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제멋대로인 중국산 줄자와 진시황의 도량형 통일

한동훈
2023년 10월 17일 오전 9:05 업데이트: 2023년 10월 17일 오후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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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으로 불리는 진나라의 시황제는 강력한 부국강병책을 추진해, 천하통일의 위업을 이뤄낸 인물로 평가된다.

오늘날 폭군으로 전해지기도 하지만, 그 위업은 천하통일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었던 문자(한자)를 통일했고, 지금의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치도(馳道)를 건설해 제국의 곳곳을 연결했다.

통일 이전(중국 전국시대)까지 삽 모양 지폐, 조개·옥·거북이 등껍질 등 제각각이었던 화폐도 통일했다. 동그란 모양에 사각형의 구멍이 뚤린 동전이 바로 진나라 때 만들어져 전국에 유통된 화폐다. 이 화폐는 각각 금과 동으로 만들어져 다양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진시황은 도량형도 통일했다. 또한 길이·부피·무게의 측정단위를 십진법으로 변경했다. 이에 그칠 뿐만 아니라 통일된 측정단위와 도량형이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기적인 검사를 진행했다.

동시에 관부(정부)의 책임하에 각종 도구를 개선하고 새로 제작해 전국적으로 보급·사용하도록 했다. 그중 하나가 수레바퀴의 폭을 통일한 거동궤(車同軌)다.

이 모든 업적은 그가 기원전 200년 전에 이룬 것이다. 이후 2000년 이상, 중국 문명의 발전과 백성들이 입은 혜택은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진시황이 최초의 천하통일을 이룬 폭군으로만 기억되는 것은 분명히 아쉬운 일이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2000년 전 진시황의 도량형 통일, 측정기준 정비와 비견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바로 서로 다른 줄자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분명히 같은 미터법 표준에 따른 줄자인데, 서로 다른 길이를 나타내는 줄자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시작 점은 똑같지만, 10cm 위치를 보면 서로 같은 것을 찾기가 어렵다. 한두 개가 어긋난 게 아니다 보니, 제대로 된 줄자가 어느 것인지조차 헷갈린다.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런 줄자는 단순히 불량제품이 아니라 치수를 속이기 위해 제작된 의도적 불량품이다. 건축현장에서 자재를 빼먹거나 규격에 맞지 않는 저가품을 사용하는 용도로 쓰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국의 지방당국은 이러한 비표준 계측기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한 단속을 벌이고 있으나, 수년째 완전하게 뿌리 뽑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시황릉 병마용 | MARTIN CHUTT/연합뉴스

진시황은 약 2200년 전에 도량형을 통일해 국가의 기틀을 세웠고 그 전통과 표준은 청나라 때까지 이어져왔으나 현대 중국이 들어서면서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에서 가장 국민 감시가 엄밀하고 통제가 강한 정권이 도량형 통일조차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이는 공산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이 품은 숙명이기도 하다. 애당초 공산주의는 서방에서 유래된 이질적 외래 사상이기 때문이다. 즉, 진시황의 후손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자손인 공산당 정권이 줄자 눈금을 정확히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가짜 줄자’를 만든 것은 정부가 아니라 악덕 업자들이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마저 속여서 이익을 취하는 풍토를 오늘날의 중국 사회와 무관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진시황은 법률제도를 정비하고 감찰체계를 만들어 사람들이 법에 근거해 생활하는 풍조를 확립했다. 또한 백성의 신앙심을 소중하게 여겨 재위 기간 천문대의 일종인 성대(星臺)를 제국 곳곳에 총 1424곳 건설했다.

당시 천문을 관찰하는 것은 신의 뜻을 헤아리고 공경심을 나타내는 행위였으며, 천문대 인근에는 신령에게 제사 지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공산주의 세력은 과거 수천 년의 중국 역사를 “낡아빠진 봉건 유물”로 깎아내리고 “신중국을 건설하겠다”며 문화혁명을 일으켜 문화유산을 파괴했다. 중국인의 신앙심도 ‘미신’으로 비난해 말살했다.

이제 중국 사회에는 ‘선한 일엔 선한 보답이, 악한 일엔 악한 보답이 따른다’는 소박한 믿음은 우스운 일이 됐고, 이익을 위해 가짜 상품을 거리낌 없이 제조하는 세태가 흔한 일이 됐다. 심지어 유아들이 먹는 분유까지 유독성 가짜 제품이 등장해 논란이 된 일도 있었다.

에포크타임스는 수천 년 역사의 문화대국인 중국·중국인과 100년 역사의 폭압적 정권인 중국 공산당을 구분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근거가 있는 견해다. 조선 정조 4년(1780년) 때 연암 박지원 선생이 청나라를 여행하며 감상한 것을 쓴 ‘열하일기’를 보면, 당시 청나라 사람들은 예의 바르고 친절했으며 법과 제도를 준수하는 성숙한 모습이었다.

사실, 오늘날 중국인 하면 떠올리게 되는 무례하고 시끄러운 인상은 사실 중국 공산당 치하에서 수십 년간 ‘개조’를 거친 후의 모습이다.

중국인들이 이러한 자신들의 전통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면, 코로나19를 포함해 전 세계에 가장 많은 혼란을 가져온 공산주의 중국 대신 중국 문명의 진정한 계승자인 새로운 국가가 들어설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눈금이 맞지 않는 줄자도 바로잡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