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인터뷰] 양심 및 보편적 가치 전달···“이야기꾼으로서, 더 바랄 게 없습니다”

피바디상(賞) 수상자 캐나다 감독 레온 리

2025년 06월 12일 오후 7:52

“감독은 마치 창조주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창조주가 우주 만물을 창조했듯, 감독은 영화 속 모든 인물을 만들어내죠. 그럼 제가 만든 인물들에게 저는 과연 창조주처럼 자비로웠을까요?”

제5회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SLIFF)를 맞아 중국계 캐나다 감독 레온 리(Leon Lee)가 두 편의 작품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예정돼 있던 상영이 잇따른 취소로 무산되면서, 영화제 참가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리 감독은 다큐멘터리 ‘언사일런스드(Unsilenced)’와 신작 ‘마인드 웨이브(Mind Wave)’를 상영할 계획이었지만, 한국의 영화관 두 곳이 갑작스럽게 대관을 취소하면서 공식 상영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 가운데 ‘마인드 웨이브’만 서울 은평구의 한 교회에서 제한적으로 상영됐다.

레온 리 감독은 중국의 인권 문제, 특히 강제 장기적출과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다룬 작품으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의 대표작인 ‘휴먼 하비스트(Human Harvest)’는 중국 내 장기적출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로, 제74회 미국 피버디 어워즈(Peabody Award)와 2015년 국제방송협회(AIB) 국제조사다큐멘터리상(International Investigate Documentary) 등 세계적 권위의 상을 수상했다. 2018년에는 ‘마싼자에서 온 편지(Letter from Masanjia)’를 북미 최대 다큐영화제 핫 독스(Hot Docs)에서 처음 공개하며 이후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심사위원상을 휩쓸었다. 이번 영화제에 출품된 ‘언사일런스드’ 역시 지난해 미국 오스틴영화제(AFF)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이 영화제는 미국 아카데미가 인정하는 ‘오스카 예선 영화제(Oscar Qualifying Film Festivals)’로, 시나리오 중심의 권위 있는 행사다.

리 감독은 2016년 ‘캐나다 이민자 톱25’로 선정돼 캐나다 정부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에포크타임스는 레온 리 감독을 만나 감독이 된 계기와 그동안 걸어온 길, 이번 영화 상영이 취소된 데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어떻게 영화감독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영화를 보면 마치 다른 세계,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들었고, 또 다른 사람의 삶과 내면으로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죠. 그런 깊은 감동, 시야가 확장되는 느낌은 정말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 부모님께서 작은 DV 캠코더를 하나 사주셨습니다. 저는 그걸로 이것저것 촬영하곤 했어요. 당시엔 편집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따로 DV 캡처 카드를 사서 컴퓨터에 설치해야 했고, 하드웨어가 있어야만 편집이 가능했죠. 소프트웨어도 아주 조잡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저는 큰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어른이 된 후, 영화는 저에게 더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영화라는 예술은 사람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만큼 사회적 책임도 동반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래서 저는 영화에 대한 애정과, 이 예술이 지닌 사회적 기능을 결합해 보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관심을 두고 있는 사회적 이슈가 많고, 하고 싶은 말도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전하려는 말을 꼭 누군가가 듣고 싶어 하는 건 아니잖아요. 특히 많은 언론이 여러 이익에 의해 영향을 받고 통제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또 바쁜 삶에 치여 자기 일 챙기기도 벅찬데, 제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진심이 담긴, 감동적인, 때로는 하늘과 땅을 울릴 만큼 강렬한 이야기들을 영화로 담아내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많은 사회적 이슈 중에서, 왜 중국 인권 문제를 주요한 창작 주제로 선택하셨나요?

“창작자마다 각자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후 유학을 계기로 해외에 머물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에서 일어나는 인권 상황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급속한 경제 발전을 통해 이제는 거의 모든 국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었고, 이는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중국의 인권 문제는 더 이상 중국 내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 공산당은 다양한 목소리가 퍼지는 것을 막고, 국민들이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 상업적 이익이나 다른 수단들을 동원해 외국의 기업, 정치인, 언론, 심지어 학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침투하려 합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국민들에게 중국의 인권 문제는 곧 양심과 도덕의 선택 문제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문제에서 중국 공산당에 굴복해 양심과 정의에 어긋나는 일을 하게 된다면, 다른 문제에서도 쉽게 타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중국에서 벌어지는 인권 문제는 이미 전 세계 각국의 정부, 기관, 그리고 시민들 앞에 놓인 하나의 ‘양심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야말로 우리가 깊이 있게 주목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이번에 한국에 단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하러 온 것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많은 것을 체감했습니다. (리 감독이 이번 락스퍼영화제를 위해 가져온 4편의 영화 중 ‘마인드 웨이브’ 한 편만 서울 은평구의 한 교회에서 상영됐다.) 많은 한국 관객은 ‘굳이 이 영화를 보고 싶진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당신이 그 영화를 보고 싶든 보고 싶지 않든,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 때문에 이미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에서조차 한국인이 영화 한 편을 보려면 외국 정부의 ‘허락’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 자체가 바로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중국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동시에 자기 나라 정부가 이러한 양심의 선택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과 같은 무거운 주제가 일반적으로는 상업성과 거리가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대중의 흥미를 얻기 위한 고민도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많은 영화 장르 중에서도 스릴러, 공포, 로맨스 등의 장르는 오랫동안 인기를 끌면서 상업성을 인정받아 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바쁜 하루를 마친 뒤 집에 돌아와 영화를 즐기면서 쉬고 싶고, ‘공부나 해볼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영화의 오락성은 상업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을 다룬 영화도 이야기를 잘 만든다면 충분히 상업성이 있습니다. 물론 액션이나 공포 영화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얻긴 어렵겠지만,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라면 기꺼이 시간을 내어 보려고 합니다. 인권 영화도 관객의 감정과 진심으로 연결된다면 시장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권 문제는 어느 나라에서 벌어졌든 인간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에 대한 갈망, 억압 속에서 살아가려는 의지, 양심과 이익 사이에서의 선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락스퍼국제영화제에서 북한인이 한국으로 탈출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봤습니다. 북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감정적 연결도 없었지만, 영하 30도가 넘는 혹한 속에서 주인공이 어머니와 함께 도망치는 장면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넌 가라’고 말하고, 아들은 ‘어머니가 여기서 죽으면 나도 같이 죽겠다’고 말하는 순간, 국적이나 문화, 언어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누구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권을 다룬 영화도 보편적인 감정과 가치를 담아내고, 그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다면, 충분히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고 시장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실제로 제작하실 때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셨나요?

“첫 번째는 영화 주제를 선택할 때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도대체 어떤 점이 나를 감동시켰는가?’ 감독은 가장 먼저 이 이야기를 듣는 첫 번째 관객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다 듣고도 아무런 감동도 못 받았다면, 그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저를 감동시킨 그 원인을 꼭 기억해 둬야 합니다. 왜냐하면,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촬영과 편집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느 순간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처음에 나를 감동시킨 건 무엇이었지? 왜 나를 감동시켰지?’ 이 두 가지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저를 정말 감동시킨 것은 단순한 동정심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깊은 원인을 끌어내야 하고, 사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관객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이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까?’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영화는 아주 넓고 심오한 예술 형식이고, 표현 방식도 다양합니다. 다큐멘터리로 찍을 수도 있고, 극영화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극영화라면 실사 영화도 있고, 애니메이션도 있습니다. 실사영화 안에도 다양한 스타일이 있고, 애니메이션도 어떤 종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제가 몇 년 전에 만든 중국 고아에 관한 영화 ‘래그돌(Rag Doll)’은 부모가 양심범으로 체포되거나 박해로 인해 사망하면서 아이들이 집을 잃고, 동시에 사회적 차별까지 겪는 현실을 다룬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저는 스톱모션 형식으로, 인형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아이가 고통받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마싼쟈에서 온 편지’의 경우, 만약 이 영화를 극영화로 만들었다면, 관객들은 ‘이거 지어낸 이야기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언사일런스드’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면, 그 이야기 자체의 무거움 때문에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흥미가 부족했을 겁니다. 이렇게 주제에 따라 가장 적절한 형식과 예술적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저희는 만드는 영화에 맞는 최적의 표현 방식을 찾아왔습니다.”

촬영 과정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특별한 사건이나 경험이 있었나요?

“제가 만든 영화는 모두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들로, 심지어 어떤 이야기들은 ‘진실은 소설보다 더 기묘하다’는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때로는 실제 이야기가 허구보다 훨씬 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경우도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마싼쟈’는 2012년 오리건주에 사는 평범한 여성 줄리 키스(Julie Keith)가 슈퍼마켓인 케이 마트(Kmart)에서 할로윈 장식품을 구입하고, 2년 뒤에야 그 포장 상자를 열어보다가 우연히 장식품 안에 숨겨진 구조 요청 편지를 발견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편지는 놀랍게도 파룬궁 수련자 쑨이(孫毅)가 8000킬로미터 떨어진 중국 선양 마싼쟈 노동교양소에서 비밀리에 보낸 것이었습니다. 편지는 중국 공산당의 어두운 노동교양소 제도를 폭로했습니다. 주인공 쑨이는 영화 개봉 직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병원에서는 그가 신부전으로 사망했다고 진단했습니다. 가족과 친지들이 부검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습니다. 저는 ‘마싼쟈에서 온 편지’를 통해 쑨이를 만났습니다. 쑨이는 오랜 고문의 고통을 겪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차분하고 평온하게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 내면의 평온함과 그가 들려준 이야기의 비참함과 놀라움은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촬영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으로 다른 인터뷰를 하러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야 했고, 우리는 급하게 거리에서 마지막 장면을 찍었습니다. 저는 장비를 가방에 넣고 공항으로 곧장 달려갔고, 그와 작별 인사를 나눌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차 안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는데, 그는 거리에서 짧은 셔츠를 입고 어깨가 약간 구부정한 모습으로, 평화로운 표정으로 저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차가 떠나자 그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가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제대로 몇 마디 말을 나눴을 텐데… 그 급하게 떠난 순간이 계속 제 머릿속에 맴돕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오랫동안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몇 달 동안 영화를 편집하면서 매일 컴퓨터를 켤 때마다 그가 제 앞에 나타나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영화 촬영 중 많은 세부 사항을 쑨이와 반복해서 확인했기에, 저는 메신저 앱인 시그널을 통해 그에게 자주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번은 편집 중에 습관적으로 시그널을 켜서 그에게 질문을 던지려다… 그 느낌은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저의 가장 큰 안타까움 중 하나는, 쑨이가 이 영화를 끝내 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한 번도 이 영화를 꼭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어요. ‘전 세계 최초로 상영할 때 꼭 그를 초대해서 보여주자’고요. 그 당시 우리는 그가 캐나다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도와주고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 그는 이 영화를 보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뭔가 예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인터뷰 때, 그렇게 강인하고 감옥에서 엄청난 고문을 당하면서도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던 그가 카메라 앞에서 목놓아 울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은 일생 동안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그가 어둠 속에서, 목숨을 걸고 그 편지를 쓴 목적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의 이야기는 이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서 상영되며 수많은 관객을 감동시켰고, 그의 정신은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을 겪었어도, 성취감이 없더라도 이 이야기들이 남았다는 것에 큰 위안을 느낍니다. 수년이 지나 우리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스크린에서 보고, 쑨이를 제가 만났던 그 모습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꾼으로서,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계속해서 마주하면서도 작품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좀 신기한 작은 이야기를 하나 공유하겠습니다. ‘언사일런스드’에 나오는 주인공은 마지막 순간에 형장으로 끌려가는 압박을 겪습니다. 그는 이미 비밀리에 총살당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만들면서 저는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음을 마주했을 때 어떤 상태일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저는 마치 서원하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장에 끌려가기 전날의 그 심정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힘이 저를 도왔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날 밤 잠들기 전에 갑자기 그 감정을 느꼈습니다. 억지로 침착하려는 긴장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두려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생각해야만 하는 마음 — 가족은 어떻게 될까, 총알이 몸에 박히는 순간은 어떤 느낌일까, 모든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 느낌을 깊이 체험했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이걸 정말 느꼈구나. 이건 정말 너무 괴로워. 어떤 힘이 이런 경험을 주었든, 제발 다시 가져가 줘.’ 그러자 한순간에 그 느낌이 멈췄습니다. 이 놀라운 경험은 저로 하여금 운명적으로 어떤 힘이 저를 돕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이 이야기들을 전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주인공들의 믿기 힘든 경험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들을 전하는 과정이 저에게는 한 단계의 승화입니다. 저는 이 주인공들에게 진심으로 감동받고, 그들로부터 배울 기회를 얻습니다. 제가 해외에서 겪는 어떤 압박도, 중국에서 정말 생사의 시험을 마주한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의 정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유지하는 그 마음가짐은 제가 영원히 본받을 수 있는 힘의 원천입니다. 게다가,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얻은 경험을 진심으로 털어놓을 때, 그것은 일종의 신뢰입니다. 저는 그 신뢰에 부응하고 싶습니다.”

작품을 제작하거나 주제를 탐사하는 과정에서 벽에 부딪히거나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으셨나요?

“창작을 하다가 막히는 곳은 상당 부분 창작자의 인생에 대한 이해에 의해 제약을 받습니다. 인생에 대한 이해는 많은 경우 경험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려는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엄청난 고난을 겪었고, 그 속에서 보여준 그들의 강인한 정신은 저의 경험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이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아낌없이 자신의 이야기와 심경을 들려주었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공감하며 충실히 전달하는 것입니다. 저의 관념이나 기술적 한계가 이야기의 진정한 감정을 전달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이야기 하나하나의 진정한 핵심을 사람들이 즐겨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어떤 예술 분야든, 기본기는 표현의 기초입니다. 따라서 정신적 측면을 표현하는 것이 우선이고 기술이 그다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기술은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어떤 예술 분야가 기술적 요구를 잃을 때, 그 예술 자체는 이미 타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창작을 제약하는 병목현상은 종종 기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감독으로서 활동하신 지 20년 가까이 되셨는데, 현재의 영화 산업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영화계가 사회적 책임을 충분히 다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영화 산업의 창작자들에게 큰 도전과 동시에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AI의 발전이든, 영화 촬영 및 제작 기술 자체의 발전이든, 이를 하루하루가 다르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AI를 활용해 특수 효과 장면을 구현하는 방법을 고민했지만, 이제는 AI가 많은 장면을 직접 생성할 수 있고, 그 사실감은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앞으로의 발전이 영화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마 누구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을 겁니다. 많은 이들이 느끼는 바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우리가 직면한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또한 영화는 상업성에 대한 고려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수상 여부와 상업적 흥행 성적입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루는 영화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합니다. 저는 더 많은 자금과 창작자들이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 제작에 투입되어, 영화라는 강력한 예술 형식이 더 많은 사회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회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젊은 감독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첫째, 감독은 이야기꾼으로서 스토리텔링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며, 이야기에 대해 높은 감수성을 가져야 합니다. 이야기꾼이 하는 일은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일입니다. ‘어떻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보고 싶게 만들고, 진정으로 관객을 감동시키면서도 스토리텔링 기법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인가’는 끝없이 배워야 하는 과제입니다. 둘째, 감독은 소통자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예술이 아니라 집단적 창작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협력자와 작품의 창작 의도를 명확히 공유할 수 있어야 하며, 감독은 배우, 촬영 감독, 미술 감독, 음악 감독, 편집자 등 모든 이들과 협업해야 합니다. 셋째, 감독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사회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고, 인생이라는 큰 무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에 대해 경외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각 삶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느끼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창작한 작품이 사람들을 진정으로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렌즈를 통해 당신이 본 세상을 반영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영화 예술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예술입니다. 할수록 인생에 대한 이해가 매우 얕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항상 이런 말을 믿습니다. 사람의 품성, 재능, 그리고 경험이 그 사람의 예술적 높이를 결정합니다. 재능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품성과 경험은 노력으로 쌓을 수 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기술 추구와 자기 표현에 치중하지만, 저는 예술과 예술가들이 문명을 계승하고 도덕을 함양하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수양을 더욱 중시하고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용기 있게 감당한다면, 창작의 길은 점점 더 넓어질 것입니다.”

제5회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가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개막했다. 올해 영화제는 자유와 인권, 정의를 주제로, 보편적 가치를 영화로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 영화제에는 캐나다 출신 감독들의 작품 5편이 초청돼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국내 영화관 두 곳이 잇따라 대관을 취소하면서 해당 작품들은 모두 상영되지 못했다. 상영이 무산된 작품 중에는 중국의 인권 문제를 다룬 레온 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언사일런스드’도 포함돼 있다.

이번에 영화 상영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락스퍼영화제의 주제는 인권을 중심으로 하며, 매우 주목할 만한 영화제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제의 주요 기획자인 허(은도) 감독과 접촉하면서, 그가 인권 사업에 매우 진심 어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굳건한 인내심을 갖추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영화제를 개최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인권 영화제는 그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번 사건(대관 취소)을 통해, 우리는 그가 직면한 압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후, 제가 이번에 가져온 두 편의 영화 상영이 모두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원래 상영이 예정되었던 극장이 한국 정부 관련 부처로부터 어떤 압력을 받은 것 같아 상영을 취소했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주최 측은 매우 노력하여 다른 극장을 찾았지만, 발표 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 극장은 일방적으로, 영화제 운영자나 영화제에 참가한 감독들에게 전혀 통보하지 않고, 저희 두 편의 영화를 포함해 중국 인권 문제를 다룬 모든 영화를 취소했습니다. 제가 아는 바에 따르면, 현재 중국 공산당이 직접적으로 간섭하거나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취소된 영화는 모두 중국 인권 문제를 다룬 것이기에, 합리적인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중국 공산당이 직접 압력을 가했거나, 한국 당국이 자체 검열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 일은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인권 영화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방해와 영향력 행사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한국과 같은 민주 국가에서 국민이 어떤 영화를 볼지를 외국 정부가 결정해야 합니까? 이는 한국과 같은 민주 국가에 대한 모욕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스스로 어떤 영화를 볼지 결정할 수 없다면, 국가의 존엄은 어디에 있으며, 민주주의와 자유의 신념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따라서 이는 단순히 영화제나 몇 편의 영화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모든 국민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할 문제입니다. 오늘 중국 공산당이 몇 편의 영화 상영을 막을 수 있다면, 내일은 일부 뉴스의 공개를 막고, 모레는 한국의 국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서 큰 문제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혹시 다른 나라에서도 상영이 취소된 적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해결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저희는 예전에 로스앤젤레스 영화제에서 영화 한 편을 상영한 적이 있습니다. 상영이 끝나고 극장을 나오자 영화제 책임자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며칠 전에 양복 차림의 중국인 두 명이 찾아와서는 자신들은 중국 영사관에서 왔다며 영화제에 어떤 중국 영화들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영화제 기획자는 매우 놀랐다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영화제를 운영해 왔지만, 영사관 관계자가 직접 찾아온 건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상영 예정이던 중국 관련 영화들을 그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고, 그들은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딱 한 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두 명의 데이비드에 관한 영화는 왜 없나요?’라고 말이죠. ‘두 명의 데이비드에 관한 영화’는 제 또 다른 다큐멘터리 ‘휴먼 하비스트’를 가리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데이비드 메이터스(David Matas)와 데이비드 킬고어 (David Kilgour)로, 중국 공산당의 장기 적출을 조사한 캐나다 출신의 선구자들입니다. 분명히 그들은 이 영화를 노리고 온 것이었습니다. 영화제 책임자는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건 캐나다 영화입니다.’ 그러자 영사관 직원 두 명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일어나 아무 말 없이 떠났습니다. 영화제 책임자는 말했습니다. ‘로비 밖에는 기자들이 가득했어요. 그때 저는 만약 그들이 저에게 계속 압력을 가하려고 한다면, 밖으로 뛰쳐나가 모든 기자에게 알리겠다고 생각했죠. (결국)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이건 단순히 기발한 답변이나 표현의 문제가 아닙니다. 두 영사관 직원이 영화제 책임자의 결단력을 본 것입니다. 때로 중국 공산당의 압력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괴롭힘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강하고 무섭게 보이지만, 실은 외강내약(外強內弱)입니다. 정말 강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영화 한 편 상영하는 것을 두려워할까요?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런 작은 일에도 허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만약 압력을 받은 사람이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한다면, ‘관심 가져줘서 고맙습니다. 여기는 한국이고, 한국인들은 스스로 무엇을 보고 안 볼지 결정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방해는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의 영화인들과 협업해, 중요한 사회 사건을 다룬 작품을 함께 만들 계획이 있으신가요?

“한국 영화계는 사실 전 세계에 모범을 보여왔습니다. 한국의 많은 영화가 매우 깊은 사회적 이슈들을 다뤄왔고, 이는 한국 영화인들의 용기와 사회적 책임감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에 외국 감독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모든 사회는 각자 직면한 문제가 있고, 때때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이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 역시 한국 영화계의 선배님들과 동료 분들께 많이 배우고, 교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매우 큰 영광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