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최대 승부처 펜실베이니아 대법원, 우편투표 자필기재 규정 유지 판결

강우찬
2024년 09월 21일 오후 6:29 업데이트: 2024년 09월 24일 오전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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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대선이 다가온 가운데,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대법원이 ‘우편투표 봉투 겉면에 기재 사항이 틀리거나 빠지면 무효표 처리해야 한다’는 선거 규정을 유지하도록 했다.
  • 앞서 지난 5월 흑인·여성단체 등 9개 시민단체는 이러한 규정이 주 헌법에서 보장한 평등한 선거 보장을 위반한다며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심법원(항소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 하지만 주 대법원은 권한 문제를 들어 2심 판결을 뒤집었다. 펜실베이니아는 이번 대선 초 경합주이며, 단 몇 만표로 승부가 갈릴 수 있다. 이번 판결은 약 1만~2만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대선 경합주 중에서도 가장 주요한 전장으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우편투표와 관련한 주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대법원은 4대 3 표결로 날짜가 잘못 기재된 우편투표지를 거부할 수 없다는 하급심 판결을 무효라고 결정했다. 주내 67개 카운티 선관위 중 일부만을 피고로 하고서도 주 전체에 적용되는 판결을 내린 점을 ‘권한 밖’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비록 원고들이 주 내무장관을 피고에 포함시켰지만, 그것만으로 법원이 사건을 판단할 권한이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한 공익에 중대한 사건 혹은 시급한 해결이 필요한 사안일 경우, 대법원이 하급심 사건을 넘겨받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한 ‘특별 관할권’ 사용도 거부했다.

원고들은 우편투표 봉투에 날짜(투표일자)를 잘못 적거나 빠뜨리더라도 유효표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오는 11월 대선 투표 기간 전까지 최종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대법원에 특별 관할권 발동을 요구했었다.

대선 초경합주 펜실베이니아…미국 대통령, 몇만 표 차 승부될 수도

이번 대선은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각 후보 지지세가 굳건해, 중도층 표심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으로 많은 선거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전통적인 경합주 중에서도 가장 많은 선거인단(19명)이 배정된 펜실베이니아를 핵심 승부처로 보는 이들이 많다.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펜실베이니아를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에서는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1% 포인트로 팽팽한 초접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12~16일 펜실베이니아 거주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해리스 48%, 트럼프 47%로 집계됐다. 여론조사 오차범위 ±3.6%포인트를 고려하면 사실상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수치다.

지난 10일 두 후보 간 첫 TV토론 이후 적잖은 미국 주류 매체들이 해리스 판정승을 선언했으나, 실제 표심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2020년 대선 당시,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조 바이든 후보가 345만8229표를 얻어 트럼프 후보(337만7674표)를 단 8만 655표로 따돌리고 선거인단(당시 20명)을 가져갔다. 지지율 격차는 1.17% 포인트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더 근소한 차이로 승부가 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유권자 단 몇만 명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가운데, 펜실베이니아에서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우편투표 규정을 놓고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쟁론이 이어지다가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됐다. 핵심은 이번 선거부터 적용되는 ‘우편투표 투표 일자 기재’ 규정이다.

펜실베이니아 체스터 카운티의선관위 사무실에 도착한 우편투표지. 2020.11.4 | AP/연합

흑인·여성단체 등 시민단체 “투표일자 자필 기입 규정 부당”

지난달 30일 주 항소법원은 “우편투표 봉투 겉면에 날짜를 기재해야 한다는 선거법 규정은 펜실베이니아 주 헌법 위반(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펜실베이니아 주 전체 67 카운티 중 2곳에서 투표 일자 기입 요건이 중지됐다.

펜실베이니아 주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이를 뒤집은 것이다. 전체 카운티 67곳 중 특정한 2곳만 선거 규정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고, 그렇다고 2곳을 기준으로 전체 카운티 선거 규정을 바꿀 수도 없다는 것이 이유다.

항소법원의 판결은 흑인 정치 역량 강화 프로젝트(Black Political Empowerment Project), 펜실베이니아 여성 유권자 연맹(League of Women Voters of Pennsylvania), 저소득층 주거 지원 단체인 피츠버그 연합(Pittsburgh United) 등 9개 시민단체의 소송에 따른 것이다.

좌파성향의 시민권 옹호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이들 9개 단체에 법적 도움을 제공했다(관련 페이지). ACLU는 미국 곳곳에서 정치적 올바름(PC)과 관련한 소송도 지원하고 있다. 미성년자 성전환을 법으로 금지한 아칸소주에서 미성년자 성전환을 허용하라는 소송도 제기한 바 있다.

이들 9개 단체는 우편투표 봉투에 투표 날짜를 잘못 기재했거나 기재하지 않았다고 무효표 처리하는 것은 “펜실베이니아 헌법에서 보장한 ‘자유롭고 평등한 선거를 보장한다’는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며 지난 5월 28일 알 슈미트 펜실베이니아 주무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은 주마다 선거제도가 조금씩 다르지만, 우편투표 시 봉투 겉면에 주소 외에도 이름(서명)과 투표 일자 등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정부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누구나 우편투표가 가능해진 2020년 대선 때는 약 2만1800표, 2022년 중간선거 때는 2만3700표가 기재사항 미흡으로 무효표 처리됐다.

또한 2023년 예비선거 때도 1만7천 표가 같은 이유로 집계에서 제외됐다. 이는 2023년 예비선거 전체 우편·부재자투표 59만7천 표의 약 2.8%에 해당한다.

미 펜실베이니아 우편투표 봉투의 투표 일자 기입란. 지난 4월 공개된 양식으로 연도 기입란에 앞 두 자리(’20’)가 인쇄됐다. 이번 11월 대선 때는 오기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네 자리(‘2024’)가 모두 인쇄된 양식이 사용된다. | 펜실베이니아 주정부

주정부, 봉투에 ‘2024’ 인쇄…무효표 최소화 노력

주무장관 알 슈미트는 이러한 무효표를 막기 위해 2024년 4월 예비선거 때 봉투 겉면 투표 일자 기입란에 연도 네 자리 ‘2024’ 중 앞 두 자리인 ’20’을 미리 인쇄한 형태의 봉투를 시범 사용했다. 유권자는 뒤의 두 자리 ’24’만 기입하면 되도록 한 것이다. 월일은 마저 기입해야 한다.

AP통신에 따르면 그 결과 올해 4월 무효표는 2023년 예비선거 대비 13.5% 감소하며 효과를 냈다. 그러나 여전히 뒤의 두 자리를 채우지 않은 투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주 선거관리 최고 책임자인 슈미트 주무장관은 올해 7월 한 번 더 우편투표 봉투를 개선했다. 이번에는 투표 일자 기입란의 연도 네 자리 ‘2024’를 모두 인쇄한 상태로 발행했다. 유권자들이 투표 일자 기재 시 월과 일만 각각 두 자리씩 기입하면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펜실베이니아 주정부에 따르면, 일부 유권자들은 투표 일자 기입란에 투표 일자 대신 자신의 생일을 기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4’를 미리 인쇄해 착오 발생을 원천 차단한 셈이다.

그럼에도 9개 시민단체들은 투표 일자를 직접 손으로 써 넣어야 한다는 규정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주 대법원까지 간 끝에 사실상 패소했다.

소송을 주도했던 미국자유시민연맹 펜실베이니아주 지부는 “투표 일자를 자필 기재하도록 한 규정 때문에 투표 자격을 갖춘 펜실베이니아주 유권자 수만 명이 자격이 없는 것으로 처리됐다”고 법원 결정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이번 판결을 대하는 민주당과 공화당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공화당 전국위원회 공동위원장인 마이클 와틀리, 라라 트럼프는 공동 성명을 통해 대법원 결정을 환영했다. “이번 판결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투표를 보호하고 상식적인 우편투표의 안전장치를 확보하며 유권자들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큰 승리”라고 밝혔다.

또한 성명에서는 “펜실베이니아주는 이번 선거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며 “대법원은 선거의 무결성을 위해 중대한 승리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이번 판결에 대한 요약문에서 우편투표 봉투에 투표 일자를 기입하도록 한 선거 규정은 “국가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날짜가 누락되거나 부정확하다고 해서 자격을 갖춘 펜실베이니아 주민의 투표권을 부정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