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中 강제장기적출 고발한 다큐 ‘국유장기’…제5회 락스퍼영화제 개막 알려

2025년 05월 31일 오후 6:05

“그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장기, 그중에서도 두 눈을 적출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아직 살아 있는 채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 청년의 눈동자와 떨리는 눈꺼풀을 봤다는 전직 중국 군병원 의사의 증언이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국유장기’ 상영 도중, 객석 곳곳에서 나지막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 흐느끼는 소리를 내는 것조차 미안해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관람객들. 그 청년이 18세였다는 사실, 아직도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는 의사는 그 경험을 끝으로 군병원을 그만뒀지만 지금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듯 고백을 이어갔다.

5월 30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개막한 제5회 락스퍼국제인권영화제(SLiFF) 개막작 ‘국유장기(State Organs)’는 중국 공안에 끌려가 사라진 두 청년과, 그들을 되찾기 위해 20년간 싸워온 가족들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정권 차원의 강제 장기적출이란 조직적 범죄가 여전히 자행되고 있으며, 이를 은폐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국가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진실과 이를 알리려는 노력을 짓밟고 있는지 고발하는 이 작품은 캐나다의 중국계 감독 레이몬드 장이 연출했다.

국제사회에서 양심수로 간주되는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국 정부에 의해 불법 체포되고, 감금된 상태에서 장기를 강제로 적출당하고 있으며 이는 일종의 거대한 장기밀매 산업체를 이루고 있다는 의혹은 이미 국제사회에서도 공론화돼 왔다.

5월 30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제5회 락스퍼국제인권영화제가 열린 가운데 행사장 한편에 중국의 강제 장기적출을 고발한 국제 포스터 공모전 수상작들이 전시돼 있다. | 박경아 객원 기자

‘국유장기’는 이 같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미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중국 당국의 범죄 행위를 고발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뛰어넘어 2023년 리우 국제영화제 ‘최우수 음악상’, 2024년 인디페스트 영화제 ‘특별언급상’ 등 영화적 성취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개막 하루 전, 상영 예정이던 극장 측에서 돌연 상영 불가를 통보해 왔다. 일부 회차는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

서울시는 지난해까지 영화제에 지원금을 제공했지만 올해는 끊었고, 통일부와 외교부도 협조를 거부하거나 훼방에 나선 가운데, 민간 영화관에서도 “간판을 걸 수 없다”며 상영 거부를 통보한 것이다. 2021년 소규모 인권영화제로 시작해 5년 만에 국제영화제로 성장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권영화제가 ‘구박덩이’ 신세가 됐다.

한국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기관마저 움직일 수 있는 ‘검은 손길’이 영화의 상영을 막기 위해 공공·민간을 가리지 않고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국유장기’가 중국 인권에 초점 맞추고 있음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공공과 민간이 누구 눈치를 보느라 휘둘리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날 개막식 사회를 맡은 이익선 아나운서는 “이번 행사로 제가 좋아하는 (중국) 장가계는 더 이상 못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말이 주는 울림은 가볍지 않았다. 오랫동안 KBS 기상캐스터로 활동하며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그가 이렇게 용기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다.

용기 있는 이들은 많았다. KBS홀 1500석은 거의 만석을 이뤘다. 국내외 영화계 인사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대거 객석을 채웠다. 영화 시작 전 사회자는 “인권영화제지만 그래도 축제이니 즐겁게 보자”고 말했다.

5월 30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제5회 락스퍼영화제 개막작인 ‘국유장기’ 관람을 마친 관객들이 숙연한 분위기에서 출구로 향하고 있다. | 박경아 객원 기자

관객들도 박수와 환호로 영화제를 시작했지만, 곧이어 상영된 작품을 통해 전달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은 주인공들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그 속에서 움튼 작은 희망을 가슴에 담은 채 조용히 KBS홀을 빠져나왔다. 영화의 여운은 길고 깊었다.

경남 거제에서 영화제를 보기 위해 상경한 정경숙 씨는 “너무 아파서 많이 울었다”고 했고, 함께 온 남성 지인이 나보다 더 많이 울었다고 털어놨다.

개막식에 참석한 민경욱 전 국회의원은 “인륜에 반하는 이런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알지 못했다”며 “피해자 가족과 의사, 고문을 가한 공안 등 생생한 증언이 담긴 이 다큐멘터리는 인류 전체를 향한 증언”이라고 평가했다.

민경욱 전 국회의원이 5월 30일 오후 제5회 락스퍼국제인권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해 영화 관람 후 NTD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한기민/에포크타임스

민 전 의원의 말처럼, 이 다큐는 너무나 생생했다. 영화 속 전직 군 병원 의사는 “살아 있는 18세 청년에게서 안구를 추출하라는 지시를 들은 후 나를 바라보던 그 청년과 눈동자가 마주쳤다”고 증언했다. 청년이 직면했을 공포와 간절함에 객석은 침묵에 휩싸였고, 보도를 위해 냉정하게 영화를 보던 기자도 그 순간만큼은 관객과 하나가 됐다. 처음에는 손으로, 이내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끝까지 그 장면을 지켜봤다.

이번 락스퍼영화제 포스터는 중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애니메이션 작가 다슝이 그렸다. 소녀에 가까운 젊은 여성이 촬영용 카메라를 응시하는 옆모습이 담긴 그림이다. 개막식에 상영된 영화제 출품작 소개 영상에서 이 소녀가 비로소 객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어딘가를 응시하는 맑고 영민한 눈동자. 마치 그 군의관이 마주했던 18세 청년의 눈빛도 이리 영롱했을 것이다.

제5회 락스퍼인권영화제 개막식 행사의 하나로 상영한 수장작모음 영상 중 마지막 장면. 이번 영화제 포스터에 등장하는 여성이 객석으로 고개를 돌려 앞얼굴을 볼 수 있다. | 박경아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