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설은 허구로 진실을 말하는 언어다”
소설가 김규나 『소설로 읽는 세상』 출간

문학은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때로는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인간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창이 된다. 소설가 김규나는 “소설은 거짓을 늘어놓는 말이 아니라, 허구를 빌려 진실을 말하는 언어”라고 말한다.
최근 그는 2019년부터 2025년 7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칼럼 271편을 묶어 『소설로 읽는 세상』을 펴냈다. 현실과 문학을 넘나드는 글쓰기로 한국 사회를 해석한 결과물이다. 때로는 발언으로 논란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소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을 굳게 지킨다.
“소설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도구”
“소설을 쓴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거짓덩어리’라고 비웃습니다. 정치인들이 상대를 비난하며 흔히 ‘소설 쓰고 있네’라고 하지요. 하지만 거짓과 허구는 다릅니다. 거짓은 진실을 감추려는 것이고, 소설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허구를 빌리는 문학입니다.”
김 작가는 소설을 “인간의 척추를 곧게 세우는 힘”이라 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웠고, “좋은 소설은 결국 인과응보의 시각에서 쓰인다. 인간은 선하게 살고, 생명을 존중하며, 진실을 찾을 때 가장 평안하다”고 강조했다.
“오늘의 중국은 옌롄커의 『일광유년』 같다”
김 작가는 현재 중국을 소설에 빗대 달라는 질문에 곧바로 중국 소설가 옌롄커(閻連科)의 『일광유년(日光流年)』을 언급했다. 작품 속 산골 마을에는 원인 모를 전염병이 돌아 누구도 마흔을 넘기지 못한다. 이 마을의 한 후보자는 ‘완치를 보장한다’는 공약으로 촌장에 당선되지만, 곧 절대적 복종을 요구한다.
주민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땅을 파고, 심지어 피부가 벗겨지며, 여성들은 매춘까지 강요당한다. 그러나 병은 낫지 않았고, 남은 것은 굶주림과 질병뿐이었다. 촌장은 이 같은 참상을 외면한 채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며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 작가는 “세상을 바꾸겠다던 권력이 어떻게 지옥을 불러오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평하며, “진정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자유를 지키려는 개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톈안먼 사태와 홍콩 민주화운동에서 중국인들이 보여준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중국, 한국의 거울”
‘중국’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는 시인 베이다오(北島)의 시 「회답(回答)」을 인용했다.
“네 발밑에 천 명이 쓰러져 있다 해도, 나는 기꺼이 천한 번째 도전자가 되리라.”
그는 “중국인은 문화대혁명, 톈안먼, 홍콩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자유를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과 자유라는 두 단어는 아직 합쳐지지 못했다”며 신장(위구르), 티베트, 파룬궁 등에 대한 인권 침해를 지적했다.
이어 “한국 역시 중국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여행·유학생·부동산 문제에서 역차별 논란이 있고, 일부 정치인은 중국 공산당에 과도하게 고개를 숙인다”며 한국 사회가 겪는 혼란 속에서 중국을 거울처럼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소설가 김규나. | 한기민/에포크타임스
영화, 친구, 그리고 여행자들
김 작가는 현재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세 편의 작품을 언급했다.
- <국유장기>: 중국 당국이 저지른 강제 장기적출 범죄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
- <시대혁명>: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를 기록한 작품
- <창춘(영원한 봄)>: 2002년 중국 창춘에서 벌어진 파룬궁 진상 삽입 방송 사건을 다룬 애니메이션 다큐
그는 “이 영화들을 통해 인권 탄압과 자유 말살의 현실을 절감했다”며 “일부 작품은 외부 압력으로 상영이 막히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 중국은 어둡지만은 않다. 명동 거리 관광객들의 환한 얼굴, 지하철에서 본 중국 가족들의 설렘 가득한 표정, 페이스북을 통해 교류한 중국인 친구의 따뜻한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친구는 내 글을 번역해 중국에 소개했고, 한국어로 내 소설을 읽는 게 꿈이라 했습니다. 그는 친절하고 진실했지만 체제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최근 무비자 제도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 입국이 늘고 있다. 그는 “여행은 문화를 배우는 기회”라며 “여행자 한 명 한 명이 민간 외교관이라는 마음으로 존중할 때 좋은 추억이 된다”고 했다. “무비자 확대는 한국의 ‘중국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미 불법체류 중국인이 6만 명을 넘었고, 사회적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한중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힘의 불균형으로 갈등이 많았고 체제와 이념의 차이도 큽니다. 과거 대국·속국 관계는 역사로 흘려보내야 하지만 여전히 고정관념이 남아 있습니다. 관광객 한 명 한 명에게 더 신중해야 합니다. 한국인은 외국인에게 친절합니다. 그 친절이 존중과 배려로 되돌아올 때 양국은 성숙한 관계를 쌓을 수 있습니다.”
“자유와 성장은 공짜가 아니다”
인터뷰는 한국 사회의 문제로 이어졌다. 지난해 SNS 글로 ‘5·18 특별법’ 위반 혐의로 구약식 명령을 선고받으며 “한국이 점점 자유를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젊은 세대에서 희망을 본다.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의미를 깨닫고 광장에 나온 용기는 큽니다.”
다만 그는 청년들에게 더 깊은 성찰을 당부했다. “몰려다니며 외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혼자 책을 읽고 사유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소설 속 갈등과 선택을 곱씹으며 ‘나는 누구인가, 자유로운 개인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때 비로소 자유로운 개인이 만들어지고, 사회도 성숙해집니다.”
김규나가 권하는 책 세 권
그는 독자에게 자유와 인간성을 성찰할 수 있는 고전을 권했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불의와 맞설 것인가, 타협할 것인가를 묻는다.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후대에 남겨야 할 유산은 물질이 아닌 성숙과 책임
-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절망 속에서도 앞으로 걸어야 하는 이유를 일깨운다.
“사람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자유와 성장은 오직 자신의 삶을 책임질 때 가능합니다. 인생에 공짜는 없습니다. ‘공짜’를 내세우는 체제 뒤에는 언제나 자유의 박탈이 숨어 있습니다.”
왜 지금 김규나인가
김규나는 ‘소설로 세상을 읽는’ 작가다. 그의 발언은 때로 논란을 불렀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그를 찾았다. 중국, 한국, 자유라는 무거운 단어들을 문학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단순하지만 분명하다.
“소설은 허구로 진실을 말합니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자유로운 개인입니다.”

김규나 작가 신간 『소설로 읽는 세상』 표지.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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