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탄압에 맞서다…홍콩 최전선에서 자유 위해 싸우는 ‘학생들’

얀 예켈렉(Jan Jekielek)
2023년 09월 18일 오후 5:44 업데이트: 2023년 09월 18일 오후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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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또래 친구들이 감옥에 있어요.”

14세 때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학생이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미국 에포크TV 시사 방송 ‘미국의 사상 리더들’에 홍콩 출신으로 미국에 온 제1호 망명자 프랜시스 후이가 출연, 홍콩의 이야기를 전했다.

프랜시스 후이는 14세 때 홍콩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인물로, 현재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이날 후이는 자신의 경험담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홍콩에서 나고 자란 후이는 스스로를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아이”라고 정의했다. 다만 어려서부터 홍콩이 중국의 다른 지역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후이는 “홍콩이 표현의 자유, 사법부의 독립, 법치를 가지고 있다고 배우면서 자랐다”고 말했다.

그러다 14세 때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결국 홍콩에 의해 추방당했다. 후이는 “홍콩에 머물다간 신변에 위협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2020년에 홍콩을 떠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프로그램 진행자 얀 예켈렉은 “권리를 위해 일어서는 14세 학생이 많지는 않은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후이는 “열살 때 1989년 천안문 학살에 대해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때까지 자신은 그저 중국인인 줄로만 알았다는 얘기였다.

후이는 “베이징 올림픽을 자랑스러워했고, 홍콩은 중국의 일부라고 생각했으며, 내가 본토 중국인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천안문 학살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열살의 후이는 탱크에 깔려 참혹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과 영상을 접했다. 희생자들 중에는 조국(중국)의 민주화를 꿈꾸던 학생들이 있었다.

후이는 “그래서 내가 홍콩에서 참가한 첫 시위는 (지금은 더 이상 열리고 있지 않은) 천안문 추모 행사였다”며 “같은 가치관을 가진 군중들에 둘러싸여 자유, 민주주의, 책임을 원한다는 구호를 함께 외치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후이는 홍콩에 살면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거리에서 시위할 수 있다는 게 큰 특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학생 신분의 후이가 제대로 참여한 첫 시위는 중국의 애국교육 반대 시위였다. 후이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은 애국교육을 통해 홍콩 사람들에게 북경어 사용 등을 강제한다. 천안문 학살이나 문화대혁명 같은 역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정확한 역사를 교육하는 대신 “중국은 좋은 나라이며 우리 모두가 거기 속해야 한다”고 세뇌한다.

후이는 “마치 믿어야 하는 종교와도 같다”고 표현했다.

이어 “(홍콩은) 2012년까지만 해도 상당한 수준의 자유를 가지고 있었고 정부에 프로그램을 중단하라고 압력을 가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이미 애국교육이 홍콩에 도입됐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졸업하려면 해당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예켈렉은 “처음 시위를 벌였을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후이는 “우리가 거리로 나갈 때마다 한편으로는 현실이 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행동이 변화를 일으킬 거라는 희망도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희망이 있기에 거리로 나가 목소리를 냈지만, 이윽고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렇게 2020년, 홍콩 국가안전법이 강제 시행됐다. 제대로 된 입법 절차나 여론 수렴 과정도 전혀 걸치지 않은 법이었다. 도입 첫날부터 중국공산당은 사람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후이는 “우리가 큰 위협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홍콩에서 운동을 주도했던 47명의 주요 인물이 이미 체포되고 난 뒤였다”라고 했다. 이들은 진실을 말하고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이유로 감옥에 끌려갔다.

이에 대해 예켈렉은 “홍콩은 경제면에서도,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곳 중 하나였다”며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느낀, 벽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싶은 변곡점 같은 게 있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후이는 “정부의 전략은 솥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끓이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후이에 따르면, 2019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상황을 바꿀 여지가 있다고 믿었다. 중국 정부를 상대로 홍콩 사람들이 저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실제로 홍콩 시민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가 싸웠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후이는 “그래서 당시에는 정말 희망적이었는데, (실은) 그전부터 정부가 홍콩 문화를 약화하는 계획 등 다양한 통합 계획을 세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일례로 2019년 이전에 홍콩에서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을 비판하는 서적을 판매한 서점 주인 5명이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 후이는 “무언가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여러 신호가 있었는데 2019년은 홍콩의 자유를 위한 마지막 싸움이었다”라고 전했다.

각계각층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전문직, 언론인, 학생, 기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했다. 사람들은 홍콩에서 자유가 사라지면 더 이상 홍콩이 아니게 될 거란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모두가 나서서 자유를 외쳤다.

예켈렉은 “흥미롭다고 느꼈던 점인데 상황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당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수많은 홍콩 사람이 실제로 그랬지만,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도 있었다. 본토의 방침을 원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되물었다.

후이는 “그분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 역시 중국공산당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탄압한 결과”라고 답했다.

기본적으로 중국공산당은 당의 가치관에 모두가 따라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강제로 따르게 한다는 입장이다.

“그분들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면서 자신들의 삶이 침해되지 않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데 그들의 사생활이 침해됐다고 느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이라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진행자 예켈렉은 “우리 프로그램은 중국어로 번역돼 홍콩과 중국에 배포된다. 감옥에 있는 친구들이나 홍콩에 계시는 분들께 전할 메시지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에포크TV ‘미국의 사상 리더들’

후이는 이렇게 답했다.

“같이 자란 친구들 대다수가 수감 중이거나 망명 중에 있어요. 또 많은 분들은 저처럼 망명하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에 남아 계시기로 했어요. 그들이 평생 있을 곳이고 삶을 바칠 곳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중국에서 홍콩으로 건너와 자신의 사업을 일군) 지미 라이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어요. 그는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신문을 펴내시다 감옥에 갔는데, 이렇게 말씀하셨죠. ‘나는 홍콩에 자유를 빚지고 있다’고요. 이전까지 가지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면서 ‘지금 갚는 중’이라고 하셨어요. 그는 홍콩을 벗어날 여러 방법이 있었지만 머물러 계시기로 했죠.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가 받은 모든 자유는 홍콩으로부터 온 거라고 생각하셨으니까요. 그래서 홍콩에 갚고 계시는 거예요. 그 말씀을 듣고 저는 ‘그래,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희생한 친구들로부터 온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들을 위해, 목소리 내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내는 건 제가 해야 할 의무예요. 망명 생활을 하면서 국제사회에 홍콩의 상황에 대해 계속해서 알리는 일이요. 자유를 위해 싸우고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많은 분이 감옥에 계세요. 언젠가 홍콩에서 재회하게 되기를, 서로를 보게 될 날이 오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요. 좋아하는 음식도 먹고, 노래도 부르고, 여느 10대나 젊은이들이 그렇듯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요.”

*황효정 기자가 이 영상기사의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