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에서의 24시간…피자·궁전·오페라·베수비오

최고의 의미에서 상상할 수 있는 ‘혼돈’이 여기에 있다. 빵빵거리는 자동차들로 가득 찬 거리, 보행자와 노점상이 가득한 골목길, 그 사이를 유유히 누비는 베스파와 각종 스쿠터들. 왼편에서는 이탈리아 특유의 격한 언쟁이 벌어지고, 오른편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를 맛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조급한 기색을 보인다. 장작불에 구워지는 도우, 소스, 치즈의 향이 거리를 가득 채운다.
좋든 싫든, 나폴리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 중 하나다.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나폴리는 바다를 따라 펼쳐져 있으며, 활동 중인 베수비오 화산 정상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이 마그마의 산에서 에너지를 끌어온 듯, 나폴리 사람들의 삶과 사랑은 누구보다 뜨겁고 격정적이다. 유럽에서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강렬한 삶의 리듬을 보여주고 있다. 단 하루라는 시간은 짧지만, 이 도시의 진짜 매력, 곧 ‘라 파시오네 넬라 비타’(삶의 열정)를 최대한 만끽할 수 있는 하루 여행 가이드를 소개한다.
도착
나폴리 카포디치노 국제공항(NAP)은 시내 중심부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대형 제트기가 이착륙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는 나폴리 특유의 정감을 더해주는 광경이다.
이곳에는 이지젯(EasyJet), 라이언에어(Ryanair) 같은 저가 항공사뿐만 아니라 아테네, 암스테르담, 뮌헨, 파리 등 유럽 주요 허브에서 출발하는 여러 국적 항공사들도 착륙한다. 따뜻한 계절에는 북미에서 나폴리로 향하는 직항 노선도 운항되는데, 시카고, 필라델피아, 뉴욕, 몬트리올, 애틀랜타 등지에서 NAP 공항으로 연결되는 계절 운항편도 이용할 수 있다.
도착 후 시내로 이동하는 과정은 비교적 빠르고 간단하다. ‘알리버스(Alibus)’라 불리는 공항 버스를 이용하면 중앙역까지 약 15분, 항구까지는 약 35분이 소요된다. 중앙역까지의 편도 요금은 5유로다. 공유차량 서비스는 이 지역에서 흔하지 않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 승차 전에 적정한 요금을 미리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침
나폴리를 제대로 경험하려면 도보 여행을 체험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다만, 처음에는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알리버스를 타고 나폴리 중앙역에 도착했다면, 이제부터는 도보 여행을 시작해보자. 지나치는 블록마다 한 편의 오페라가 펼쳐지듯 생생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비극이 아닌 희극이다—어디를 보든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도심에서 남서쪽 방향, 대체로 나폴리만(灣)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향해 걸음을 옮겨보자. 주요 간선도로인 움베르토 1세 거리(Corso Umberto I)를 따라 걷다 보면, 약 45분 후에는 나폴리 왕궁(Royal Palace of Naples)에 도착하게 된다.

나폴리 왕궁은 1600년에 지어졌으며,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된 건축미를 자랑한다. | Gim42/Getty Images
나폴리 왕궁에 도착하기 전, 잠시 시간을 내어 ‘움베르토 1세 갤러리아(Galleria Umberto I)’에 들러보자. 천장을 올려다보면 유리 돔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 쇼핑 아케이드는 인근 거리와 마찬가지로 당시 이탈리아 국왕이었던 움베르토 1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1890년에 완공됐다.
현재 이 갤러리아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나폴리 역사 지구의 일부다. 내부를 몇 분만 거닐어도 긴 비행으로 쌓인 피로와 무거운 기분이 말끔히 사라질 것이다. 특히 맑은 날에는 남부 이탈리아의 햇살이 아치형 유리 지붕을 통해 아케이드 안 카페와 상점들을 환하게 비춰준다.
이제 간단한 아침 간식을 즐기기에 좋은 시간이다. 이탈리아식으로 바에 서서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셔보자. 리코타 치즈를 속에 채운 바삭한 전통 페이스트리인 스폴리아텔라(sfogliatella)를 곁들이면 더욱 좋다.
간식을 마친 뒤에는 갤러리아를 나와 길 건너편에 자리한 산카를로(San Carlo) 극장을 눈여겨보자. 이 오페라 극장은 1737년에 개관했으며 지금까지 줄곧 운영되어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페라 하우스다.

산카를로 극장은 말발굽 모양의 아름다운 객석 구조, 붉은색과 금색의 화려한 장식, 그리고 프레스코 천장화로 유명하다. | Shutterstock
여기서 나폴리 왕궁까지는 몇 블록만 더 걸으면 된다. 단 한 가지 문제라면, 이곳은 하루 종일 머물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장소라는 점이다. 가능하다면 빠르게 둘러보되, 그 역사적 의미는 꼭 기억해 두자. 왕궁은 1600년에 지어졌으며, 다른 유럽 궁전들처럼 수세기에 걸쳐 여러 차례 보수와 개조를 거쳤다.
왕궁 내부에서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은 바로 ‘대계단(Grand Staircase)’과 ‘왕실 거실(Royal Apartments)’이다. 일반에 개방된 이 공간을 걷다 보면, 여러 세대에 걸친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살고 일했는지 생생히 그려볼 수 있다.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궁정 생활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오후
어느덧 시간이 오후로 접어들었다. 본격적으로 점심을 즐길 시간이다. 나폴리는 이탈리아 최고의 미식 도시 중 하나로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왔다. 이는 베수비오 화산이 만들어낸 비옥한 토양으로 인해 신선한 식재료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왕궁에서 천천히 걸으면 약 15분 거리에 있는 유명한 피자 가게인 La Vera Pizza Fritta da Gennaro에 도착할 수 있다. 나폴리는 피자의 발상지이며, 이곳의 피자 장인들은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의 피자를 만든다고 자부한다. 실제로 이곳에서 피자를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프라이드 피자’가 피자의 원형이라는 주장도 있다. 분명한 건, 이 피자는 남부 이탈리아 외 지역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별미라는 사실이다. 이 특별한 메뉴를 맛보기 위해 젠나로(Gennaro)를 찾아가 보자.
작은 골목 안, 간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조그만 가게. 하지만 이곳에서는 진정한 지역의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직원들은 현지에서 나온 토마토로 만든 소스를 듬뿍 바르고, 물소에서 갓 짜낸 신선한 부팔라 모차렐라 치즈를 얹는다. 일반적으로 도톰하면서도 지나치게 두껍지 않은 반죽 위에 재료를 올린 뒤, 반죽을 접어 속재료를 감싸고는 뜨거운 기름에 튀긴다. 갓 튀겨져 나온 피자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입안 가득 퍼지는 풍미는 그야말로 완벽하다. 가게 앞 작고 소박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이 단순하지만 특별한 점심을 천천히 음미해 보자.

도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활기찬 거리 풍경… 나폴리 대표 길거리 음식 ‘프라이드 피자’ | Marco_Piunti/Getty Images
프라이드 피자의 열량을 소화하고 싶다면, 나폴리 중심부의 거리, ‘콰르티에리 스파뇰리(Quartieri Spagnoli)’를 천천히 걸어보자. 이곳은 나폴리가 가장 ‘나폴리답게’ 드러나는 장소다. 시끌벅적한 소음, 거리 위 삶의 에너지가 그대로 펼쳐진다. 좁고 빽빽하게 건물이 들어선 이 지역은 원래 16세기, 스페인 군대를 주둔시키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지명 자체가 ‘스페인 병영’을 뜻한다.
거리마다 장터가 열리고, 위를 올려다보면 아파트 발코니마다 빨래가 널려 있다. 좁은 틈을 누비는 베스파 오토바이, 손수레를 밀고 다니는 노점상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파스타 전문점이 사방의 모퉁이를 채우고 있다. 밤이 되면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단돈 1유로짜리 알콜음료 아페롤을 찾아다니며 떠들썩한 밤을 만든다.
그리고 나폴리의 높은 지형을 실감하고 싶다면, ‘콰르티에리 스파뇰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위로 올라가 보자. 나폴리 시내는 가파른 경사를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는 네 개의 푸니쿨라(경사 철도) 노선이 매일 수백만 명을 산 위로 실어 나른다.
도심의 분주함을 지나 언덕 위 동네에 도착하면,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고요함이 느껴진다. 산마르티노 전망대(Belvedere di San Martino)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나폴리 전체가 발 아래 펼쳐지는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은 단연 나폴리 최고의 전망 명소다. 오른편으로는 바다의 곡선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정면으로는 우뚝 솟은 베수비오 화산이 장엄하게 떠오른다. 근처 벤치에는 늦은 점심을 즐기거나 이른 술 한잔을 기울이는 현지인들이 앉아 있고, 배경에서는 기타 연주가 잔잔하게 흐르며 분위기를 더한다.

나폴리만은 베수비오 화산에 둘러싸여 있으며, 고대부터 해상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Alessandro Tortora/Getty Images
저녁
산비탈을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오거나,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인 후라 피곤하다면 푸니쿨라를 타도 좋다. 시간을 들여 비아 톨레도를 따라 천천히 거닐며 구경해 보자. 이곳은 나폴리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 거리다.
비아 톨레도는 16세기 전반기 스페인 총독이었던 페드로 데 톨레도가 만든 도로다. 오늘날 이곳에서는 명품 브랜드부터 지역 기념품까지 다양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기념품으로는 손으로 직접 그린 도자기나 현지산(産) 레몬술인 리몬첼로 한 병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비아 톨레도는 나폴리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 중 하나다. 이 보행자 전용 도로는 16세기에 조성되었으며, 당시 나폴리의 스페인 총독이었던 페드로 알바레즈 데 톨레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이곳은 기념품을 사거나, 저렴한 물건을 찾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 Shutterstock

나폴리는 손으로 만든 성탄 인형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 인형들은 전통적으로 테라코타, 나무, 천으로 만들어지며, 정교하게 채색되고 옷까지 입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Natalia Marcelewicz/Unsplash
이른 저녁 식사를 위해 근처를 둘러 보자. 나폴리에서는 아주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넘쳐난다. 단순하면서도 맛있는 것, 이를테면 나폴리의 대표적인 요리인 ‘봉골레 스파게티’처럼. 바지락, 마늘, 파슬리, 올리브유로 만든 이 파스타는 간단하지만 깊은 맛을 자랑한다.
든든히 배를 채웠다면, 근처에 있는 산 카를로 극장으로 향하자. 이 극장은 라 스칼라나 라 페니체보다 수십 년 앞서 세워진 유서 깊은 공연장으로, 현재도 발레단과 교향악단이 상주하며 아름다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웅장한 건축미를 감상하려면 조금 일찍 도착하는 것이 좋다.
이제 무대 위 공연을 즐길 시간이다. 운이 좋다면 이탈리아 오페라일 수도 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무대에서 느꼈던 희극과 비극, 그리고 기쁨의 여운을 안고, 활기차고 혼란스럽기까지 한 나폴리의 밤거리로 다시 나서 보자. 모퉁이 어딘가에 당신을 기다리는 네그로니 한 잔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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