조정을 거쳤고, 직무 통합·부서 폐지·인력 감축이 이어지는 가운데 급여 체계도 자주 바뀌었다”고 전했다. “통지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소통 창구가 없어 말을 할 수 없을 뿐”이라고 했다.

관웨이공사 인사부 관계자는 임금 체불 관련 상황에 관한 전화 질의에 “회사에서 직원들을 격려하는 내용의 서신을 보낸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취재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장 씨는 이번 임금 조정이 많은 가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특히 대출을 안고 있는 직원들에게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직원이 회사 결정에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제기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며 “회사는 직원들의 침묵을 ‘회사에 대한 신뢰와 지지’로 해석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다들 무력감을 느끼고 있으며, 일부가 소셜미디어에 통지문을 올려 불만을 해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회사 내부 문제점을 폭로하는 셈이다.

인프라 사업 수주하며 성장…중국 건설사의 성장 공식 따라

1997년 설립된 관웨이공사는 광둥성 교통청 산하 국유기업으로 지역 내 도로·교량 공사를 수주하며 덩치를 키웠다. 지난 2012년에는 국가 소유(國有)를 유지하면서 민간이나 외국 자본 참여를 허용하는 혼합소유제 회사로 전환했다. 다만, 지분 87.36%를 국가가 보유해 사실상 국유기업 수준이다.

이 회사는 여러 국가급 포상과 특급 시공 자격을 보유한 대형 시공 업체로, 사업 범위는 공사 시공, 기계 설비 임대, 자재 판매 등을 아우른다. 공식 연매출이나 총자산, 부채나 순이익 등 구체적인 재무지표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구직 정보 사이트에서 직원 평균 급여는 8천~1만 위안(약 166만~207만 원)으로 도시 지역 중위층 직장인 정도 수준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2024년 전국 평균 임금 집계에 따르면, 공공부문(國有企業 등)의 경우 가장 급여가 높은 상하이(1급 도시)의 월급이 1만~1만3천 위안, 지방 중소도시(3급 도시)는 3천~6천 위안이다. 업종별로 차이가 크지만, 중국에서는 공공부문이 민간부문보다 평균 급여가 높은 편이다.

잘나가던 중견 시공사였던 관웨이공사는 올해 2월 경영 환경 악화 조짐이 포착됐다. 광둥성 교통운수 당국이 신용평가를 ‘AA’에서 ‘A’로 한 단계 떨어뜨린 것이다. 이 때문에 회사의 정부 인프라 사업 입찰 역량에도 일정한 타격이 가해졌다.

신용평가 하향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지난해 51명이 사망한 광둥성 메이다 고속도로 붕괴 ‘참사’ 이후 지역 내 여러 건설업체들이 신용평가 조정을 겪었다. 해당 고속도로 건설 사업에는 지역 내 건설업체 다수가 참여했으나, 광둥성 당국은 참여 업체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경제 우등생 광둥성도 못 비껴난 재정난…인프라 투자 축소

광둥성은 중국 내에서도 제조, 수출, 기술산업이 앞선 곳이며 인프라 투자에도 활발한 지역이다. 지난 2023년 기준 광둥성의 고정자산투자 총액 8624억 위안(약 179조 원) 가운데 교통운수 및 창고·물류 부문 투자액은 1243억 위안(약 26조 원)으로 약 14%에 달해 제조업과 맞먹었다.

다만 인프라 수요 증가, 정부의 투자 결정, 국유·민간 기업의 수주로 이어지는 성장 사이클도 둔화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196개국 경제지표를 제공하는 ‘트레이딩 이코노미’에 따르면, 올해 1~10월 광둥성의 고정자산투자는 전년 대비 1.7%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과 2024년에 각각 3.0%, 3.2%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성장에서 감소로 돌아선 상황이다.

관웨이공사의 임금 지급 지연 우려는 개별 기업의 경영 악화에 그치지 않고, 중국 지방 국유기업 전반의 구조적 불안과 맞닿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인프라 건설 기업들은 국가의 도로‧교량‧공공시설 투자에 직접 연결돼 있는 만큼, 지방정부의 재정 상황과 긴밀하게 연동됐기 때문이다.

광둥성 건설 기술 컨설팅 업체 종사자인 리(李) 모 씨는 “최근 몇 년간 중국 당국의 전체적인 인프라 투자 증가에 제동이 걸리면서 민간 도급 기업의 경쟁 압력이 커졌다”며 “자금 흐름이 경색되고 주력 사업 분야가 축소되면서 직원들 월급 주는 것도 빠듯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현실화됐다. 구이저우성의 대표적인 도로 인프라 국유기업인 ‘구이저우 고속공로그룹(貴州高速公路集團)’은 3천억 위안(약 62조 원)이 넘는 채무 부담과 현금흐름 악화로 2024년부터 직원 임금이 2~3개월씩 지연 지급됐다.

윈난성의 건설·인프라 핵심 국유기업인 윈난 건설투자그룹(雲南建投集團)은 100여 개 이상의 하위 법인을 거느렸지만, 지난해부터 정부 발주 축소와 지방채 상환 부담이 겹치면서 현금흐름이 악화됐고, 자회사에서 임금 일부 지급 지연과 퇴직금 지급 중단 사례가 발생했다.

리 씨는 관웨이공사의 사례는 인프라 분야 경영난이 민간 부문에서 국유기업까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경제 환경이 악화되면서 민영이든 국유든 재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내년에도 여건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중국 노동정책을 연구해 온 류(劉) 모 씨는 “임금과 복리후생이 체불되는데도 직원들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출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업이 안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장기간 임금이 불확실하면 당장 인력 이탈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실제 업무 수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류 씨는 “경영난에 빠진 기업일수록 경영이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통 메커니즘을 갖추지 못하면, 직원들은 상황에 대한 이해가 더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관웨이공사의 ‘몸살’은 회사 등기자료에서도 나타났다. 취재진 확인 결과 최근 몇 년간 경영진 교체가 이어졌고, 회사 규모도 해마다 축소됐다. 복수의 직원들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회사에서 감원된 인원이 100명을 넘었고, 일부 기존 사업 부서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고 있다”고 확인했다.

회사 내부에서 임금 제도 조정은 최근 직원들이 가장 주목하는 문제가 됐다. 직원들은 “체불 임금을 언제 지급할지 일정 등에 관해 통보된 바 없다”며 “이러한 조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관해서도 사측의 추가적인 설명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