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연에포커스] 한국의 국가부채는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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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허진욱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한국의 나랏빚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00년에 111.2조 원에 불과하던 국가채무(D1)는 지난 24년간 10배가 넘는 규모로 확대돼 2024년 말 기준 1175.2조 원을 기록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도 동 기간 16.5%에서 46.1%로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절대적인 금액 자체만이 아니라 경제 규모 대비 국가채무의 상대적 크기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의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낮다는 점에서 추가로 부채를 늘려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수행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실제로 2023년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은 50.7%를 기록해, 높은 부채로 잘 알려진 일본(240.0%)을 크게 하회함은 물론 미국(119.0%), 캐나다(107.7%), 영국(100.4%), 유로존(87.4%) 등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GDP 대비 부채 낮다’는 착시
그러나 이러한 단편적인 국제비교만으로 한국의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한국의 국가부채는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닙니다.
우선, 한국은 미국, 일본, 유로존, 캐나다 등과 달리 비(非)기축통화국으로 분류됩니다. 비기축통화의 경우 경제 상황이 변화할 때 기축통화보다 금리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국가신용등급도 더욱 탄력적으로 조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채무가 급증하면 국가가 부담할 이자 비용도 동반 상승하여 재정건전성의 악화를 더욱 가속할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올해 발표한 “Fiscal Monitor”에 따르면 한국의 2025년 말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은 11개 비기축통화국 중 싱가포르(174.9%), 이스라엘(69.1%), 뉴질랜드(55.3%) 다음으로 높은 54.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국가들과의 단순 비교만으로 한국의 국가부채가 적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재정악화의 ‘시한폭탄’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이 맞이할 인구구조의 변화입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의하면 2022년에 5167만 명이던 한국의 총인구는 2050년까지 4711만 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며, 15~64세 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수를 나타내는 노년부양비는 동 기간 24.4에서 77.3으로 크게 확대될 전망입니다. 즉, 인구수 자체가 감소하는 것도 문제지만, 인구 중에서 평균적으로 높은 생산성을 나타내는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이 대폭 낮아지는 것이 더욱 큰 위험요인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러한 인구구조의 변화는 성장세를 둔화시켜 정부의 세입 여건을 악화시키는 반면 고령화로 인한 각종 재정지출 수요는 확대해, 향후 한국의 재정 상황을 크게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즉, 정부가 별다른 의도적인 재정 확대 정책을 시행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국가부채는 가파른 속도로 증가할 가능성이 이미 큰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정지출, 미래세대 부담 고려한 ‘절제’ 필요
따라서 정부는 지금의 국가부채 규모가 이미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전제하에서 재정 총량을 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구구조에 의한 장기적인 성장 둔화와 단기적인 경기 불황을 분명히 구분해 재정지출을 운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잠재성장률이 점차 낮아지는 현 상황에서는 낮은 성장률이 곧 단기적인 경기 불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조적인 성장 둔화를 단기적인 것으로 오인해 재정지출을 과도하게 증가시킨다면, 이는 마치 만성 질환에 과량의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과 같이 성장에는 유의미한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재정건전성만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경기 침체기에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 대응하는 것은 기본적인 역할이지만, 이러한 재정 대응은 경기 상황을 면밀히 판단해 과도하지 않은 규모로 명확한 목적성을 갖추어 이뤄져야 합니다.
재정지출을 늘리기 위해 부채를 발행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을 마주하게 될 미래 세대가 쓸 수 있는 재원을 현재 세대가 당겨쓰는 것입니다.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성장의 과실을 고르게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 재정을 운용해야 합니다. 한국의 국가부채, 지금이라도 건전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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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가부채는 안전한가? 진단과 대응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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