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과학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파브리키우스 다리는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기원전 62년에 건설되었으며, 티베르강의 동쪽 캄푸스 마르티우스에서 강 중앙의 티베르 섬까지 강의 절반을 가로지르고 있다. | Angelo Ferraris/Shutterstock 지난주, 나는 AI를 이용해 ‘와플이 탈모를 유발할 수 있다’는 가짜 연구 보고서를 직접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안에는 각주, 인용문, 복잡한 수학식과 모델까지 가득 들어 있었다. 결과물이 얼마나 그럴듯하게 보이는지, 솔직히 좀 섬뜩할 정도였다. 문제점을 찾으려면 아주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자마자 돌아온 반응은 대부분 “음, 믿을 만하네” 같은 말이었다.
“와플 먹지 마세요. 머리카락 빠집니다. 과학이 그렇게 말하니까요!”
한번 생각해보라. 우리는 이제 몇 초 만에, 세상의 어떤 주제든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섰다. 이런 힘이 존재한 지는 고작 2년밖에 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은 이런 기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더군다나 얼마나 손쉽게 만들어지는지 모른다.
악의를 가진 사람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이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과학’이라는 말에 예전처럼 깊은 신뢰를 보이기 때문에, 이런 가짜 과학도 진짜처럼 속아 넘어갈 수 있다.
지난주에도 우리는 또 하나의 ‘가짜 과학 연구’가 논문에서 철회되는 일을 보게 됐다. 이번 건은 특히 심각하다. 출판 학술지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 중 하나인 란셋(The Lancet)이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철저한 동료 평가(peer review)를 거쳐 출판된 논문이었음에도, 결국 저자들이 전문가들을 속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철회된 논문은 ‘TOGETHER’라는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물 중 하나였다. 이 임상시험은 코로나19 치료제로 쓰일 여러 약물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것이었고, FTX(나중에 사기로 폐쇄된 암호화폐 회사), 대형 제약회사 주식을 가진 금융사들, 그리고 백신 판매에 이해관계를 가진 산업계 싱크탱크 등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았다.
만약 이 연구가 주장한 대로 모든 기존 치료제가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사실이라면, 백신 접종이 ‘유일한 선택지’처럼 보이게 되는 셈이었다.
연구진은 이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여러 학술지에 논문을 쏟아냈다. 현재까지는 그중 한 편이 철회되었지만, 나머지 논문도 언젠가 같은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는 철회율이 매우 낮기로 유명한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도 포함된다.
TOGETHER 임상시험 결과는 이미 4년 전에 발표되었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의문과 비판이 제기돼 왔다. 2021년 연구결과가 발표됐을 때, 정부와 규제 당국은 이를 근거로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이버멕틴을 시장에서 철수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당신의 의사가 직접 처방전을 써줬더라도, 돌아오는 대답은 “안 됩니다”였다.
그날 일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한다. 동네 약국에 들어가 의사에게 받은 처방전을 내밀었을 때였다. 계산대에 있던 직원이 미안하다는 듯 매니저에게 가서 보여주자, 그는 말 한마디도 없이 고개만 저었다.
그 순간 나는 결국 뉴욕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해 인도에서 공수한 약을 익일 특송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정신없는 상황을 겪었다. 약을 받고 복용하니 3시간 만에 상태가 나아졌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효과적인 약을 구하기 위해 나처럼 ‘우회 방법’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이런 방식은 뭐랄까, ‘곱게 보이지 않는’ 행동이라고 한다.
도대체 왜 동네 약국들이, 내 담당 의사가 직접 처방해 준 검증된 치료제를 모두 거절했을까?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들은 ‘과학’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가짜 과학’의 문제다. 그 영향은 현실 세계에서 실제 사람들의 삶에 충격을 준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지금 과학을 둘러싼 모든 기관들의 신뢰는 자유낙하 수준으로 무너지고 있다.
“과학이 말한다”는 구호는, 전례 없는 수준의 자유 침해를 정당화하는 방패로 사용됐다. 그 결과, 과학 전체의 명성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TOGETHER 임상시험은 적어도 외형만 보면 제법 그럴듯했다. 실제로 임상시험을 하긴 했으니까.
반면, 2020년 여름, 일부 사람들에게 코로나 19 치료제로 알려진 ‘하이드록시클로로퀸(HCQ)’과 ‘클로로퀸(CQ)’이 위험하다고 발표한 SURGISPHERE 연구가 데이터 전체를 조작한 가짜 연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연히 결론도 모두 무효가 됐다.
공평하게 말하자면, 가짜 과학이 어느 한쪽 진영에서만 나온 것도 아니다. 반대 방향의 결과를 주장하던 몇몇 연구도 허위 데이터로 만들어진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결국 그 기간 동안 수십만 편의 논문이 쏟아졌고, 요즘은 철회되는 속도가 예전 학술지의 논문 게재 속도만큼 빠르다. 이건 단순한 홍보(PR) 문제가 아니다. 과학 자체의 신뢰가 무너지는 진짜 위기다.
과학이 “추수감사절에 가족과 식사하면 위험하다”, “찬송가를 부르면 할머니를 죽일 수도 있다” 같은 말을 할 때, 그것은 과학혁명의 근간 자체를 뒤흔드는 행위다. 여기에 인공지능까지 더해지면? 문제는 만 배 악화된다.
바로 지난주에도 이런 일이 내게 직접 벌어졌다. 어떤 행사에서 영국 신사풍의 말투와 환한 미소를 가진 두 남자가 돌아다니며 ‘가짜 고기’를 비판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 주제에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어, 경계심이 좀 풀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녹화를 시작하기 직전 “가짜 고기가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연구를 보여주며, 인터뷰 대상자에게 그 연구를 지지한다고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도 그들의 카메라 앞에서 ‘가짜 고기 반대’ 발언까지는 자연스럽게 했다. 그런데 그다음, 그 연구를 지지해달라는 요구가 들어오는 순간,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번쩍 켜졌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그래서 그 부분만큼은 정중히 거절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그게 ‘몰래(장난) 카메라’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능청스러운 두 사람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실체도 없는 그 연구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목적은 단순하면서도 꽤 영리했다.
그들은 국가가 개인의 건강 선택권을 국가가 과도하게 통제하면 안된다는 취지의 ‘건강 자유(health freedom)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연구라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폭로하려는 것이었다.
아마 최종 목표는 이 장면들을 모아, 그 운동 전체를 조롱하고,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까지 깎아내리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했다.
그리고 그 일을 곱씹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경험적 과학이 정치적 목적을 위한 무기로 쓰이는 매우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500편이 넘는 논문이 철회되었고,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논문들 역시 취약한 상태로 남아 있다.
내가 우려하는 건, 이런 상황이 과학 전체에 대한 일종의 허무주의(니힐리즘)를 퍼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 학회 현장을 돌아다니며 가짜 연구로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장난꾼들은 단순히 도움이 안 되는 수준을 넘어, 이미 무너진 신뢰를 더 손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16~17세기의 과학혁명이 보여준 핵심은, 진실을 알고 검증하는 보다 확실한 방법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이전 시대에는 신학이 학문의 여왕이었고, 믿음이 세계를 설명하는 중심이었지만,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베이컨, 데카르트, 뉴턴—모두 위대한 사상가들이었고—이들의 연구는 관찰과 귀납이 더 나은 진리 탐구 방식임을 보여줬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혁명은 곧 기술·의학·생활수준 전반에 거대한 도약과 함께 찾아왔다. 세계는 극적으로 변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더 많은 이동성, 선택권, 물질적 발전을 누리게 됐다. 우리는 흔히 ‘암흑기’라고 불리던 시대를 확실히 벗어나 새로운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과학은 새로운 사고의 왕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발전 뒤에는 늘 하나의 문제가 잠재해 있었다. 우리가 관찰과 실증을 신앙과 추론보다 우위에 두려는 순간, 실제로는 하나의 종교적 권위를 무너뜨리는 대신 또 다른 형태의 권위—즉 관찰자, 과학자, 데이터를 만들고 해석하는 사람들—를 새로운 권위로 올려놓는 셈이 아닌가? 결국 그런 셈이 됐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루 종일 과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만, 결국 핵심은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교회와 신학의 권위를 신뢰할 수도 있고, 성경 같은 계시적 문장을 읽고 이해한 것을 신뢰할 수도 있고, 혹은 과학과 과학 제도를 신뢰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그 어떤 개인도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방대한 사실을 직접 모두 검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그 전달자가 불공정하게 행동하거나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면, 우리는 어디에 의지해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오늘날 과학 영역에서 우리가 직면한 핵심 문제이다. 너무 많은 것이 잘못되면서, 과학혁명 자체가 대중의 마음에서 점점 힘을 잃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기준이 무엇인지—아직 아무도 모른다.
잠시 생각해보자. 세월이 흘러도 평판에 전혀 흠집이 나지 않은 분야가 있다. 바로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의 이름을 따온 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유클리드가 만든 방법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왜일까?
그 방식대로 설계하면 다리는 실제로 버티고, 건물은 하늘 높이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공간의 논리를 수학이라는 언어로 측정하고, 그 논리에 따라 연역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논리학·수학·기하학에는 여러 학파가 있지만, 내적 일관성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누구나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연역법은 매우 ‘민주적인’ 방식이다. 어떤 권위자의 말에 기대지 않고, 오직 논리 자체만으로 진위를 판단한다. 그리고 이 방식은 스스로 믿을 만한지 확인하는 장치를 내장하고 있다.
증명의 기준은 간단하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만든 구조물이 실제로 제대로 서 있느냐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런 원리들이 2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벽히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클리드의 통찰은 과학혁명보다 무려 20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 속에서 무엇이 새롭게 등장할지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가 거대한 전환기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우리는 한 시대의 인식 체계가 무너지는 장면을 지나, 아직 이름도 붙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진실을 알아가는 세계로 옮겨가는 중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시대의 가장 중요한 논쟁이다.
그리고…그 와플 말인데, 조심해서 드시길!
제프리 A. 터커(Jeffrey A. Tucker)는 브라운스톤 연구소(Brownstone Institute)의 창립자이자 회장으로, 학술지와 일반 언론을 포함해 수천 편의 글을 발표한 저명한 사상가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5개 언어로 된 10권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그중 최신작은 ‘자유냐 봉쇄냐(Liberty or Lockdown)’입니다. 또한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사상을 정리한 편저 ‘The Best of Ludwig von Mises’의 편집자이기도 합니다. 현재 그는 에포크타임스에 경제 칼럼을 연재하며, 경제, 기술, 사회철학, 문화를 주제로 전 세계에서 활발히 강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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