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농촌진흥청은 제1회 청년농업인 영농 생활수기 공모전을 개최했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청년농업인이 공모전에 참가해 자신의 농촌 정착 과정의 경험을 나눴다. 총 78편 응모했으며 이 가운데 26편이 선발됐다.
다양한 이유로 농촌에 온 청년 26명의 이야기는 이후 책으로도 출판돼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청년층에게 생생한 정보를 공유했다.
농촌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편견을 뒤로하고 농촌이 가진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에 주목, 농촌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청년들.
에포크타임스는 이들 청년 중 5명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봤다. 청년들은 “농촌은 청년들이 도전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새로운 세계”라고 입을 모았다.
“귀농 딱 1년만 빨랐어도…매출 3억 달해”
올해로 귀농 5년 차에 접어든 김기현 씨는 전북대학교 농생물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서울에서, 또 바다 건너 필리핀에서 근무 생활을 했다. 그러다 문득 ‘가장 잘하는 걸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기현 씨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과 ‘대학교에서 배운 농업지식’을 합쳐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내린 답은 귀농이었다. 기현 씨는 그 길로 전북 김제로 내려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렸다.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한 기현 씨지만 학교에서는 논에 들어가서 써레질하는 법, 모 심을 때 주의해야 하는 법 등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운 적 없었다. 많은 마을 주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 농사꾼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기현 씨는 “농사는 혼자 짓는 게 아니고 농부는 혼자 크는 게 아니다”며 “마을 어르신들이 나의 농사 스승님들”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에는 기현 씨 나름의 노하우도 있었다. 지역 주민들과 친해지기 위해 기현 씨는 마을 어르신들이 어려워하는 서류 처리 작업 등을 대신해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을 어르신들이 발 벗고 기현 씨의 농사를 도와주었다. 기현 씨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라는 말이 있는데, 시골에서는 ‘기브 앤 테이크 모어(Give and Take more)’다”라며 먼저 융화되기 위해 다가가는 만큼 더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다고 단언했다.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만큼이나 큰 도움이 됐던 것은 정부의 다양한 청년농업정책이다. 기현 씨는 영농정착 지원금, 농업 교육 및 컨설팅 등 청년 창업농 제도 등을 언급하며 “지금 청년 농업인들에게 이렇게 많은 지원 정책과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곳은 전 세계를 뒤져봐도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귀농·귀촌 생활이 잘 맞는다는 기현 씨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존재한다. 정부의 다양한 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함께 시골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또래 청년들이 아직까지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기현 씨는 “지역 소멸 문제는 내가 살고 있는 김제만의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보다 많은 청년이 시골에서의 슬로우 라이프를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정주 요건 개선,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농업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의 귀촌을 고려 중인 청년들을 향해 기현 씨는 “농산업의 전방산업, 후방산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식품가공, 농기계, 농산업시설, 디자인, 농업AI기술, 환경 등 다양한 분야들이 아직도 블루오션으로 존재한다. (직접) 시골에 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분명 무엇을 해야 할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 기현 씨는 농사 외에도 현재 동료 팀원 3명과 함께 농업의 부가가치를 활용한 가공, 체험, 유통 등 6차 산업을 실현할 스마트팜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부터 진행한 ‘RPG 게임형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 그 예다. 같은 해 토마토를 이용한 스무디 시제품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기현 씨는 자신의 귀농이 딱 1년만 빨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고백한다. 농사가 재미도 있으며, 재미뿐만 아니라 돈이 되는 일이기에 “이렇게 재미있고 돈 되는 농업을 왜 더 빨리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기준 기현 씨는 3억 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렸다. 농사를 시작한 첫해에 생활비밖에 못 버는 정도였던 수준을 생각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농사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긴 해도 도시에 살 때보다 수입은 늘었고 생활비는 적게 들기 때문에 돈을 두 배로 버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기현 씨다. 그런 기현 씨에게 에포크타임스는 “귀농·귀촌을 꿈꾸는 청년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기현 씨는 대답했다.
“귀농·귀촌의 삶은 마냥 편하게 쉴 수 있는 휴양지나 도피처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멀리서 보기에는 풍요롭고 여유롭겠지만, 우아한 백조가 물 밑에서 발을 계속 움직이는 것처럼 대부분이 나름대로 이 시골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문득 눈앞을 봤을 때 펼쳐지는 풍경, 피부를 감싸고 불어오는 바람에서 잠깐의 여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시골의 삶은 여유롭지만 또 치열하다’ 이 말이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마음’이 여유로운 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