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美, 베이징 코앞에 ‘세계 최대 군수 허브’ 건설 추진

미국이 필리핀 수빅만(Subic Bay)에 세계 최대 규모의 군수 제조·저장 복합 단지를 건설하는 계획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군사 기지가 아니라, 탄약과 미사일 조립, 드론 무장화, 폭발물 전구체 생산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군수 허브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의지가 집약된 상징적 사업으로 평가된다.
수빅만은 과거 아시아 최대 미 해군 기지가 있던 곳으로, 수도 마닐라에서 약 90km 떨어져 있으며 남중국해와 인접해 있어 지리적 가치가 막대하다.
지난 7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Jr. 필리핀 대통령은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이 계획을 논의했다. 이후 마르코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수빅만 군수 허브 계획은 구체화 단계에 들어갔다”고 확인했다.
미국 의회 역시 국방 예산에 해당 프로젝트를 반영하며 국방부·국무부·국제개발금융공사(IDFC)에 타당성 조사를 지시했다. 이는 냉전 이후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최대 군사 투자이자, 양국 동맹 강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탄약·미사일·드론까지 아우르는 세계 최대 군수 허브
미국 하원은 “인도·태평양 지역 전방 배치 군수품 제조 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2026년까지 수빅 기지 건설 타당성 보고서를 작성하며, 니트로셀룰로오스·니트로글리세린 등 폭발물 전구체 생산까지 포함하는 대규모 청사진을 마련했다.
이번 허브는 ▲소·대구경 탄약 제조 ▲중·장거리 미사일 조립 ▲무인기 무장화 ▲폭발성 원료 생산 ▲대규모 저장 창고 구축 등을 포괄한다. 특히 1만9천~3만3천㎡ 규모의 냉장 보관 시설이 설치돼, 장기적 탄약 비축과 신속한 전력 공급이 가능해진다.
미 국방부는 “수빅만은 해상 교통로와 인접해 있어 동맹국 전력 보급과 재배치에 최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이미 필리핀 내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24~2025년 합동훈련 ‘발리카탄(Balikatan)’에서는 중거리 지대지 미사일 ‘타이푼(Typhon)’과 대함 미사일 ‘네메시스(NMESIS)’가 실제 운용되며 전개 준비에 들어갔다.
수빅만 허브가 가동되면 미·필 양국은 전시에도 신속하고 유연한 합동 대응 체계를 확보할 수 있고, 이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적 우위 확보 시도를 정면으로 차단할 강력한 억지력이 될 것이다.
필리핀 정부는 이번 프로젝트가 군사적 의미뿐 아니라 경제적 파급 효과도 크다고 강조한다. 길베르토 테오도로 Jr. 국방장관은 “200~300명의 전문 인력이 신규 고용되고, 자유무역지대와 연계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로 산업 발전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조선·항만업 중심이던 수빅만 경제특구는 최첨단 군수 산업 중심지로 탈바꿈하며, 필리핀은 ‘안보 허브’와 ‘군수 생산 거점’이라는 이중 지위를 얻게 될 전망이다.
중국 견제와 지역 전략 구도 변화
전문가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미국이 아시아에서 군수 생산 능력을 분산하는 첫 사례로 평가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군과 NATO의 군수 비축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미국은 본토와 일본·한국만으로는 아시아 전역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수빅만은 글로벌 군수망 재편과 분산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한다.
특히 수빅만은 중국과의 전략적 거리에서 의미가 크다. 중국 선전·타이베이와는 약 1100km, 상하이와는 1800km, 베이징과는 2800km 떨어져 있어 중국 중거리 미사일(IRBM) 사정권 안에 들어가지만, 이는 곧 미국이 위험을 감수하고 전진 배치를 선택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즉, 수빅만 허브는 “중국의 미사일 압박에 굴하지 않는 전진 기지”로 기능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이를 사실상 포위 전략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괌, 일본, 한국에 이어 필리핀까지 미국의 전초기지가 되면서, 중국은 남중국해·대만해협·동중국해 전역에서 3중 압박을 체감하게 된다.
이에 따라 중국은 인공섬 군사기지 강화, 해상로 통제, 대만 인근 무력 시위 등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이는 오히려 국제사회의 비판을 자초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필리핀 내부 논란과 외교적 함의
필리핀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은 “수빅만 무기 공장 건설은 단일 외국 세력에 의존하는 것으로, 주권 훼손 위험이 있다”고 반발했다. 일부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는 “필리핀이 미·중 충돌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며 어업·관광업 피해를 경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필리핀이 얻을 군사·경제적 이득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긴장을 고조시켜서는 안 된다”고 반발했으나, 이는 사실상 미국의 억지 전략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최근 수빅만에서 중국인 간첩 용의자들이 체포된 사건은 중국이 필리핀 내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군수 허브 건설 필요성을 더욱 뒷받침한다.
중국 견제와 인도·태평양 전략 구도의 전환점
수빅만 군수 허브는 단순한 기지 확장이 아니라,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본격적 재편을 의미한다. 완성되면 미국은 동남아에서 군수 생산·저장·재배치 기능을 갖춘 핵심 거점을 확보하게 되고, 필리핀은 단순한 군사 동맹국을 넘어 군수 생산 파트너로 격상된다.
이는 필리핀의 방위 자립도를 높이는 동시에, 동남아에서 ‘안보 허브’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이번 프로젝트는 중국의 패권 확대를 우려하는 주변국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ASEAN 국가 중 일부는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하지만, 군사적 팽창에는 불신이 크다. 수빅만 프로젝트는 이들에게 “미국과 협력하는 것이 안정과 안보를 보장하는 길”이라는 강력한 신호가 될 수 있다.
결국 수빅만 군수 허브는 미국과 동맹국에게 전략적 안정과 안보적 이익을 보장하는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본격 가동 시 수빅만은 다시 아시아 안보 지형의 중심 무대로 부상하며, 인도·태평양에서 미국 주도의 새로운 균형 질서를 이끌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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