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일 때나 혼자일 때도 음악은 계속된다
토머스 웹스터 ‘마을 합창단’, 캔버스에 유화. |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소장 작곡은 외로운 과정일지라도, 그 끝에서 탄생한 노래는 사람들을 하나의 마음과 영혼으로 연결시킨다. ‘예술’은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그 시작이 ‘고독’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위대한 음악가들과 문학가들은 종종 고독에 관해 이야기한다. 모차르트는 친구에게, 자신이 완전히 혼자 있을 때야 음악이 떠오른다고 말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음악이 어디서 오는지는 나도 모른다.” 러시아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는 방에 홀로 앉아 뮤즈가 오기를 기다리는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내 사랑하는 손님이, 손에 작은 피리를 들고 찾아오네. 숄을 두르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다가오네.”
음악과 언어는 고독 속에서 탄생하지만, 일단 탄생하면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다. 그들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고, 때때로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루틸리오 디 로렌초 마네티 ‘음악의 비유’, 17세기, 캔버스에 유화. 개인 소장.
한 사람의 영감이 모두의 마음에 닿기까지
음악을 들을 때 정신이 고양되고 생각이 확장된다는 점은 음악의 놀라운 효능이다. 음악이 서로 멀리 떨어진 영혼들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한다는 것도 경이로운 점이다.

‘나의 조국’ (My Country ‘Tis of Thee) 악보 표지, 마르타 M. 시시칙스, 1918년,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목소리로 표현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대부분이 한 번쯤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 국경일에 교회에서 모두와 함께 ‘나의 조국’을 부르는 순간,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 땅이 자유롭고 성스러운 빛으로 언제나 밝게 빛나길” 우리는 노래했었다.
음악의 위대한 힘은 다양한 군중 속에서 서로가 얼마나 닮았는지 깨닫게 해줄 때 드러난다. 오늘날 아이들이 여전히 함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희망적인 일이다.
웨일스인들은 아름다운 국가 중 하나인 ‘조상들의 땅(Mae Hen Wlad Fy Nhadau)’을 스포츠 경기 개막일과 국경일에 합창하는 전통이 있다. 그들은 “조상들의 땅은 소중하다, 시인과 가수들의 땅, 위엄 있는 사람들의 땅/ 용감한 전사들, 훌륭한 애국자들/ 자유를 위해 피를 흘렸다”라고 노래한다. 웨일스인들 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처럼 단일 음으로 국가를 부르지 않는다. 풍부한 4부 화음으로 국가를 부른다.
독일인들은 하이든이 1797년에 작곡한 ‘황제 찬가(Kaiserhymne)’에, 아우구스트 폰 팔러슬레벤이 1841년에 쓴 ‘독일인의 노래’의 가사를 얹어 국가를 부른다. 그들은 ‘단결과 정의, 자유’를 기념하는데, 이는 여러 왕국과 제후국으로 나뉘어 있던 독일이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넘어가던 시절,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한 이상적인 이념이었다.

요제프 하이든 ‘황제 찬가’, 필사본, 1796~1797년경.
신을 향한 찬송가가 세상을 하나로 묶다
바흐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잠에서 깨어라(Wachet Auf)’, BWV 140의 마지막 코랄은 “사람과 천사의 입술이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풍부한 화음과 상승하는 선율이 어우러진 이 단순한 작품은 가장 위대한 음악 유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마르틴 루터는 개혁 교회를 세우고 교회 내의 학교 정책을 확립한 인물로, 함께 노래하는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든 학생이 악보를 읽을 줄 알아야 하며, 화음을 맞춰 노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름답고 선한 것을 찬양하기 위해 울려 퍼지는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그들의 교육을 세우는 초석이자 기둥이었다. 토마스 만의 『괴테와 톨스토이』에 따르면, 하루는 항상 노래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전통의 울림을 메노나이트 공동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악기 반주 없이 화음을 이루어 노래하는데, 어린 시절 학교에서 그렇게 배우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함께하는 점심 식사 시간에는 찬송가를 부른다. 그들 찬송가 중 가장 감동적인 곡은 ‘내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까?’이다.
아메리카의 위대한 음악 유산 중 하나인 흑인 영가는 노예제 시절 슬픔 속에서 태어났다. 처음 이 노래들은 아름답지 않았다. 어린 시절을 노예로 보낸 프레더릭 더글라스는 “수 마일에 펼쳐진 빽빽하고 오래된 숲을 거친 노래로 울려 퍼지게 했는데, 그 노래는 가장 큰 기쁨과 깊은 슬픔을 모두 드러냈다”라고 회상한다. 그들은 박자나 곡조를 따르지 않고 즉흥적으로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해방이 찾아오자, 그들은 재능을 다듬어 위대한 작품으로 완성할 기회를 얻게 됐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노래 중 하나가 바로 ‘저 하늘 밝은 저택에서(In Bright Mansions Above)’이다.
링컨의 해방 선언과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의 농노들도 자유를 얻었다. 비록 임시적이었지만 말이다. 노예이든 자유인이든,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많은 사람이 함께 노래하는 소리는 놀랄 만큼 비슷하다.
학생 시절, 필자는 노예의 나라였던 소련을 여행한 기억이 있다. 모스크바 엘로호프스카야 대성당에서 신도들이 부르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를 들었다. 거대한 성당에서 그 노래는 마치 종처럼 울려 퍼졌다. 그때 필자는 그 음악을 녹음했다. 비록 음질은 좋지 않지만, 매우 귀중한 기록이다. 심한 억압 속에서도 합창에서 드러난 아름다움과 활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예배의 미덕 중 하나는 그 진리가 왜곡되거나 변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련의 암흑 시기, 신부가 KGB 소속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신부는 신도들 앞에 서서 “여호와의 이름은 영원히 찬양받으리로다”라고 말해야 했고, 신도들은 “아멘”으로 응답했다.
평범함이 특별함이 되다

‘옥스퍼드 매들린 칼리지의 5월 아침, 고대 연례행사’, 윌리엄 홀먼 헌트, 캔버스에 유채, 1888–1891년작, 영국 버밍엄 미술관 소장.
어떤 나라, 계급, 인종이든 많은 이들이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소리는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훈련되지 않은 한 사람의 평범한 목소리는 소박하거나 애처롭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목소리가 백 개, 천 개 모여 울려 퍼지면 장엄해진다. 수많은 물방울이 모여 거대한 바다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노래하는가? 노래한다는 것은 절대 사소하지 않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말하기 훨씬 이전부터 노래를 불렀다고 말한다. 노래는 의식에서 비롯됐으며, 감정의 절정과 심연을 집단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충동에서 생겨났다. 노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힘이 너무 강력하다고 생각하여 특정 계층과 직업군이 특정 종류의 음악을 부르거나 듣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그들은 노래가 사람을 고양할 수도, 타락시킬 수도 있는 힘임을 일찍이 인식하고 있었다.
예술은 아이디어를 감정으로 바꾼다. 음악은 우리가 생각만 했던 것을 감각으로 느끼게 해준다. 사람들은 서로가 형제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이웃과 함께 “우리 땅이 자유의 성스러운 빛으로 언제나 밝게 빛나길”이라고 노래할 때야 비로소 그 의미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역사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형제애를 법이나 정부, 경찰, 군대가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플라톤은 말했다. “지혜와 음악에 대한 사랑은 인간 내면에 있으며, 그것만이 그의 덕을 구원하는 유일한 힘이다.”
음악과 예술은 천천히, 그 나름의 속도로 우리의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에 대한 응답을 시작하고 있다.
*이지수 인턴기자, 조윤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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