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을 기점으로 중국의 지원을 받는 글로벌 좌파와 미국이 이끄는 자유주의 세계 질서 사이의 이념적 갈등이 ‘내러티브 전쟁(서사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를 위해 권력을 사용해 온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전례 없는 공격을 받고 있으며, 그 공격은 물리적 폭력에서부터 소셜미디어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현지 시간) 글로벌 통계 조사 기업 스태티스티카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기습적으로 가자지구를 공격하기 위해 ‘캐스트 리드 작전’을 벌였던 지난 2008년에는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 수가 15억 명에 불과했다. 2023년 인터넷 사용자는 53억 명에 달한다. 여기에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모바일 기술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감안한다면 오늘날 내러티브 전쟁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격화하면서 이를 둘러싼 담론이 점점 더 커지는 추세다. 이 과정에서 양측 모두 소셜미디어 커뮤니티를 통해 각자 힘을 키우고 있다. 소셜미디어 장치들은 이전에는 국가적 검열 대상이었던 위험한 담론을 허용함으로써 갈등을 증폭시킨다.
중동 대테러 전문 컨설턴트 니샤칸트 오즈하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대응에 대한 글로벌 좌파의 입장을 두고 논쟁이 더욱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실제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좌파에 동조하는 여론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동조하는 여론 간 주전론(전쟁하기를 주장하는 의견이나 태도)의 장이 되고 있다.
좌파-이슬람의 전략적 동맹
전문가들은 에포크타임스에 온라인 내러티브 전쟁은 좌파와 이슬람 조직의 전략적 동맹을 의미한다고 귀띔했다.
사회주의해방당, 노동자세계당, 미국을 위한 민주사회주의자 단체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M) 등의 단체는 각각 성명을 내고 ‘저항’, ‘해방’을 내세워 하마스를 지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중동 분석가 겸 논평가 하미드 바흐라미는 “현대 지정학에서 팔레스타인 대의를 향한 좌파의 지지는 종종 반제국주의 내러티브로 프레임화된다. 이스라엘을 서구 제국주의의 연장선으로, 하마스와 여타 팔레스타인 정파를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저항 운동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인도 뉴델리에서는 이슬람 단체들이 주최한 반시온주의 시위가 열렸다.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하마스와 함께’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팔레스타인 지지 행진에 동참했다. 아울러 소셜미디어상에서는 ‘자유’라는 해시태그가 해당 시위 게시글에 함께 걸린 채 게재됐다.
그리스에서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럽 국가의 좌파 정당들은 친(親)팔레스타인 성명을 발표했다. 하마스의 공격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는 등 논조는 다양했으나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내용은 동일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 “이스라엘의 점령이 강화하면서 비롯된 팔레스타인의 무장 공격”이라는 목소리는 소셜미디어에서 더욱더 커지는 상황이다.
영국의 싱크탱크 전략대화연구소는 이달 11일부터 12일까지 24일 동안 X(옛 트위터)가 테러 콘텐츠를 미화하고 지지하는 128개 게시물을 분석했다. 게시물들의 누적 도달 범위는 1600만 회에 달했으며, 게시물 참여도는 220만~5000만 회에 이르렀다. 연구소에 따르면 개중에는 글로벌 좌파 플랫폼에서 조장된 폭력적인 콘텐츠도 포함돼 있었다. 연구진은 일부 콘텐츠의 경우 X에서 아무런 제재 조치를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중국, 좌파 지지
이런 가운데 중국은 하마스를 비판하지 않은 것은 물론, 소셜미디어에서도 반유대주의가 급증하는 상황을 방관하고 있다. 그간 행해 온 소셜미디어 검열 조치들과는 다른 행보다.
중국의 국영 매체들 또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미국의 중동 정책이 실패한 결과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미국이 져야 한다”고 수차례 보도하며 미국을 비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중동 정책을 바로잡아야 할 때라는 주장이다.
바흐라미는 에포크타임스에 “중국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목적으로 좌파의 반제국주의 담론을 지지하도록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중국을 가리켜 “기회주의적 침략자”라고 표현했다.
영국 런던대학교 아시아 및 아프리카 연구소의 버진 와그마르는 에포크타임스에 “글로벌 좌파의 반제국주의 내러티브에 대한 공산주의 중국의 지지는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고 했다.
와그마르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이스라엘은 미국의 원조로 중동 지역에 이식된 서구의 식민지 정착민 국가로 간주되고,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고귀한 투쟁으로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그뿐만 아니다. 중국 공산주의자들과 글로벌 좌파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싸운 아시아 및 아프리카 민족주의만이 유일한 민족주의라고 인정한다.
와그마르는 “중국 온라인상에서는 유대인이 글로벌 금융 위기나 전쟁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유포되고 있다”면서 “음모론적이고 좌파적이며 초국가주의적인 중국 사이버 공간 영역에서 이러한 내러티브가 폭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즈하 역시 “중국은 이스라엘에 책임을 전가하는 내러티브를 전파해 왔다”며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 대해 중국은 겉으로만 중립적인 이미지를 내세울 뿐,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 않다고 봤다.
공통점: 폭력
전문가들은 또 중국 주도로 좌파-이슬람 동맹의 위력이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바흐라미는 “(이들의) 공통점은 이데올로기,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라고 말했다.
문제는 좌파는 세속적 성격을 띠는 반면 대부분 이슬람 단체는 신정주의적 성격이기에 이러한 전략적 동맹은 모순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에 와그마르는 “글로벌 좌파와 이슬람주의자들 모두 전략적으로 폭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인 부분”이라며 “이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 차이 등 서로의 차이점을 묵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좌파는 국가 체제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폭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본다. 그런 좌파 입장에서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저지르는 테러 공격이 긍정적으로 여겨지곤 한다.
이런 가운데 오즈하는 “중국은 (좌파와 이슬람 사이)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중개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아마 중국은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테면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인 목적으로 중동 국가들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식이다. 오즈하는 “이번 전쟁으로 중동에 대한 중국의 개입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내러티브는 양측 모두에게 증오를 퍼뜨리고 정당성을 제공한다. 양측의 강경파 정부는 이러한 내러티브를 이용해 수많은 내부 문제로부터 주의를 돌리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황효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