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10여 년 전 사석에서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며 정치 개혁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집권 후 정치 개혁은커녕 오히려 독재 정권을 강화하는 정치를 해 왔다.”
미국에 거주하는 우줘라이 전 중국예술연구원 과학연구소 부주임이 지난 19일(이하 현지 시간) 에포크타임스 중문판에 한 말이다.
중국예술연구원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문화관광부 산하 예술 연구기관으로, 우 전 부주임은 이 연구원 소속 ‘문화 이론과 비평’ 잡지사 사장을 지냈다.
우 전 부주임은 “10여 년 전, 시진핑이 사석에서 중국 공산당의 부패에 대해 비판했다는 말을 많은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진핑과 그의 가족은 중국 내 개혁파와 매우 사이좋게 지냈다”며 “시진핑은 정권을 잡으면 정치 개혁을 실행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우 전 부주임에 따르면 시진핑은 ‘6·4 톈안먼 사태’ 진상 규명도 약속했다.
“시진핑은 확고한 현실주의자”
에포크타임스 시사평론가 왕허는 “시진핑은 집권 전 정치 개혁 의사를 내비친 적 있다”면서도 “그는 당시 정권을 얻기 위해 이런 표현을 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지도자로 선출됐던 2012년, 중국의 정치 환경은 여러 파벌 간의 치열한 투쟁으로 인해 매우 혼잡했다.
당시 장쩌민 파벌이 국가 권력을 악용해 주도한 강제 장기적출 만행이 세간에 드러나자, 정치 개혁을 주장했던 원자바오 전 중국 공산당 국무원 총리는 이 일로 장쩌민 파벌을 압박하며 장쩌민 파벌의 대표 인물 저우융캉과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두고 대립각을 세웠다.
왕허는 “이런 배경에서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지도자로 선출됐다. 이는 공산당 내 여러 파벌이 타협한 결과”라며 “이 과정에서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당성(黨性)과 인간으로서의 본성이 시진핑의 집권 철학에 각각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왕허에 따르면 집권 초기 시진핑의 집권 철학에는 중국이 민주주의 체제로 발전할 수 있는 요소가 포함돼 있었다. 시진핑의 이런 집권 철학은 장쩌민 파벌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았다. 장쩌민 파벌은 이 사실을 발견하고 보시라이 전 다롄시장을 내세워 시진핑과 대립했다. 그러자 시진핑은 후진타오·원자바오 파벌과 손잡았으며 이후 장쩌민 파벌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나섰다.
일각에선 시진핑이 현실주의자라는 분석도 있다.
올 2월 출간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회고록에서 아베 전 총리는 “시진핑이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공산당 대신 민주당이나 공화당에 입당했을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고 적었다.
아베 전 총리는 “시진핑은 이념 때문에 공산당에 입당한 게 아니라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입당했다”며 “그는 확고한 현실주의자”라고 판단했다.
‘종신 집권’ 위해 극좌 전체주의로 돌아서
시진핑은 임기 첫 5년 동안 반부패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그 결과 중국 공산당 체제의 부패 본질이 완전히 드러났다.
외부에서는 시진핑이 반부패 운동에 이어 정치 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 달리 시진핑의 정치 행보는 2017년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 이후 극적으로 바뀌며 중국 공산당은 극좌 전체주의로 돌아섰다.
시진핑의 정치 철학이 급변한 이유에 대해 왕허는 “시진핑이 19차 당대회 전후로 장쩌민 파벌과 타협했다”며 “이는 중국 공산당 교육의 영향을 크게 받은 시진핑이 공산당 정권 유지 콤플렉스에 시달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마오쩌둥의 비서를 지낸 리루이의 딸 리난양도 지난 21일 에포크타임스 중문판과의 인터뷰에서 왕허의 분석에 동의했다.
그는 “시진핑은 ‘종신집권 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19차 당대회에서 헌법을 개정하려고 했다. 헌법 개정을 위해 당내 거물급 인사의 지지가 필요했던 그는 장쩌민 파벌과 거래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쩌민 파벌의 부정부패를 파헤치는 일을 중단하고, 장쩌민 파벌 인물을 중국 공산당 고위 관리로 발탁하는 등 두 가지 조건으로 시진핑은 장쩌민 파벌의 지지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집권 전 ‘전통문화 회복’도 약속했으나…
한편 우줘라이 전 부주임은 에포크타임스 중문판에 시진핑이 집권 전 중국 전통 문학, 예술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시진핑은 집권 전 전통문화 회복을 주장하는 인사들과 가까이 지냈으며 집권하면 전통문화를 회복하는 데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시진핑은 집권 초기 전통문화 행사에 여러 차례 참석했다.
그는 지난 2013년 11월 공자의 고향 취푸를 방문해 전통문화를 홍보했고, 2014년 9월에는 공자 탄생 256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세계 공자대회에 축사를 보냈다.
2017년에는 정관계 인사들에게 ‘머리 석 자(三尺) 위에 신령(神靈)이 있다’는 중국의 옛말을 언급하며 하늘을 공경하라고 강조했다.
우 전 부주임은 “중국 전통문화의 최고 경지는 조화(harmony·調和)지만, 공산주의 이념의 핵심은 투쟁”이라며 “시진핑은 집권 후 전통문화를 언급하는 동시에 투쟁을 강조해 왔다. 전통문화의 핵심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문화적 상징으로만 사용했기 때문에 이는 아무 소용없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