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커크 암살로 美 유타주 젊은 보수층 더 결집

많은 젊은 보수주의자들에게 찰리 커크는 정치적 첫사랑이었다. 떠오르는 보수 스타가 대학 캠퍼스에서 열었던 공개 행사들을 통해 그들은 캠퍼스에서의 증오와 정치적 고립에 대한 희망적인 출구를 발견했다. 캠퍼스에서 그는 모든 정치적 성향의 청중들로부터 나오는 질문들을, 때로는 적대적인 질문들까지도,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9월 10일(현지시간) 유타에서 바로 그런 행사 중에 일어난 커크의 암살은 지지자들을 위축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한 세대를 결집시켜 그의 발자취를 이어가도록 하고 있다.
유타대학 공화당원 연맹 회장인 타일러 보일스(23)는 “그가 말벌의 둥지로 들어가서 자신의 입장을 지키고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해 담대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고무적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내 또래의 수천 명에게도 그랬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찰리의 바이럴 영상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멋진 것 중 하나였다. 말로 표현하기가 좀 어렵다. 그 생각을 하자니 감정이 복받친다”고 덧붙였다.
보일스와 같은 젊은 보수주의 학생들에게 커크는 좌경화되고 보수주의자들이 종종 명백한 소수가 되는 고등학교, 특히 대학 캠퍼스에서 근본적인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
일부는 중학교 토론 수업에서 정치적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다른 이들은 코로나19 기간 중 캠퍼스의 백신 및 마스크 의무화에 반대하는 조직 활동을 하면서 정치에 참여하게 됐다. 커크는 손에 닿을 것 같은 일종의 자신감과 신념을 보여주었다.
보일스는 “우리 또래는 학교에 다니면서 좌익의 세뇌를 많이 받았다. 그때, 커크는 희망의 빛이었다. 그는 좌익의 어떤 주장이든 받아서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보일스에 따르면, 커크가 만든 터닝포인트 USA의 인프라가 젊은 공화당원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유타 연맹은 6개 지부로 성장했고 500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브리검 영 대학교(BYU) 3학년생인 카이 슈베머(22)는 “찰리가 구축할 수 있었던 인프라만으로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돌이켜보면, 터닝포인트가 언급되지 않았던 때를 정말 기억할 수 없고, 앞으로도 그것이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규모로 젊은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극소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찰리는 그런 면에서 특별했다”고 회상했다.
20세인 라일리 비슬리는 커크가 총격을 당했을 때 터닝포인트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근처에 서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 일을 목격하고, 우리의 아름다운 유타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이런 일들은 여기서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당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난 공포와 두려움을 떠올렸다.
보일스는 “이 사건이 나로 하여금 캠퍼스에서의 우리의 노력을 두 배로 늘리도록 용기를 주었다.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 번 홍보 테이블을 설치했다면, 이제 일주일에 네 번 설치할 계획이다. 나가서 그를 위해 움직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유타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많은 젊은 보수주의자들이 같은 생각이라며, “우리는 용기를 얻었고, 준비가 되었다. 대학 캠퍼스에 와서 그저 대화를 하고, 특히 진정성이 있고, 주변을 환하게 밝힐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찰리를 위하여! 그런 사람을 잃었다는 것은 분명히 당신을 격동시킨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비슬리는 자신의 분노, 슬픔, 좌절감을 커크가 남긴 비전으로 승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더 열심히 밀어붙이고, 더 많은 문을 두드리고, 더 많은 유권자를 등록시키고, 캠퍼스에서 우리의 메시지에 대해 대담해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적 인물이 되어 커크가 모범을 보인 그런 종류의 시민적 담론에 참여하는 젊은 보수주의자들에게 정치적 폭력이라는 유령이 갑자기 현실로 다가왔다.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슈베머는 온라인에 접속해 라이브스트림 비디오를 진행하며,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을 인터뷰해서 사건의 전모를 파악했다. 다음 날, 그는 커크를 위한 추도식에서 연설하도록 초청을 받았다.
그는 “물론 나는 평소 하던 대로 ‘네, 꼭 가겠습니다. 그 자리에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친구로부터 ‘조심해서 다녀와’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추도식이 열리는 장소가 말 그대로 커크가 죽은 바로 그런 종류의 장소라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죽기 직전에 하고 있던 바로 그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친구들의 걱정 어린 인사를 듣고서야 그 생각이 마치 트럭처럼 나를 강타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 주춤하는 것, 움츠러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찰리 커크의 기억을 배신하고 일어난 모든 일을 배신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다짐하듯 덧붙였다.
*한강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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