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방첩기관인 국가안전부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포섭돼 간첩 활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중앙부처 간부 한 명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CIA 스파이를 적발했다고 발표한 것은 이달 들어 벌써 두 번째다.
지난 21일 중국 국가안전부는 정부 중앙부처 간부인 하오모(39)씨가 CIA의 스파이였다고 발표했다.
국가안전부는 “하오 씨가 일본 유학생 시절 CIA에 포섭됐고, 중국 정부에서 활동하며 기밀 등 민감한 정보를 미국 측에 넘겼다”고 주장했다.
국가안전부는 지난 11일에도 군수업체 직원 쩡모(52)씨의 간첩 사건을 공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중국의 CIA 스파이 주장은 현재 중국이 직면한 진짜 문제인 경기 침체에서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파이 조작 의혹
국가안전부는 중앙부처 간부가 어떤 방식으로 CIA에 포섭됐는지에 대한 세부 정보를 낱낱이 공개했다.
국가안전부에 따르면, 일본에 거주하던 하오 씨가 비자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주일 미국대사관 직원 ‘테드’와 접촉했고, 이후 테드로부터 선물 등을 제공받으며 친분을 쌓았다.
얼마 뒤 하오 씨는 테드의 대사관 동료인 리쥔을 소개받았다. 국가안전부는 “이때부터 이들이 ‘협력적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오 씨와 친밀한 사이가 된 리쥔은 자신이 CIA 요원이라는 사실을 밝혔고, 하오 씨에게 “중국으로 돌아가 정부의 핵심 부문에서 일하라”고 요구했다.
하오 씨는 이 제안에 동의했고, CIA 측의 테스트와 훈련을 받은 뒤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게 국가안전부의 주장이다.
호주 시드니 공과대학교 중국학자인 펑총이 교수는 “최근 중국 국가안전부가 간첩 활동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CIA 스파이 사건을 두 차례나 연달아 공개한 것은 일종의 선전 행위”라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 당국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간첩을 색출하고 체포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단순히 미디어에 퍼뜨릴 이야기를 만들어 국민을 속이려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것이 중국식 관료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주의 분산
시사 평론가 라이젠핑은 최근의 CIA 스파이 사건과 중국공산당이 직면한 정치적, 경제적 위기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청년 실업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중국 당국은 청년실업률 발표를 갑자기 중단했다.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의 6월 청년 실업률은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에버그란데) 그룹이 지난 17일 미국 뉴욕 맨해튼 파산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한 것도 위기감을 더하고 있다. 또 다른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도 디폴트 위기에 처해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가 더욱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 성장의 동력이었던 부동산 시장이 흔들림에 따라 중국 경제 전반에 빨간불이 켜질 것으로 보고 있다.
라이젠핑은 “현재 중국공산당은 붕괴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중국 경제가 흔들리는 데서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드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정보원의 존재는 중국공산당이 대중에 대한 이념적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명분으로 쓰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당국은 반간첩법 개정안을 시행하며 모든 국민이 간첩 색출 활동에 동참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반간첩법 개정안은 간첩행위의 범위를 ‘국가안보 및 이익과 관련된 모든 문서, 데이터, 자료 또는 물품’으로 크게 확대했다. ‘국가안보 및 이익’ 등의 포괄적이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함에 따라 임의적인 법 적용과 처벌이 가능해졌다.
이후 국가안전부는 중국 소셜 미디어 플랫폼인 위챗에 공식 계정을 개설해 “반간첩법은 모든 사회의 동원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리며 방첩 활동 확대를 예고한 바 있다.
*김연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