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농촌진흥청은 제1회 청년농업인 영농 생활수기 공모전을 개최했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청년농업인이 공모전에 참가해 자신의 농촌 정착 과정의 경험을 나눴다. 총 78편 응모했으며 이 가운데 26편이 선발됐다.
다양한 이유로 농촌에 온 청년 26명의 이야기는 이후 책으로도 출판돼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청년층과 생생한 정보를 공유했다.
농촌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편견을 뒤로하고 농촌이 가진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에 주목, 농촌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청년들.
에포크타임스는 이들 청년 중 5명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봤다. 청년들은 “농촌은 청년들이 도전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새로운 세계”라고 입을 모았다.
“귀농·귀촌? ‘촌’의 특성 파악해야 실패하지 않아”
건축 관련 직장을 그만둔 뒤 3년 동안 수험 생활을 했던 하준식 씨는 지난 2022년 여름,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전북 임실에서 ‘청년 귀농장기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며 좌충우돌 촌생활을 시작했다. 심신이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쯤 문득 흙냄새가 그리웠고, 그저 ‘뭐라도 해보자’ 하는 생각에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준식 씨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
어떤 작물을 길러야 하는지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에서 귀농·귀촌에 뛰어들었다는 준식 씨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옛말에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있다”며 처음 농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왜?’라는 말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농업을 현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막 농사를 시작한 준식 씨를 만나면 늘 공통된 반응을 보였다. “왜?”라는 의아함이었다. 준식 씨는 “이때만 해도 농사가 쉽지 않아 겁주시려나 보다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많은 의미가 담긴 물음”이라고 회상했다.
준식 씨는 “(귀농·귀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부닥치는 문제는 바로 ‘촌’이라는 장소 그 자체”라고 짚었다. ‘촌’은 도시와는 생활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준식 씨는 “이른 새벽에 열고 초저녁에 닫는 상점이 태반이다. 가까운 병원이나 편의시설은 30~40분 나가야 한다. 그마저도 (하루 일과를 끝내고) 녹초가 된 몸으로 나가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문제를 극복한다 하더라도 두 번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이러한 ‘촌’에서 생활하는 문제다. 준식 씨는 “학교를 다니든 직장 생활을 하든 타인과의 마찰은 당연히 존재하는 문제다. 귀농·귀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며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학교는 졸업하면 되고, 직장도 이직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걸고 귀농·귀촌을 한 이들에게 다른 사람들과의 충돌은 더욱더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준식 씨는 “혼자서, 아니면 가족끼리 잘 살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어쩌면 평생을 살아갈 곳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준식 씨는 마침내 귀농·귀촌을 택했다.
“작물을 재배하면 이른 새벽에 일어나 농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지요. 간밤에 이상이 없었는지, 긴 밤을 잘 보냈는지 확인하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요. 광합성을 하기 시작한 잎의 초록빛이 반짝입니다. 초록의 싱싱한 잎들이 활동을 시작하면 농부의 작업도 같이 시작되고, 일에 몰두하면 어느새 해질 때가 됩니다. 석양을 받은 과일들이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비 오는 날 작업을 쉬게 되면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같이 일하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휴식을 취하고, 품앗이로 동네 하우스 일을 하다 얻어먹는 막걸리 한 잔에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요.”
귀농·귀촌 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들이 주는 힘과 자연에서 얻는 기운들은 무기력에 빠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던 준식 씨를 약 반년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때로는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는 직장 생활과는 달리, ‘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는 만큼 농사는 노력을 배신하지 않으리란 믿음이 생겼다는 준식 씨다. 준식 씨는 “최근에는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나 지원이 많고 귀농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모임도 많아 서로 ‘으쌰으쌰’ 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청년 귀농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준식 씨의 주변에는 제각기 다른 이력을 가지고 다양한 목적과 방식으로 농업에 뛰어든 청년이 많다. 기계 설비 관련 직종에 종사하다 농업의 자동화 설비에 관심을 가지고 귀농·귀촌한 동료부터 유기농 과일 소스라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농사를 시작한 친구들, 체험 프로그램 및 가공을 목적으로 농사를 준비하는 지인 등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똑같은 길을 걸어온 청년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만큼 농업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준식 씨는 “1차 산업인 농작물 생산만을 생각해 농업에 뛰어들었던 나를 일깨워 주신 분들이 많다”면서 “농업에는 어떤 문화적인 요소는 물론 다른 산업들과 융·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했다.
준식 씨 또한 작물 재배가 안정권에 진입한 뒤에는 자신이 느끼고 경험했던 부분을 활용해 단순히 체험하는 농장이 아닌,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의 농장을 구상할 계획이다. 자신이 농촌에서 직접 경험한 ‘치유의 힘’을 나누고 싶어서다. 실제 최근 농업이 가진 치유의 힘이 조명을 받는 추세다. 이에 준식 씨는 치유농업 관련 자격증을 준비하는 한편 국내외 다양한 사례를 공부하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 중이다. 물론 높아진 인건비나 자잿값 같은 진입장벽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농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준식 씨다.
하지만 귀농·귀촌에 실패하는 사례도 분명 존재한다. 이 같은 우려에 준식 씨는 “결국 필요한 건 철저한 준비”라며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일을 벌이거나 고집을 피워서 그르치는 분들을 많이 봤다. 실패한 분들도 처음에는 ‘난 아닐 거야’라는 똑같은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절함과 성실함은 귀농·귀촌의 기본 필수 요건”이라고 당부한 준식 씨는 자신의 경우 귀농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는 교육받았던 부지를 6개월간 임대해 작물 재배, 포장, 판매를 모두 직접 경험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준식 씨는 경남 밀양으로 터를 옮겨 스마트팜 교육을 이수하고 있다. “멋진 촌세계를 같이 만들어 봅시다”라고 권하고 싶다는 준식 씨에게 에포크타임스는 준식 씨가 지향하는 ‘멋진 촌세계’란 어떤 세계인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촌’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어떤가요? 뭔가 뒤떨어진 시골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미 팽창해 버린 도시보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죠. 요즘은 체험이나 관광으로 도시에서 촌으로 많은 이동이 있긴 하지만 단발성에 불과하고, 이들이 남기는 발자국이 오히려 상처가 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기에 도시에서 이제 막 ‘촌’으로 오는 젊은이들의 역할이 중요해요. 청년들이 중간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그러한 역할 외에도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기존의 병폐들을 바꿔나간다면, 촌이라는 곳이 막연히 기억 뒤편의 추억 속 장소가 아니라 현재의 멋진 곳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청년들! 도전하세요. 물론 실망하실 수도 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