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짜리 숏폼 드라마? 중국 공산당 선전물일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청소부와 사랑에 빠져 아내를 떠난다. ….”
이런 줄거리의 숏폼 드라마가 미국 주부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2억300만 달러(약 27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는 보도가 지난 7월 말 중국 언론을 통해 퍼졌다. 그러나 이는 모두 가짜 뉴스로 확인됐다.
중국 전문가들은 에포크타임스에 “시청자들이 숏폼 드라마에 점점 몰입하는 가운데, 이 모바일 기반 오락물이 중국 공산당의 핵심 선전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민족주의 정서를 고취하고,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숏폼 드라마는 휴대전화 화면에 맞춰 세로로 제작되는 짧은 연속극 형식의 영상으로, 한 편의 길이는 보통 1~3분이다. 반전이 이어지며 다음 전개를 보기 위해 유료 결제를 유도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주요 소재는 서민 여성과 정체를 숨긴 재벌의 로맨스, 혹은 가난한 여주인공이 부와 권력을 얻은 뒤 복수에 성공하는 이야기 등이 주를 이룬다.
현재 유튜브, 틱톡, 페이스북, 엑스(X), 인스타그램 등 마이크로 드라마 앱과 소셜미디어 플랫폼에는 “비밀스런 재벌과의 여름 허니문”, “우리 병원 의사는 내 아이의 아빠”,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 비밀” 등과 같은 제목의 영상들이 수천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당국은 숏폼 드라마의 폭발적 인기를 선전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3년간 검열을 강화했을 뿐 아니라, 중국 공산당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콘텐츠와 국내외 대중을 겨냥한 문화 콘텐츠 제작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급성장하는 시장
숏폼 드라마 산업은 전통 영화·TV 드라마보다 제작비가 저렴하고 수익 회수도 빠르다는 장점 덕분에 중국에서 먼저 급성장했다.
아이아이미디어(iiMedia) 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중국 온라인 숏폼 드라마 시장 규모는 52억5천만 달러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027년에는 14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외 지역에서도 시장은 빠르게 확대됐다. 쑤저우 증권이 7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3년 1억 달러 미만에서 2024년 15억 달러로 급등했으며, 2025년에는 3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 *2025년 데이터는 추정치임. | SensorTower, Soochow Securities
로스앤젤레스 기반 시네버스(Cineverse)와 미국 최초 숏폼 드라마 전문 스튜디오 ‘마이크로코(MicroCo)’를 설립한 엔터테인먼트 사업가 로이드 브론은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숏폼 드라마 시장 규모는 2027년까지 1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0년 미국 숏폼 플랫폼 퀴비(Quibi)가 실패한 이후, 글로벌 숏폼 드라마 시장은 중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광명일보는 올해 3월 기준 해외 앱스토어에 등록된 중국산 숏폼 드라마 앱이 237개에 달한다고 전했다.

참고: *2025-2027년 데이터는 추정치임. | Maoyan Professional, China Television Drama Production Industry Association, Soochow Securities
시장조사기관 센서타워(Sensor Tower)에 따르면, 9월 11일 기준 구글 플레이 미국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 상위 50위에 든 숏폼 드라마 앱 10개 중 9개가 중국 기업이 개발한 것이었다. 다만 일부는 미국이나 싱가포르 자회사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특히 가장 인기 있는 앱 ‘릴쇼트(ReelShort)’는 최근 한 달간 전 세계에서 1300만 건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11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같은 기간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다운로드 400만 건, 매출 28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일부 제작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촬영지를 다시 중국으로 옮기고 있으며, 해외 배우들을 중국으로 직접 불러들여 한 작품당 제작비를 20만 달러 이상에서 2만8천 달러 수준까지 줄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저장성 헝뎬에서 열린 오디션에서 배우 궈팅(오른쪽)이 연기하고 있다(2024년 6월 18일). 최근 몇 년간 숏폼 드라마 시장은 전통적인 영화·TV 드라마보다 낮은 제작비와 빠른 수익 회수를 강점으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 Hector Retamal/AFP via Getty Images/연합
中, 숏폼 드라마 전면 검열…선전·통일전선 도구로 활용
중국의 온라인 미디어는 국가라디오텔레비전총국(NRTA),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 등 여러 국가 기관의 규제를 받고 있으며, 이들 기관은 모두 공산당 중앙선전부의 지휘를 받는, 사실상의 선전·검열 기구다.
문화여유부 역시 숏폼 드라마를 활용해 관광 및 무형문화유산 홍보 캠페인을 주도하지만, 이 또한 중앙선전부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NRTA는 2022년 11월 공고를 통해 “온라인 숏폼 드라마는 사상적·문화적 속성을 동시에 지닌다”고 규정하며, 심의 기관들이 “정확한 정치 방향, 여론 지향, 가치 지향, 심미적 취향”을 준수하고 “당이 언론을 통제한다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당국은 대대적인 검열 캠페인을 벌였다. 국영방송 CCTV에 따르면, 2023년 11월까지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고, 심미적으로 불쾌하거나 해로운 콘텐츠를 담았다는 이유로 수만 개의 시리즈, 1억7천만 편이 넘는 에피소드가 삭제됐다.
2024년 6월부터는 숏폼 드라마가 공식적으로 검열 체제에 포함됐으며, NRTA는 올해 2월 “허가나 등록을 거치지 않은 작품은 게시·홍보가 불가하다”고 재차 경고했다.
캐나다 토론토 기반 작가이자 인권운동가 셩쉐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공산당은 현실 풍자, 불만 표출, 격한 감정 표현이 대규모 사회적 불만으로 번질 것을 두려워한다”고 지적했다.

2020년 6월 17일 홍콩의 한 스튜디오에서 홍콩 배우들이 TV 프로그램 ‘헤드라이너(Headliner)’를 촬영하는 모습이 모니터 화면에 비치고 있다. | Anthony Wallace/AFP via Getty Images/연합
미국 거주 의사 겸 시사 평론가 탕징위안 역시 “숏폼 드라마를 포함한 대중적 미디어 형식은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공산당이 감추고 싶은 내용을 확산시킬 수 있다”며 “이는 민감한 사회 쟁점이나 주요 사건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당국은 한편으로 검열을 강화하면서도 숏폼 드라마의 인기를 역이용해 창작자들에게 적색 관광과 사회주의 이념을 홍보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조금 지급, 포럼 개최, 각종 경연대회 등을 열며 해외 확산을 적극 독려하는 상황이다.
국가라디오텔레비전총국(NRTA)은 2024년부터 국제 미니시리즈 경연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2025년 대회 공고는 지난 8월 21일 발표됐으며, 당국은 이번 행사의 목적을 “세계에 중국 이야기를 잘 전할 수 있는 고품질 콘텐츠 제작”이라고 밝혔다.
‘중국 이야기를 잘 전한다’는 표현은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 전략의 일환으로, 국내 비당원 세력의 지지를 확보하고 해외에서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기 위한 구호다. 이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 이야기를 잘 만들고, 중국의 목소리를 전하라”고 강조한 연설 이후 널리 퍼졌다.
경연대회의 주제는 ▲중국의 현대화 ▲‘녹색 중국’ ▲중국 문화유산 ▲중국이 세계와 협력해 ‘인류 운명공동체’를 건설하는 이야기 등이다. 왕이 외교부장은 ‘인류 운명공동체’를 ‘시진핑 외교사상의 핵심’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 개념은 원래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2007년 중국과 대만 관계를 지칭하며 사용했으며, 이후 ‘전 인류’로 확대됐다. 시진핑 주석은 이를 공산당 외교 담론의 핵심 요소로 통합했다.

2025년 4월 1일, 베이징의 한 쇼핑몰 외부 전광판에서 중국의 대만 주변 군사훈련 관련 뉴스가 방송되고 있다. | Adek Berry/AFP via Getty Images/연합
시진핑 주석은 유엔 연설에서 수차례 ‘인류 운명공동체 건설’을 강조하며 미국의 패권을 비판하고 다극화를 주장하는 동시에 ‘제국주의, 식민주의, 패권주의’를 규탄해 왔다.
중국 내에서는 지방 당국이 지난 1년간 수십 건의 캠페인을 벌이며 숏폼 드라마를 활용해 이른바 ‘적색 명소’를 홍보했다. 이는 공산당 관련 역사적 사건 현장과 원로 간부들의 거주지뿐 아니라 향 제조, 종이 오리기, 도자기 수리, 지방 오페라 등 무형문화유산을 강조한 관광지까지 포함됐다.
대만 국가안보연구원(INDSR) 궁산손 연구원은 “중국 공산당이 무형문화유산을 홍보하는 목적은 단순히 해외에서 문화 영향력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며 “국내 민족주의 정서를 끌어내고 이를 공산당 통치 지지로 연결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거주 평론가 탕징위안은 “적색 관광은 공산당이 여러 목표를 달성하는 핵심 수단이었다”며 ▲국내외 이미지 개선 ▲당의 범죄 기록 은폐·수정 ▲반미·반일 정서 선동 등 필요에 따라 활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INDSR의 션밍스 연구원 역시 “중국 공산당은 숏폼 드라마를 통일전선 전략의 핵심 도구로 공식 채택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공산당의 선전 콘텐츠가 “겉으로는 문화상품처럼 포장되지만, 결국 정상적인 숏폼 드라마를 잠식하고 정치적 내러티브나 허위 정보를 전 세계에 퍼뜨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언급한, 미국 대통령을 소재로 한 가짜 바이럴 드라마 사례와 관련해, 인권운동가 셩쉐는 “이 사건은 숏폼 드라마가 전 세계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공산당은 이 형식을 활용해 허위 의제를 만들거나 정치적 암시를 삽입해 해외 시청자들의 자국 정치·사회 문제 인식을 왜곡할 수 있다”며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위험을 한층 더 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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