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왜 그런 옷을 입었을까…‘문화 교류’에 드리운 체제 선전의 그림자
단체복을 입고 발을 맞추어 행진하는 중국인들 | 유튜브 'Pwoos'(@Pwoos-z8w) 캡처/연합뉴스
‘한강 걷기 행사’ 논란으로 본 중국식 단체문화의 이면
군복 연상시키는 광장무 복장, 공산당 문화의 연장선
최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중국인 100여 명이 단체로 군복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고 행진하는 영상이 공개되며 한국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해당 영상은 이달 4일 중국판 틱톡(더우인)에 처음 게시됐다. 촬영 시점은 지난달 31일로, 장소는 여의도 한강공원 ‘물빛무대’ 인근으로 추정된다.
영상 속 참가자들은 군복처럼 보이는 초록색 위장무늬 상하의를 입고 마치 대열 훈련을 하듯 한강 둔치를 따라 행진했다. 선두에는 붉은 깃발을 든 인원이 있었으며, 현수막에는 중국 본토에서 사용하는 간체 중문과 한글로 ‘한국(한강) 국제 걷기 교류전 중국 걷기 동호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행사에는 약 100명의 중국인이 참여했으며, 이들은 10여 명씩 조를 이뤄 이동했다. 일부는 같은 무늬의 모자도 착용했지만, 모두 같은 옷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노란색 또는 붉은색 트레이닝복을 맞춰 입었다.
행진 도중에는 군가처럼 들리는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중국군이 한강에서 퍼레이드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행사는 규모는 작았지만, 한국 주요 언론에서도 보도됐다. ‘동아일보’는 “단순한 걷기 행사인데 왜 군복을 입었나?”라고 지적했고, ‘연합뉴스’는 “중국인들이 군복과 유사한 옷을 입고 국제 걷기 행사에 참여해 논란이 일었다”고 전했다.
한국 빠진 ‘국제 교류’…한강 퍼레이드가 가져온 파장
사회적 반향이 확산되자 행사 주최 측인 ‘한국문화교류사업단’(이하 사업단)은 7일 보도자료를 내고 “중국 시민 걷기동호회 회원들이 한국의 아름다운 명소를 걸으며 건강을 나누는 순수한 민간 교류 행사”라면서, 한국인 참가자는 질서 유지를 위해 사업단에서 파견한 인원 외에는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다(보도자료 링크).
이어 “‘국제걷기교류’라는 이름은 참가 동호회가 세계의 명소를 걷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문화교류의 취지를 담은 것일 뿐 정치적·상징적 의미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참가자가 한 명도 없었지만, 보도자료에는 ‘교류’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정치적 의도’에 대해서도 강한 부인이 이어졌다.
논란이 된 ‘군복’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사업단은 “참가자 전원에게 ‘공공장소에서 단정한 복장 착용’을 사전에 안내했고, 각 단체는 질서 유지와 원활한 단체별 이동을 위해 각자의 국내용 단체복을 입고 참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일부 복장이 위장무늬와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이는 단순한 기능성 야외복 디자인일 뿐 군복이나 군사단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위장무늬 의상’을 입은 사람들은 “허난성 정저우시 청소년공원 걷기단체 ‘어만(娥曼)’ 소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위장무늬가 들어간 것과 디자인 자체가 군복 형태인 것은 엄연히 다르다. 트레이닝복 형태의 위장무늬 의상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군복은 위장 효과와 더불어 식별성, 내구성, 방호성(신체 보호), 기능성(장비 휴대) 등이 목적이다. 트레이닝복에 비하면 무게나 통풍 면에서 불리하다.
이 의상은 중국에서 ‘해군 춤 복장’이라는 뜻의 수병무복장(水兵舞服装)으로 불린다. 상의만 군복이고 하의는 치마 형태도 많다. 물론 해군 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수병무란 군인(해군) 스타일의 옷을 입고 거리에서 추는 광장무(廣場舞)의 일종이다.
중국 전역에서는 중년이나 노년층, 특히 여성들을 중심으로 광장에서 춤을 추는 광장무가 오래전부터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동호회들은 서로 차별화를 위해 독특한 의상을 입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군복 스타일, 즉 수병무 복장이다. 인민복을 입고 군중집회에 몰입했던 홍위병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의상으로도 여겨진다.
따라서 이 의상을 입었다고 해서 군 조직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군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사업단의 해명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걷기운동 동호회와 광장무 그리고 홍위병 세대
한국에 파문을 일으키고 돌아간 중국 걷기운동 단체 ‘어만(娥曼, 娥嫚으로도 표기)’은 단어 자체만 보면 ‘우아한 여인’ 정도의 의미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어만’을 검색하면 광장무 영상이 다수 검색된다. 주로 광장무를 추는 여성이나 광장무 동호회에 붙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광장무는 문화대혁명 시절 홍위병 세대의 유물이다. 이들은 마오쩌둥에게 선동돼 중국 전통문화와 유물을 파괴했고, 경제 성장기에는 공장 노동자가 됐다. 이제 노년층에 접어든 이들에게 광장무는 군중집회에 몰입했던 홍위병 시절을 그리워하는 행위이자, 남은 여가를 보내는 ‘사회체육’ 활동이 됐다.
걷기운동 동호회는 광장무보다는 참여 세대가 젊지만, 공원 등 야외 공공장소에서 진행되는 군중활동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비슷하다. 중국의 걷기운동 영상을 보면, 자연스러운 걷기라기보다는 구호에 맞춘 제식 훈련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걷기운동 동호회가 군복 스타일 유니폼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국내에 거주하는 30대 중국인은 “중국에서도 걷기운동을 할 때는 일반 운동복을 입는다”고 말했다. 다른 중국인들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한국을 방문한 ‘어만’ 측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이들 역시 평소 입는 운동복이 아니라 특별한 날에 입는 행사용 의상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타오바오 등 중국 쇼핑몰에서 수병무 복장을 검색하면 이벤트나 공연용 의상으로 분류돼 있다. 중국 걷기운동 동호회가 공산당 정권 수립 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 공산당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주 축제 중국팀, 인민해방군 열병식 영상 사용
앞서 2일 경기 여주시 축제에서는 중국 참가팀이 공연 배경으로 오성홍기와 인민해방군 열병식 영상을 사용해 물의를 일으켰다. 당초 무용과 전통 의상을 선보이기로 했지만, 약속과 다른 공연을 했다.
행사를 주최한 여주세종문화재단은 논란이 일자 “순수 문화교류라는 취지와 맞지 않았다. 세세하게 확인하지 못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사전에 점검하지 못한 재단 측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한정된 인력으로 수십 개 팀이 참가하는 행사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기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 사건은 한강 행진과 별개의 일로 보이지만, 그 본질에는 ‘중국 공산당으로 인한 왜곡된 가치관’이라는 공통점이 놓여 있다. 예컨대 절대다수 한국인에게 6·25전쟁은 북한의 남침이며, 중국 공산당은 침략을 지원한 세력이다. 그런 집단을 떠올리게 하는 의상을 입거나 군사 활동(열병식) 선전 영상을 틀면서 ‘문화교류’라고 주장한다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면 중국 공산당은 이 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라 부른다. 미국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조선(북한)을 도운 전쟁이라는 식이다. 이런 선전에 오래 노출된 중국인들은 한국에 와서 열병식 영상을 틀거나 군복을 입고 행진하면서도 ‘문화교류’라고 여긴다. 공산당이 구축한 왜곡된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수십 년간 생활하면서, 사고와 인식 체계마저 비틀려졌기 때문이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전재는 상호 존중
교류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상호 존중에서 출발한다. 한국이 중국을 이해해야 하는 만큼, 한국을 찾는 중국인들도 한국 사회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다.
사업단은 보도자료에서 “중국에서는 수천 명 규모의 걷기 모임이 매우 일반적이며, 단체별로 복장을 통일하고 질서 유지를 위해 구호에 맞춰 일렬로 걷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이러한 모습이 한국에서는 다소 군대식 행진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는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걷기 문화로 이해해 주면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도자료에서의 해명과 달리 이런 걷기 운동이 한국에서만 군대식 행진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도 ‘제식 훈련(軍姿訓練·군인 자세 훈련)’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난 7월 3일 중국 신계채널(新界視頻)은 공식 웨이보 계정을 통해 이날 정저우 시류호수(西流湖) 공원에서 열린 걷기운동(健步走) 동호회 활동을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이 동호회 단장은 군인 출신으로 이날 행사에는 80명이 유니폼을 입었고 나머지는 사람들은 자율 복장으로 참석했다.

지난 7월 3일 중국 정저우 시류(西流)호수 공원에서 열린 걷기운동(健步走) 행사. 운동복을 맞춰 입은 사람들 뒤로 일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 이 행사를 전한 중국 신계채널은 “제식 훈련(军姿训练·군인 자세 훈련)”이라고 보도했다(빨간 동그라미). | 신계채널 화면 캡처
이러한 중국 내 집단 문화에 관해 거리에서 만난 한 중국인 관광객은 “중국인들은 통제를 잘 따른다”고 설명했다. 이 관광객은 ‘정부의 통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중국 공산당이 속이든 말든 상관 않는다. 우리가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답했다. 이어 주변의 다른 관광객들 둘러보며 큰 소리로 “그렇지 않냐”고 물었고 몇 명이 “그래”라며 호응했다.
중국 ‘민간교류’의 외피 속 확산되는 공산당 문화
문제는 중국과의 민간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이처럼 공산당이 구축한 당문화 체계의 그 영향력이 한국 사회에 스며들 위험도 커진다는 점이다. 이미 중국은 한국 연예산업 투자를 통해 공중파 드라마에 동북공정적 서사를 삽입하려 한 전력이 있다. 이처럼 ‘문화 교류’의 외피를 쓰지만, 실제로는 공산당의 이익에 맞춰 재편된 역사관과 이념을 확산시키려는 시도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중국發 ‘문화 교류’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사건은 또 있다. 중국 공산당의 션윈(神韻) 탄압이다. 션윈은 미국에 본사를 둔 중국 고전무용단으로 파룬궁 수련생들이 주축이 됐다. 중국 전통과 수련문화, 특히 중국 공산당이 파괴한 중국인들의 신(神)에 대한 믿음 등을 예술적으로 복원하려는 공연으로 국제적 호평을 받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이를 위협으로 여겨 해외에서도 방해 공작을 벌였다. 미국에서는 중국 측 광고료를 받는 일부 매체가 션윈 비난에 앞장섰고, 한국에서는 션윈 내한 공연을 주관하는 한국파룬따파학회가 공연장 대관에 지속적인 제약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 교류는 단순한 인적 왕래가 아니라 가치와 세계관의 교류이기도 하다. 한쪽의 체제 선전이나 정치적 의도에 이용된다면 그것은 문화도 교류도 아니다. 우리가 중국과의 교류를 단절할 이유는 없지만, 이면에 깔린 이념 선전과 공산당 문화의 잔재를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진정한 문화 교류란 서로의 전통과 신앙, 예술을 존중하며 자유로운 사유와 표현이 보장되는 장(場) 위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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