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톈안먼 사건 후 해외로 망명하여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오고 있는 저명 학자 옌자치(嚴家其)가 “시진핑 집권하의 중국은 민주화로 나아갈 가망이 없다”고 주장했다.
옌자치는 해외 중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정치 브레인’으로서 중국과학원 철학연구소 재직 시절 후야오방 (胡耀邦)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장에게 발탁되어 이론무허회(理論務虛會)에서 중국 공산당 간부 종신제 폐지를 주장하여 관철했다. 이후 중국사회과학원 정치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았다. 2014년 사망한 천이쯔(陳一咨) 전 국무원 경제체제개혁연구소 소장과 더불어 자오쯔양의 대표적인 측근이었다.
1986~1987년 자오쯔양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정치개혁판공실에 몸담아 중국 정치 체제 개혁에 참여했다.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민주중국진선(民主中國陣線) 초대 주석을 지냈다. 저서로 동양판 군주론으로 불리는 ‘수뇌론(首腦論)’, ‘문화대혁명 10년사’, ‘나의 사상자전(我的思想自傳)’ 등이 있다.
옌자치는 지난 5월 1일(현지 시간)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은 중국이 민주화로 진입하도록 추진할 능력이 없다”며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했다.
그는 “시진핑은 공산주의자이며 사회 경제 발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으로 전 세계에 발맞춰 시장 경제를 실행하며 부자들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시진핑은 부자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씩 제거하고 쫓아냈다. 부자들이 소비한 1000달러가 누군가에게는 그만큼의 수입이라는 점을 시진핑은 모른다”며 “이런 경제 개념조차 없는 사람은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옌자치는 “시진핑은 한 사람의 의지가 국가 전체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며 법률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 국가의 정치는 권력을 제한하고 헌법을 중시하며 국민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우주법, 국제법 입법 등은 정치 제도의 발전을 방증한다”며 “하지만 시진핑은 ‘중국 헌법’에서 ‘국가 주석과 부주석은 2번 이상 연임할 수 없다’는 내용을 삭제했다”고 말했다.
“시진핑의 모든 노력은 (국가 주석) 연임을 통해 ‘절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능한 사람 다수가 모여 함께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점을 그는 모르며 그렇게 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고 옌자치는 말했다.
‘시진핑이 중화민족의 부흥을 꿈꾸며 중국 공산당 일당 집권 체제를 보존하려고 한다’는 의견에 대해 옌자치는 “내가 본 시진핑은 그 자신만을 위한다. 장애인, 전과자를 포함해 모든 국민을 사랑하고 국가 발전을 희망하는 사람이 국가 원수 또는 총리를 맡아야 한다. 하지만 시진핑이 사랑하는 건 자신뿐”이라며 “시진핑은 중국의 정치 제도를 바꾸지 않고 독재 정권을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옌자치는 “시진핑은 미·중관계를 개선할 능력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중관계의 관건은 대만 문제다. 시진핑이 이 문제에서 선임자 후진타오(胡錦濤)의 전략을 이어가면 미·중관계는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은 중국이 민주화의 길로 진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후진타오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집권 당시 대만의 천수이볜 민진당 정권에 유화정책을 폈다.
‘중국 고위층이 중국의 민주화를 추진하는 것에 희망을 품느냐?’는 질문에 옌자치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옌자치는 “하지만 그들은 수중의 권력을 이용해 몇 가지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 귀국을 허락하는 것이다. 그는 올해 88세이며 64년 동안 해외에서 생활했다. 그는 티베트를 중국 땅으로 인정하며 독립을 주장한 적이 없다. 2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는 캐나다 국적 왕빙장(王炳章, 중국 민주화 운동 지도자),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공연합회 리척얀(李卓人) 전 주석, 홍콩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 등도 석방하고 (톈안먼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톈안먼의 어머니’들의 고통을 헤아려 주는 것 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그들이 앞으로 안전하게 권력을 내려놓는 데 유리하다. 그렇게 하고 안 하고는 그들의 선택에 달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