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개인 책임의 종말, 자유의 관에 박힌 마지막 못

“스스로 책임 지는 법을 잊은 사회는 더 이상 자유를 지키지 못할 것이며, 미국은 지금 그 사실을 위험할 정도로 보여주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필자는 자립심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나라에서 성장했다. 미국인들은 독립적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며, 자기 몫을 감당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바로 그 정신이 농장과 기업,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다음 세대에 무언가를 물려줄 수 있는 강인한 가정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개인의 책임 개념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미국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문화도 약화됐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정부가 단순히 권리를 지키는 역할에 그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의료와 경제 문제 해결, 임금 보장, 식품 규제, 가정 보호, 나아가 삶이 던지는 모든 문제까지 해결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제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의 책임을 내려놓고, 오히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정부의 더 큰 개입을 바라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살아온 필자는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다고 믿으며 텍사스로 이주했다.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그러한 면모를 발견했지만, 동시에 과거에는 개인이 스스로 맡아야 했던 일들까지 정부가 나서 해결해 달라는 요구가 이어지는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했다.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으로, 근본적인 문화적 병폐는 동일하다. 바로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잊었다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러한 사고방식이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대공황은 미국 사회를 심각하게 파괴했고,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안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인들이 워싱턴에 단순히 국방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계까지 의존하기 시작한 출발점이 되었다.
이어 19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정책은 복지와 의료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정부가 위기 시 안전망을 넘어 국민의 영구적 보호자가 될 수 있다는 개념을 뿌리내리게 했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구제금융은 당연한 조치처럼 받아들여졌다. 월스트리트가 무너졌지만, 그 실패의 책임은 정부가 떠안았고 잘못된 선택을 한 이들이 직접 책임을 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자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사회는 단순히 책임을 위임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포기해 버렸다.
가장 개인적인 영역인 건강 문제마저 관료와 정치인들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노동, 모임, 심지어 자유롭게 숨 쉴 권리까지 결정하도록 허용했다.
더 큰 문제는 주권자로서의 의식을 잊지 않고 스스로 건강을 책임지려 했던 이들, 정부 지침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다른 길을 선택한 이들이 오히려 악인으로 몰렸다는 점이다.
결국 개인이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시도 자체가 ‘위협’으로 간주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변화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주류 담론 속에는 자기 책임을 이기적이거나 무모하며 심지어 위험한 것으로 묘사하는 흐름이 깔려 있다.
건강, 가족, 교육에 대한 개인의 선택조차 타인에게 위협이 되는 행위로 취급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정치와 언론, 그리고 일상 대화 속에까지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가장 해로운 거짓말일 수 있다. 바로 ‘책임 있는 자유는 위험하고, 의존이야말로 미덕’이라는 주장이다.
건강 문제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가 먹는 음식, 몸에 주입하는 것, 생활 환경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지 않는다면 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오늘날 문화는 마치 건강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어떻게 살든 결국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도, 자연의 이치도, 자유도 아니다.
농장에서 책임은 선택이 아니다. 작물에 물을 주지 않으면 말라 죽고, 땅을 돌보지 않으면 먹을 것을 얻을 수 없다. 가축을 돌보지 않으면 고통을 겪는다. 농사는 환상을 가차 없이 걷어낸다.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열매를 얻으리라 기대할 수 없다. 직접 나서야 한다.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다. 책임은 징벌이 아니라 특권이라는 사실을.
책임을 하나씩 포기해 나가는 오늘의 문화는 충격적이다. 책임을 거부하는 사회는 자유 또한 거부하게 된다. 두 개념은 서로 맞물려 있어, 하나 없이 다른 하나를 가질 수 없다.
문제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피해자 의식으로 대체하고, 다른 누군가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할 때 발생한다.
이는 단순히 우리를 약하게 만들 뿐 아니라 내부를 병들게 만든다. 비판적 사고와 논리를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나약하고 의존적으로 만들며, 삶이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끝없는 분노를 키운다.
피해자 의식은 단기적으로는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질을 파괴한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정치인들의 청문회나 토론에서 누가 이겼는가가 아니라, ‘당신 삶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단순한 물음이다. 그 답이 ‘나’가 아니라면 자유는 이미 사라진 것이다.
필자는 더 많은 규제나 관료주의, 일상에 대한 간섭을 원하지 않는다. 정부는 애초에 설계된 대로 국가 방어를 위한 군대 유지와, 신과 헌법, 독립선언이 보장한 권리를 수호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 이상은 필요치 않다. 나머지는 국민의 몫이다.
오늘날 미국은 자유의 감각을 잃기 직전에 서 있다. 책임을 포기하는 순간 자유도 사라지고, 일단 잃은 자유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자유와 함께 따르는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낡고 불필요한 개념으로 치부하며 자발적으로 의존과 통제의 시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결정할 것이다.
더 안타까운 점은, 우리는 ‘스스로 신발 끈을 잡아당겨 일어선다(pull ourselves up by our bootstraps)’는 말의 의미조차 잊을 정도로 멀리 떠내려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유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이상 무지에 안주할 수 없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 자신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정부도 우리를 구하지 못할 것이며, 미래 세대는 결코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몰리 엥겔하트는 텍사스 힐 컨트리 지역에서 재생 농업과 목축을 하고 있으며 식량 주권, 토양 회복, 그리고 자급자족과 홈스테딩 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녀는 저서 『자연이 무너뜨린 통념(Debunked by Nature): 당신이 음식·농업·자유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모든 것을 무너뜨리다』의 저자로, 비건 셰프이자 LA 외식업자에서 흙을 만지는 농부로 변신한 여정을 담았습니다. 이 책은 자연이 어떻게 그녀의 문화적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는지를 솔직하고도 강렬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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