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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2025년 11월 28일 오전 11:08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온 마음을 다해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들을 작곡했다. | 사진=퍼블릭 도메인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온 마음을 다해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들을 작곡했다. | 사진=퍼블릭 도메인

20세기 클래식 작곡가 중 라흐마니노프만큼 대중문화에 깊숙이 스며든 이가 있을까. 수많은 영화에 그의 음악이 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45년 영화 ‘브리프 엔카운터’에서 ‘피아노 협주곡 2번’의 풍부한 선율은 사랑 이야기에 특별하고 아름다운 감동을 더 했다.

고전 코미디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주인공 필 코너스(빌 머리 분)는 같은 하루 ‘2월 2일’을 끝없이 반복한다. 시간이 흐르며 자기 잘못을 깨닫고 이기적인 태도를 고치기로 결심한 그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는 피아노 연주로 연인을 놀라게 하는데, 그 곡이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중 18번 변주곡이다.

라흐마니노프가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제24번 가단조’를 처음 변주한 것은 아니다. 파가니니 자신도 바이올린으로 변주했고, 리스트와 브람스는 피아노 편곡을 남겼다. 하지만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라흐마니노프의 변주곡이다.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명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 사진=퍼블릭 도메인

고군분투했던 망명자의 삶

세르게이 바실리에비치 라흐마니노프가 본명인 그는 1873년 러시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8년 러시아 혁명 이후 고국을 떠나 망명길에 올랐다.

망명자 신분이었기에 그는 의심과 냉대받았다. 수년간 러시아에서 그의 음악이 금지되었고, 낭만주의적 그의 음악 스타일은 사회주의 소련 예술의 이념과도 맞지 않았다. 사회적 의식과 노동자 계급 가치를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구의 많은 음악 전문가도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지 않았다. 모더니즘이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모든 예술 분야에 빠르게 퍼지고 있었고, 쇤베르크의 12음 기법 같은 급진적 혁신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당시 모더니스트들은 라흐마니노프의 부드럽고 흐르는 선율을 구식이고 보수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계를 뛰어넘는 ‘랩소디’

라흐마니노프는 결국 가족과 함께 스위스 루체른 호숫가에 집을 지어 정착했다. 바로 그곳에서 1934년 여름, ‘랩소디’를 작곡하기로 결심했다. 7월 초부터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곡을 쓰기 시작해 밤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거의 두 달 동안 이 생활을 이어가며 8월 말에 작품을 완성했다.

몇 주 후 그는 모스크바에 있는 친구 블라디미르 빌샤우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썼다. “아주 긴 곡을 완성했어, 약 20분에서 25분 정도. 피아노 협주곡 규모야. 뉴욕과 런던에서 시도해 볼 생각이야.”

‘랩소디’는 솔로 연주자에게 많은 기교적 요구를 하며 피아노의 한계를 시험하는 작품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이 이 어려운 곡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는 빌샤우에게 “내게는 너무 어려운 경우가 많아. 나도 나이가 들었거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곡이 복잡하지만, 여러 차례 직접 연주했다.

라흐마니노프는 50대 후반부터 작곡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연주자로 생계를 유지했고, 그의 일정은 ‘나이든’ 손가락에 큰 부담이 됐다. ‘랩소디’가 초연된 콘서트 시즌은 그의 활동 기간 중 가장 바쁜 시기였다. 그는 빌샤우에게 보통 연간 약 40회의 연주를 했다고 했지만, 다음 해에는 거의 70회의 연주를 하게 될 예정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물었다.

‘랩소디’는 1934년 11월 볼티모어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작품은 성공을 거두었고, 긴 미국과 유럽 콘서트 투어 기간 라흐마니노프는 공연에서 작품을 계속 다듬어 나갔다.

화려한 기교의 ‘랩소디’

‘랩소디’는 라흐마니노프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뛰어난 기교와 화려함으로, 그를 단지 ‘그저 그런’ 멜로디를 쓰는 반동주의자로 여겼던 서구 지식층을 마침내 만족시켰다. 물론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작품 전반에 아름답게 녹아든 멜로디 덕분이다.

전체적으로 이 곡은 고전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24개의 변주곡은 각각 8개씩 세 그룹으로 나뉜다. 각 변주는 주제와 관련되어 있지만 독립된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중 가장 오래 사랑받는 곡은 18번 변주곡으로, 오늘날 공연에서 따로 발췌해 연주되는 경우가 많다.

라흐마니노프는 앞서 변주된 주제의 일부를 가져와 거꾸로 뒤집었다. 내려가는 음정은 올라가는 음정으로 바뀌었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교차하며 풍부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심판의 날’ 음울한 선율 

이 작품에서 작곡가는 또 다른 시도를 한다. ‘디에스 이레(Dies Irae: 진노의 날)’라는 주제가 곡 전체에 삽입된 것이다. 이 주제는 중세 라틴어 진혼 미사에서 유래한 성가로, 심판의 날과 연관되어 있다. 18번 변주곡에서는 이 불길한 멜로디가 거꾸로 뒤집힌 선율에 은은하게 녹아들어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라흐마니노프가 이 주제를 삽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설에 따르면,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는 예술적 위대함을 이루고 한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았다. 이 신화는 파우스트 전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파가니니의 대중적 이미지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변주곡에 이 주제를 포함시켰다.

니콜로 파가니니의 초상화. 그의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이 표현돼 있다. | 사진=퍼블릭 도메인

‘랩소디’를 작곡한 지 3년 후,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발레 안무가 미하일 포킨에게 편지를 보내 이 곡을 파가니니를 주제로 한 무대 작품에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극적인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Dies Irae’의 주제는 ‘악령’을 상징하며, 7번 변주곡에서 등장해 그다음 세 변주곡에서 발전한다고 했다. 11번부터 19번 변주곡은 파가니니와 그의 마음을 얻은 여성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나타낸다. 마지막 변주곡들에서는 ‘악령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파가니니를 닮은 캐리커처’로 다시 나타나 그의 영혼을 두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싸운다고 했다. 제안을 설명한 뒤, 라흐마니노프는 포킨에게 “나를 비웃지 않겠지?”라고 물었다.

포킨은 이 발레 아이디어를 마음에 들어 했고, 2년 후 런던에서 초연됐다. 영감받았던 파우스트의 줄거리처럼 이 발레의 이야기는 파가니니에게 행복한 결말을 선사한다. “결국 악은 패배하고, 바이올리니스트는 영원하다.”

그리운 고국

라흐마니노프가 랩소디를 작곡한 1934년, 소련 엘리트들은 그의 음악 금지령을 해제했다. 그의 다른 여러 작품은 생전에도 성공적으로 연주되었지만, 랩소디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곡을 소련에서 처음 연주한 건, 그의 사망 후 몇 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연주할 때 라흐마니노프는 종종 우울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감정 상태로 보인다. 러시아 관객 일리야 일리프와 유진 페트로프는 뉴욕 카네기 홀에서 그의 무대를 이렇게 묘사했다. “키 크고 구부정하며 마른 체형, 긴 얼굴에는 슬픔을 띠고 있었다.” 그들은 “그의 표정은 ‘나는 불운한 망명자이고 당신들 앞에서 연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라고 추측했다.

1935년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 사진=훌턴 아카이브/스트링거

라흐마니노프는 고국을 떠난 뒤 다시는 고향을 볼 수 없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정치적 망명자가 겪는 불운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는 루체른 호숫가에서 새로운 안식처와 평화를 찾았고, 세상에 영원히 사랑받을 음악을 남겼다.

*이지수 인턴기자, 조윤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