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농촌진흥청은 제1회 청년농업인 영농 생활수기 공모전을 개최했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청년농업인이 공모전에 참가해 자신의 농촌 정착 과정의 경험을 나눴다. 총 78편 응모했으며 이 가운데 26편이 선발됐다.
다양한 이유로 농촌에 온 청년 26명의 이야기는 이후 책으로도 출판돼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청년층과 생생한 정보를 공유했다.
농촌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편견을 뒤로하고 농촌이 가진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에 주목, 농촌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청년들.
에포크타임스는 이들 청년 중 5명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봤다. 청년들은 “농촌은 청년들이 도전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새로운 세계”라고 입을 모았다.
“국제기구 러브콜받던 커리어우먼에서 여성 농업인으로…‘성공’ 기준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
이번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지영 씨는 화려한 이력의 보유자다. 중국 상해외국어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귀국해 대학원 과정까지 수료했다. 곧바로 국제회의 기획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밤낮없이 국제 콘퍼런스와 정부부처의 크고 작은 행사들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국제기구 인사 담당자에게 러브콜을 받기도 했던 그 시절 지영 씨의 미래는 누가 봐도 전형적인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러다 번아웃이 찾아왔다. 지영 씨는 “이 시대에 직장생활을 하는 내 또래라면 누구든지 예외가 없을 것”이라며 “‘과연 이렇게 도시에서 계속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밝혔다.
지영 씨는 사직서를 썼다. 그리고 당시 만나던 연인과 결혼하며 도시에서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충북 괴산으로 내려왔다. 귀농·귀촌을 경험해 본 것도, 시골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영 씨는 “(남편과) 삶에서 지향하는 바와 가치관이 일치한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괴산을 선택한 이유는 괴산이 가족들이 있는 서울과 지리적으로 멀지 않으면서도 유기농업군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적당한 빈집이 없어 직접 컨테이너를 개조한 농막으로 이사하며 지영 씨 부부의 귀농·귀촌 첫걸음이 시작됐다.
아무런 기반 없이 시작한 귀농·귀촌 첫 6개월 동안 지영 씨의 남편은 지역을 이해하고 고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 영농조합법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같은 기간 지영 씨는 같은 동네 이웃인 귀농 선배의 농사를 도우며 농사를 배웠다.
6개월이 지나 직장생활을 마친 지영 씨 남편은 곧바로 몸담았던 영농조합법인에 생산자로 가입, 지영 씨와 함께 본격적으로 농업을 시작했다. 지영 씨는 낮에는 남편과 함께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SNS로 귀농·귀촌의 일상을 글로 전하며 농장을 홍보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고객들에게 매달 농장의 소식을 뉴스레터로 제작해 문자로 발송하기도 했다. SNS를 본 요리책 작가, 요리 연구가, 좋은 재료를 쓰고자 하는 레스토랑 셰프 등이 지영 씨와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이들의 고객들이 지영 씨의 고객이 됐다.
귀농·귀촌 생활의 장점을 묻는 에포크타임스의 질문에 지영 씨는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생활을 빗대어 ‘쳇바퀴 같은 삶’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귀농·귀촌 생활은 이런 쳇바퀴 같은 삶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시간과 업무에 정해진 규칙이 없기 때문에 다채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장점이 다르게 생각하면 단점이 되기도 한다”고 짚었다. 어떤 일에 강제성이나 인프라 관련 접점이 부족한 환경이다 보니 본인 스스로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 지영 씨 역시 적극적인 SNS 활동을 통해 스스로 수익 방안을 창출했다. “SNS 소통을 통해 얻는 청년농업인과 농산물에 대한 도시의 소비자들의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피드백은 아무리 힘들어도 농업을 포기할 수 없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는 지영 씨다.
현재 지영 씨는 삼남매의 엄마다. 그사이 지영 씨 부부의 농장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귀농 첫해 800평으로 시작한 농사는 10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1만5000평 규모로 성장했다. 지영 씨 부부는 동료 청년 농부들과 모여 농업회사법인 (주)뭐하농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다. 남편과 함께 하는 농장일과는 별개로, 지영 씨는 또 다른 프로젝트 ‘허바닉’을 창농해 운영 중이다. 허브와 아로마테라피의 보완의학적 측면에 관한 지영 씨의 개인적인 학구열에 기초한 프로젝트다. 자녀들의 아토피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마음이 출발점이었다.
지영 씨에 따르면, 국내 허브 시장이 대부분 식용 측면에 집중된 반면 허바닉은 허브의 약리적인 작용을 중점으로 에센셜 오일의 원료가 되는 허브들을 파종, 식재하고 원물의 아로마를 연구한다. 지영 씨는 “이를 알아본 우리나라 1세대 천연화장품 브랜드의 제안으로 원료 공급 계약을 앞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영 씨는 특히 “여성 특유의 섬세함은 창농, 영농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농업인을 꿈꾸는 여성들을 독려했다. 그렇다면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대신 다른 일을 해서 먹고사는 것을 꿈꾸는 여성, 나아가 청년들에 대해서는 어떤 조언을 건넬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지영 씨는 “청년 귀촌의 유형 중 농촌 크리에이터가 증가하는 추세는 확실한 것 같다”며 “(나 역시 농업인이지만) 스마트팜을 농업의 미래로 내세우면서 청년 귀농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청년의 귀촌은 할 만하다고 본다. 땅도 돌려짓기를 하지 않으면 피폐해지듯이 농촌이라고 농사짓는 사람들만 있으면 안 된다. 농촌에도 다양한 생태계가 공존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이어 “기획자, 장사꾼, 사업가, 노동자, 디자이너, 개발자, 예술가 등 농촌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필요하다”며 “조언을 한다면 어떤 일을 하든지 농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면 훨씬 정착이 수월할 것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농촌은 말 그대로 농업사회인데, 기획이든 비즈니스든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협업할 수 있는 기회도 적고 적응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럼 혹 귀농·귀촌에 적합한 성향은 따로 있는 걸까. 지영 씨는 에포크타임스에 “농촌도 도시와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고, 정말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함께 긴밀하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라면서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이 귀농·귀촌에 좀 더 잘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귀농·귀촌은 해외 생활과 다름없다고 표현했다. 익숙한 장소, 문화, 사람들을 떠나야 한다는 점에서 똑같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맥락에서 완전히 낯선 곳으로 ‘왜’ 터전을 옮기는지 동기가 명확하지 않으면 귀농·귀촌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지영 씨는 “귀농·귀촌에 대한 ‘왜’ 부분이 명확하지 않아 자신만의 방법을 찾지 못해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반대로) 안정적으로 농촌에 정착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문제해결 방법과 기준이 확고하다”면서 “귀농·귀촌을 하는 이유에 대해 수차례 자문자답했을 때 스스로 납득이 간다면 그다음부터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감수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골 생활, 농촌에 대한 로망이 있다면 과감히 버리세요. 섣불리 귀농·귀촌을 결정하지 마세요. 이론적인 교육 말고 직접 농촌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아보세요. 귀농을 꿈꾼다면 농업도 비즈니스임을 기억하고 자기 경영에 대한 마인드와 지식을 조금이라도 갖추고 오세요. 귀촌을 꿈꾼다면 농촌에서 살아가고 싶은 삶의 방향을 잘 설정하고 그에 맞는 실질적인 정보들을 수집해 두세요. 사실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인간 본연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자연환경 속에서 살기 위해 귀농·귀촌을 했습니다. 지금 그렇게 살고 있기에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 않아도 저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