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기업 간부, 삼성·SK 하이닉스 공장 입구 어슬렁
퇴근하는 엔지니어들에게 접근해 ‘부수입’ 제시
기술유출 증명 어려워…유죄판결률 6% “대책 시급”
중국 공산당이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봉착하자 한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서 반도체 인재 빼내기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7일(현지시간) 중국 반도체 기업 간부가 한국 등지에 건너가 반도체 분야 엔지니어 헤드헌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반도체 공장 앞에서 어슬렁거리며 귀가하는 엔지니어들을 노리는 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간부는 FT에 “외국계 기업 반도체 공장 게이트에 가서 머물며 ‘우리 생산라인에 잠시 일해서 부수입을 올려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TSMC와 삼성,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웨이퍼 공장이나 외국계 장비 공급업체 사옥을 자주 찾는다”며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일정해 퇴근 후 우리 생산라인에 와서 근무할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중국 반도체 기업이 이처럼 한국 인력에 주목하는 것은 더 이상 미국에서 인력을 데려오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 공산당은 외국의 기술 인력을 매수하거나 산업 기밀을 빼내는 방식으로 자국 산업을 육성해왔으며, 반도체 분야에서는 주로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거나 미국 기업·연구소에 근무하는 중국계 혹은 중국인을 포섭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미국은 이에 자국의 반도체 생산장비와 기술에 대한 대중국 수출 규제 수위를 높여왔으며, 특히 지난 10월 가장 강력한 조치를 시행했다. 미국 국적이나 영주권 소유자가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 및 개발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이 조치가 미국 기업에서 근무하는 중국계나 중국인 엔지니어들의 약점을 찌른 것으로 평가된다. 한번 중국 기업을 도우면 다시 미국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대다수가 중국행을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파운드리(위탁생산) 업계의 한 헤드헌터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새로운 제재로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거나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그래서 대안으로 유럽·일본·한국에서 인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헤드헌팅용 페이퍼 컴퍼니도 설립한다. 한국 기업들은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퇴사 후 동종 업계의 외국 경쟁사 취업을 2년간 제한하고 있는데, 이를 우회하기 위해서다.
중국 기업들은 한국이나 대만에 반도체와 무관한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영입 대상을 먼저 이곳에 취업시키고 2년 후 중국 기업에 정식 채용할 때까지 두둑한 보수를 챙겨주기도 한다.
기술 빼내기의 대상은 반도체에만 그치지 않는다. 전기차 배터리, 디스플레이, 조선업도 중국 기업들의 인력 빼내기 리스트에 올라 있다. 최근에는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데 필요한 한국의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에 “목말라 있다”고 FT는 전했다.
중국 기업들이 한국 인력 빼내기가 모두 불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합법적인 채용 절차를 거치기도 한다. 그러나 특허 침해, 산업 스파이 행위, 절도, 편법 고용 등 불법 행위가 다수 포함된다는 점에서 상황이 심각하다. 중국 기업은 대리인일 뿐 중국 공산당이 ‘몸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국가 핵심기술 유출 사례가 올해 1분기에만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제조 분야에서 3건에 달했다. 국가 핵심기술 유출 신고는 2017년 3건이었던 2018년과 2019년 각 5건, 2020년 9건, 2021년 10건으로 증가 추세다.
우리 정부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국내 기업에 근무하는 반도체 엔지니어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이직과 출입국 이력을 기록하는 등 대처에 나섰다. 기술 유출을 단속하는 수사기관을 설립하고 신고를 쉽게 했으며 처벌도 강화하고 있다.
다만, 모든 사례를 단속하기는 쉽지 않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은 “기술 유출 사건이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처벌이 약하고 예방책도 부족하다”며 기술 유출을 증명하기 어려워 관련 사건의 국내 유죄 판결 비율이 6%에 그친다고 밝혔다고 F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