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논평] 독일 경제의 추락: 성장 신화 뒤에 숨은 구조적 한계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2025년 9월 9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5’ 국제 모터쇼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 Kai Pfaffenbach/Reuters/연합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2025년 9월 9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5’ 국제 모터쇼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 Kai Pfaffenbach/Reuters/연합

유럽의 ‘경제 엔진’으로 불리는 독일이 2025년 막바지를 매우 힘들게 맞이하고 있다.

세계 3위 경제 대국이자 유럽연합(EU) 최대 소비 시장인 독일은 지난해 EU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4분의 1을 차지했으며, 미국의 최대 유럽 무역 파트너로 자리해 왔다.

그러나 올해 2분기 독일 경제는 다시 위축 국면에 들어섰다. 컨설팅 업체 KPMG가 8월 2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4~6월 GDP가 0.1% 감소하면서 연초의 0.3% 깜짝 성장세를 모두 지워버렸다. 산업 부문의 소폭 반등에도 불구하고 실업 증가와 성장 정체 등 구조적 부담은 여전히 뚜렷하다.

이 같은 압박 속에서 베를린 정부는 경제 모델 재검토에 나섰다. 헌법에 규정된 ‘부채 억제 조항’을 완화해 재정 운용의 유연성을 확대하고, 기업 주도의 ‘메이드 포 저머니(Made for Germany)’ 투자 프로그램을 통해 공공·민간 투자의 새로운 물결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단기적 경기 부양이 오히려 안정성을 희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 올해 독일 자동차 부품 대기업 콘티넨탈은 독일 내 공장 4곳을 폐쇄하고 2곳의 규모를 축소한 뒤 생산을 해외로 이전하겠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로 7000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기술 대기업 지멘스는 올해 3월, 수요 둔화를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5600개의 일자리를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중 2600개는 독일 내 일자리다.

기업 전반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어둡다. 2025년 상반기 독일 내 파산 건수는 약 1만1900건에 달하며, 이는 지난 10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업들은 높은 비용, 수요 감소, 그리고 녹색 전환 속도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공의 3대 축

수십 년간 독일 경제의 성공을 견인해 온 3대 축은 값싼 에너지 수입, 자동차 산업의 지배적 위상, 그리고 ‘블랙 제로(Black Zero)’라 불리는 균형재정 원칙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원칙은 현재 모두 약화된 상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베를린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여실히 드러냈다. 에너지 가격은 여전히 가스 시장과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라 급등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결정한 ‘2022년 말까지 원자력 발전 중단’ 정책과 맞물렸고, 결국 올라프 숄츠 총리 정부에서 2023년 실제로 시행됐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베를린은 재생에너지와 수입 가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2045년까지 기후 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는 재생에너지를 정책의 핵심 축으로 두고 있지만, 이 전환에는 막대한 비용이 따른다.

독일상공회의소(DIHK)는 이러한 녹색 전환 비용이 2049년까지 총 5조4천억 유로(약 6조3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DIHK 피터 아드리안 회장은 현재의 정책이 독일 경제의 기반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CDU) 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왼쪽)가 2025년 2월 23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 총선 출구조사 결과 발표 후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Ina Fassbender/AFP via Getty Images/연합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1~6월) 기준 독일의 도매 전기요금 평균은 프랑스, 일본, 인도, 호주, 미국, 그리고 유럽 평균보다 높았다. IEA는 2026년에도 여전히 높은 전력 가격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제학자 마르쿠스 크랄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은 값싼 에너지에 의존하던 국가에서 산업 국가 중 가장 높은 전력 가격을 부담하는 나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러시아에 대한 제재 때문만이 아니라, “에너지 가격을 의도적으로 올려놓은 자국의 정책 탓”이며, 이러한 결정은 “거시경제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고 비판했다.

성장 둔화와 소비 위축

독일의 2024년도 연간 GDP 성장률은 전년 대비 0.2% 감소되었고, 2025년 2분기에도 추가 약세가 확인됐다. 뮌헨 소재 IFO 경제연구소는 보고서에서 “올해 1분기 미국의 조기 발주 덕분에 산업 생산과 수출이 일시적으로 늘었지만, 2분기에는 다시 후퇴했다”고 밝혔다.

9월 4일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투자가 소폭 늘고 있지만 건설 부문은 여전히 침체 상태이며, 가계 소비 회복도 더딘 상황이다. 소비자 신뢰지수는 9월까지 3개월 연속 하락했고, 7월의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1.5% 줄어 예상을 빗나갔다.

크랄은 “평균 시민의 가처분 소득이 빠르게 줄고 있다”며 “이는 생산 증가 둔화와 인구 증가에 따른 수요 부담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2025년 7월 23일, 베를린의 한 쇼핑센터를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 Mihut Savu/The Epoch Times

공식 통계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실업률이 상승하고 일자리 창출이 정체된 가운데, 산업 부문의 침체 조짐은 안정적인 물가 상승률 뒤에 가려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컨설팅사 KPMG는 올해 상반기 미국의 관세 정책이 독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독일의 차량·기계류 수출업체들이 더 높아진 관세 부담으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크랄은 “관세는 독일 경제의 어려움을 악화시킨 요인이지만 근본 원인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독일 산업계가 이를 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IFO 경제 연구소는 올해 독일 경제 성장률이 0.2%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회계·컨설팅 기업 KPMG는 2025년 성장률을 최대 0.4%, 2026년에는 0.7%에서 1.7% 사이로 예측했다. 다만 이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지난 7월 체결한 무역협정을 아직 반영하지 않은 수치다.

자동차: 성장 엔진에서 부담으로

경제학자들은 폭스바겐, BMW, 다임러, 포르쉐 등으로 대표되는 독일 경제의 핵심 성장 동력인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EV) 와 디지털 기술의 거센 경쟁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해 폭스바겐은 값싼 중국산 전기차 공세에 밀려 사상 처음으로 공장 폐쇄 가능성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자동차 및 부품은 여전히 수출의 17%를 차지했지만, 이는 2016년 19%에서 하락한 수치다. 올해 포르쉐가 독일 대표 주가지수인 DAX에서 밀려나 중형주 지수인 MDAX로 편입된 것도 업계의 위기를 상징한다.

2019년 2월 19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주펜하우젠의 포르셰 공장에서 독일 자동차 제조사 포르셰 직원들이 포르셰 911의 앞유리를 장착하고 있다. | Ralph Orlowski/Reuters/연합

클레멘스 푸에스트 IFO 소장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자동차 산업은 한때 내연기관 기술을 기반으로 뚜렷한 경쟁 우위를 가졌지만, 지금은 큰 기술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앞으로 자동차 산업이 성장 엔진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푸에스트 소장은 독일이 전통적 강자 기업에 의존하지 말고 산업 전반에 걸쳐 기업 활동을 뒷받침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포르쉐의 DAX 탈락과 자동차의 주가 부진은 시장이 더 이상 강한 성장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신호”라며, 정부가 특정 기업을 선택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기업 활동 전반을 위한 더 나은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학자 마르쿠스 크랄은 자동차 업계의 어려움을 에너지 비용 급등과 정치적 결정 탓으로 돌렸다. 그는 “비싼 전기요금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충분히 원하지 않고, 유럽 어디에도 제대로 된 전기차 중고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는 정치가 산업계에 강제로 떠넘긴 빚이며, 업계는 이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결정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메르츠 총리는 독일의 재정 족쇄를 풀어내는 데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고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헌법에 규정된 ‘부채 억제 조항(채무 브레이크)’를 개혁해 GDP의 1%를 초과하는 국방비를 면제 대상으로 지정하고, 인프라 및 친환경 에너지 투자를 위해 5천억 유로(약 5500억 달러) 규모의 특별 기금을 조성했다.

이어 6월에는 의회가 460억 유로(약 50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 패키지, 기업에 대한 신속한 세금 공제 확대, 그리고 2032년까지 법인세율을 현행 15%에서 10%까지 단계적으로 인하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독일 재무장관 라르스 클링바일은 7월 “새로운 성장 촉진책으로 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며 “독일을 국제적으로 더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 허브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야당은 재정 원칙을 약화시키는 이번 조치를 비판하며 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했고, 녹색당은 기후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고 경고했다.

경제학자 마르쿠스 크랄은 이러한 개혁 기조에 대해 “부채 억제 조항을 약화시키는 것은 독일을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바이로이트대학교 경제학 교수이자 ‘붐 & 버스트 리포트’ 발행인 토르스텐 폴라이트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조치가 성장을 촉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더 많은 낭비와 부패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정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제적 자유, 더 많은 기업 활동, 더 많은 민간 투자이지 정부 지출 확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메이드 포 저머니’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지난 7월 개혁 조치가 “더 큰 성장과 투자 유인을 창출할 토대를 마련했다”고 강조하며, 지멘스, 도이체방크, BMW, 에어버스 등 61개 주요 기업이 참여한 ‘메이드 포 저머니(Made for Germany)’ 이니셔티브 출범을 환영했다.

이들 기업은 2028년까지 총 6310억 유로(약 733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메르츠 총리는 이를 두고 “독일이 돌아왔다”는 강력한 투자자 신뢰 회복의 신호라고 평가했다.

지지자들은 이러한 민관 합동 추진이 특히 디지털화와 인공지능 분야에서 독일이 다시금 경제적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는 최선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 마르쿠스 크랄은 이러한 약속이 구속력이 없는 선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본질적으로 멋진 선언일 뿐, 실질적인 내용은 없다”며 “독일은 EU 내부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낮은 세율, 간소한 행정, 그리고 견고한 인프라를 갖춘 스위스를 독일이 참고할 만한 모델로 꼽았다.

여론의 흐름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취약한 연정은 기록적인 수준의 민심 이반에 직면해 있다. 여론조사기관 인프라테스트 디맵이 공영방송 ARD 의뢰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연방정부의 국정 운영에 불만을 표했고, 메르츠 총리의 국정 수행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21%에 그쳤다.

경제학자 토르스텐 폴라이트는 “지속되는 경제 침체와 실업률 상승은 메르츠 총리와 연정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다만 설령 차기 총선 이전에 현 정부가 붕괴한다 해도, 진정으로 개혁 지향적인 정부가 구성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에브게니아  필리미아노바(Evgenia Filimianova) 는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언론인으로, 국제 뉴스 전반을 취재하며 특히 외교, 경제, 영국 정치 분야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