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중국, 남중국해서 갈등 고조…“언제든 전쟁 발발 우려”

정향매
2023년 08월 31일 오전 9:43 업데이트: 2023년 08월 31일 오후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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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에서 중국과 필리핀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양국 간 긴장 관계가 고조되면서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FR)가 8월 2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중국·필리핀 갈등에 연루된 필리핀 군함

FR에 따르면 중국과 필리핀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중심에는 필리핀 군함 ‘시에라 마드레(BRP Sierra Madre)’가 있다. 중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을 확대하려고 했다. 그러자 필리핀은 지난 1999년 스프래틀리 군도에 있는 세컨드 토마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 필리핀명 아융인)에 시에라 마드레를 고의로 좌초시켰다. 자국해병대원 12명을 상주시키며 시에라 마드레를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시에라 마드레로 인한 중국-필리핀 간의 갈등은 수십 년 지속됐지만 대부분 국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필리핀의 동맹국인 미국은 이 문제에 점점 더 개입하고 있다고 FR은 보도했다.

중국 문제 전문가 알렉산더 괴를라크(Alexander Görlach)는 FR에 이러한 갈등은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카네기 국제문제윤리위원회 선임연구원인 그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남중국해를 완전히 통제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국제법을 무시하고 때로는 필리핀 해안 경비대에 무력을 행사한다. 중국의 이런 행위는 미국의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토로서 가치 적으나 전략적 요충지 

스프래틀리 군도는 남중국해 중부에 있는 난하이제도 가운데 하나다. 중국 당국은 스프래틀리 군도를 포함한 난하이제도 전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 말레이시아, 베트남, 브루나이, 필리핀도 이 해역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는 지난 2016년 중국 당국의 주장을 기각했지만, 중국 당국은 지금까지 해당 판결을 무시하고 있다. 

중국과 필리핀 간의 분쟁은 섬 자체에 관한 건 아니다. 스프래틀리 군도는 사람이 거주하기 어려운 섬들로 구성돼 있으며 이 섬들은 대부분 무인도다. 그러나 이 해역에는 대량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으며 해조류·해면·바다거북·해삼 등 수산물도 풍부하다. 문제는 전 세계 컨테이너의 약 3분의 1이 남중국해를 통해 운송된다는 점이다. 

미국·독일도 남중국해 분쟁에 개입 

FR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미국은 약 1년 전부터 필리핀 군사 기지를 5개에서 9개로 늘렸다. 미국과 필리핀은 연합군사훈련도 점점 더 많이 실시하고 있다. 

괴를라크는 “미국은 아직 ‘레드 라인(금지선)’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면서도 공격 사태가 일어나면 미국은 반드시 동맹국인 필리핀을 지원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또 양국의 갈등은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중국 당국은 서태평양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대만이 자발적으로 중국에 합류하고 필리핀이 순순히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FR은 “독일도 오랫동안 이 분쟁의 한가운데 서 있다”며 “독일은 지금까지 필리핀에 무인정찰기 2대를 보내 분쟁 지역을 감시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안드레아스 파퍼노쉬케(Andreas Pfaffernoschke) 신임 주필리핀 독일 대사는 미국 CNN 방송에 “독일은 세계 무역에 의존하는 국가로서 남중국해를 비롯한 세계 각지 항해의 자유에 의존한다”며 “필리핀에 무인정찰기를 보낸 것은 독일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했다. 

중국, 물대포로 필리핀 선박 공격…한미일 “우려” 

앞서 지난 8월 5일, 중국 해경은 시에라 마드레에 보급품을 전달하려던 필리핀 해경선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했다. 미 국무부는 이튿날 성명을 내고 “중국은 물대포를 발사해 필리핀의 합법적 활동을 방해했다”면서 “이는 국제법 위반에 해당하며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일본, 호주, 프랑스, 캐나다, 유럽연합(EU), 독일은 필리핀 주재 자국 대사관을 통해 입장문을 내고 “우려”를 표명했다. 

주필리핀 한국대사관도 지난 9일 입장문을 통해 “해당 수역에서 긴장을 고조하는 행위를 우려하고 있다”며 “중요한 국제 해상교통로인 남중국해에서 유엔해양법협약(UNCLOS) 등 국제법 원칙에 근거한 항행·상공비행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평화와 안정, 규칙 기반 질서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매일경제는 “우리 정부가 남중국해의 제3국 간 갈등 사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특히 미국, 일본 등에 이어 우리 정부도 남중국해 안정을 해치는 중국을 비판하는 데에 같은 의견임을 명확히 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