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진핑, 권력의 정상에서 맞닥뜨린 6가지 고민

절대 권력의 길을 선택한 지도자와 정치 체제의 필연적 결과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집권한 지 13년. 지금까지 그의 권력은 ‘절대 권력’에 가까워졌지만, 현재의 시진핑은 이전보다 훨씬 더 불안하고 고립된 모습이다. 국내외적으로 중대한 위기들이 한꺼번에 겹치며 그의 리더십은 흔들리고 있으며, 심지어 일각에서는 조기 퇴진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시진핑은 현재 고통과 번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판단되며, 그를 밤잠 못 이루게 만드는 여섯 가지 고민을 다음과 같이 지적해 본다. 권력의 정점에 선 그는 어떤 공포와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을까?
1. 권력의 정상에서 마주한 깊은 고독
시진핑은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정적과 고위 간부들을 숙청했다. 그 결과 현재 그의 곁에는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인물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본다. 남은 것은 복종하는 부하들과 아첨하는 관료들뿐이다.
그는 하루하루 극도의 불신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마치 “낮에는 만세를 외치는 자들이 밤에는 쿠데타를 모의하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한다”는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그가 베개 밑에 방탄조끼를 숨기고 잔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중국공산당 발표에 따르면, 2022년까지 부패 혐의로 처벌된 고위 인사는 정국급(부처별 최고 책임자) 1명, 부국급 8명, 중앙군사위 위원 4명 등 수백 명에 이른다. 2024년 한 해에만 2만 2천 명이 부패 혐의로 기소됐으며, 전년 대비 36.8% 증가했다. 그는 권력을 강화했지만, 동시에 그만큼 외로워졌고, 더 이상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2.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억눌린 민심
두 번째 고민은 민심에 대한 공포다. 민심의 이반은 시진핑 체제가 직면한 또 다른 중대한 위기다. 백지시위와 “시진핑 퇴진” 구호 등은 체제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특히 2022년 상하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벌어진 ‘백지 시위’는 단순한 침묵 시위가 아니라, 소련 시대의 한 우화에서 영감을 받은 정치적 메시지였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백지를 들고 시위하던 남자가 체포됐다.
남자는 말한다. “왜 나를 잡느냐?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경찰은 말한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다.”
시진핑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민심의 분노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는 한밤중 전화 한 통에 깨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석님, 큰일 났습니다”라는 보고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중공은 감시 사회를 구축해왔다. 2019년까지 중국 전역에는 약 2억 대의 CCTV가 설치돼 있었고, 2020년에는 6.26억 대, 2022년에는 27.6억 대로 증가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AI 감시 기술이 시위 발생률을 낮추는 데 효과를 보였다”고 분석했지만, “이 모든 감시망이 오히려 지도자 본인에게는 공포를 되돌려주는 거대한 거울이 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3. 자신이 만든 거짓 정보에 오히려 당하다
세 번째 고민은 진실과의 단절이다. 시진핑은 강력한 정보 통제 시스템을 통해 사회를 장악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스스로도 진실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는 매일 아첨과 찬양으로 가득한 보고서만 받아보고 있으며, 실상은 직접 몰래 내부 자료를 뒤져가며 ‘어둠 속의 진실’을 찾아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2020년 3월, 중국 부동산 재벌 런즈창(任志强)은 코로나 대응을 자화자찬한 시진핑을 향해 인터넷에 ‘숫자 가리개로 나체를 감추려는 황제’라는 글을 올려 비판했다. 이 글은 곧 검열돼 삭제됐지만 시진핑 체제가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는 선전 체제를 증오하면서도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 가공되고 왜곡된 현실 속에서 스스로도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4. 자신의 역사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
네 번째 고민은 자신의 역사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시진핑은 후세에 위대한 지도자로 기록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는 그 목표를 위해 역사 자체를 통제하려고 한다. 2018년, 그는 헌법에서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삭제하며 사실상 종신 집권체제를 만들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은 격렬했다.
시진핑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죽은 뒤 ‘악인’으로 기억되는 일이다. 공산주의 체제는 본질적으로 거짓, 폭력, 투쟁, 억압 위에 구축돼 있으며, 과거의 지도자들 역시 그런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해왔다.
그는 이러한 통치 유산이 자신에게도 부정적 유산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해, 역사 해석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퇴임 이후의 평가와 책임 추궁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후계자를 두지 않는 방식으로 구조적 장치를 만든 셈이다. “후계가 없으면 청산도 없다”는, 그만의 정치적 방어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5. 국제 무대서 점점 고립되고 있는 상황
시진핑은 국내에서는 전폭적인 권위를 유지하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점점 고립된 지도자가 되어갔다. 과거의 ‘도광양회(실력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자)’ 노선과 달리, 시진핑은 ‘전랑(戰狼·싸우는 늑대) 외교’라는 강경한 외교 스타일을 취했다. 중공 외교관들은 공격적인 언행으로 국제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서방 언론은 그들을 ‘분노한 늑대들’이라고 묘사해왔다.
영국 타임스는 “중국 외교는 더 이상 품위 있고 절제된 모습이 아니라, 분노를 터뜨리는 무리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시진핑이 이러한 외교 노선을 직접 설계한 장본인이지만, 그 결과는 자신에게 국제적 고립과 조롱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서방 지도자들에게 시진핑은 더 이상 대화의 파트너가 아닌, 시대에 뒤떨어진 독재자처럼 비춰진 인물이다.
6. 파룬궁 문제 대처를 둘러싼 정치적 고민
시진핑은 집권 초기, 중국 사회 내 인권 문제와 부정부패 척결을 주요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특히 전임 지도자 장쩌민 체제 아래에서 자행된 파룬궁 박해 문제에 주목했다. 파룬궁은 1999년부터 장쩌민이 주도한 전면적인 탄압을 받아왔고, 수많은 수련자들이 체포, 구금되며 인권침해를 당해왔다. 시진핑은 이 박해의 책임이 장쩌민 파벌에 있다고 보고, 이들에 대한 반부패 수사를 통해 권력 기반을 약화시키는 한편, 노동교양소 제도를 폐지하는 등 인권 개선을 위한 조치를 일부 시도했다.
그러나 장쩌민 파벌의 잔존 세력, 특히 공안과 정치법률위원회 등 강경 보수파의 격렬한 반발로 인해 파룬궁 박해 중단은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시진핑 자신도 정치적 안정을 위해 일정 부분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그는 재임 기간 내내 파룬궁 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비판과 인권단체들의 집중적인 압박 속에 불안정한 국정 운영을 이어가야 했다.
특히 최근 국제 사회에서는 파룬궁 수련자의 강제 장기적출 문제와 수련자들에 대한 극심한 인권 탄압 사례가 잇달아 폭로되며, 중공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거세졌고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러한 정황은 시진핑에게 큰 부담이 됐고, 그는 인권 문제와 체제 안정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난제 속에서 깊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총체적으로 권력의 덫에 걸린 지도자
시진핑이 이토록 깊은 불안과 고민 속에 빠지게 된 근본 원인은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하려 한 권력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됐다고 여겨 진다. 정적 제거, 여론 통제, 감시 체제, 임기 연장, 외교 강경책 등은 모두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낼 수 있었지만, 그 모든 조치는 결국 시진핑 자신을 겨누는 부메랑이 됐다.
진실을 말해줄 사람은 제거됐고, 감시 체제는 그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으며, 선전은 현실을 왜곡시켰고, 종신 집권은 퇴로마저 차단했다.
그는 누구보다 강한 권력을 손에 넣었지만, 누구보다 고립되고 불안한 지도자가 됐다. 이는 한 사람의 개인적 비극을 넘어, 권력을 절대화한 정치 체제의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 시진핑이 겪고 있는 여섯 가지 고민은, 결국 그가 스스로 선택한 ‘절대 권력의 길’이 만들어낸 정치적 자가당착의 결말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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