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 신임 주지사가 취임 수 시간 만에 10여 개의 행정조치에 서명했다.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버지니아를 ‘미국의 전통적 가치 회복’을 중심으로 통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15일(현지시각) 취임한 글렌 영킨(55) 버지니아 신임 주지사는 교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해제, 공립학교 ‘비판적 인종이론’ 교육 폐지 등 11개 행정조치를 단행했다.
여기에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공무원 백신 접종 의무화 조치를 차단하는 ‘주(州)정부 공무원 백신 의무 금지’도 포함됐다.
공화당 소속 영킨 주지사는 이날 주도(州都·주의 수도) 리치먼드의 주 의사당 앞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본거지”인 버지니아의 역사와 정신을 되새기며 “개인의 자유에 대한 깊고 지속적인 존중”과 함께 “공동의 전진”을 강조했다.
영킨 주지사가 “버지니아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할 것”이라며 “교실에서 정치를 없애고 (교육이라는) 본질에 다시 집중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취임식장에 모인 6천명의 군중은 큰 환호성을 터뜨렸다.
이번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의 최대 이슈는 공교육 회복이었다. 최근 수년간 버지니아에서는 학생들의 읽기 능력, 과학, 수학 학력이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비판적 인종이론’에 입각한 인종교육으로 교실이 정치화되면서 학부모들의 불만이 급증했다.
‘비판적 인종이론’은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에 입각한 이론이다. 비판 측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 구도를 백인과 유색인종으로 치환해 백인 아이들에게는 죄책감을, 유색인종 아이들에게는 백인에 대한 증오를 심는다고 지적한다.
반대 측에서는 이를 부인하지만 분명한 점은 ‘비판적 인종이론’ 도입 이후 그동안 미국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던 전통적 가치들이 교실 내에서부터 공격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직은 기초학문 학습에 집중해야 할 아이들에게 급진적 이념을 주입하는 데 대한 주민들의 경계심과 피로감은 작년 11월 2일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표심으로 나타났다. 2006년부터 민주당 강세 지역이었던 버지니아에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공화당 후보가 승리했다.
영킨 주지사는 경제 회복 전략도 제시했다. 그는 “사업하기 좋은 지역을 만들 것”이라며 민주당 정부 기간 늘어났던 규제를 철폐하고 취업교육을 강화해 집권 4년간 일자리 40만개를 창출하고 스타트업 1만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세금 인하를 약속하고, 공권력에 대한 지원도 확인했다. 그는 “주민들은 버지니아 역사상 가장 큰 세금 환급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최근 미국 전역에서 좌익단체들이 주도한 경찰 예산삭감 운동에 맞서 “예산을 완전하게 지원하고 공권력 존중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유권자들은 새로운 주지사 취임을 반기며 희망과 낙관적 전망을 나타냈다.
홍보 전문가로 일하는 셜리 그린은 무너진 공교육을 회복할 지도자가 출현했다며 영킨 주지사 취임을 반겼다.
취임식을 지켜보러 온 그린은 “정부 고위층에서 우리와 함께 (교육 시스템 재건을 위해 ) 기꺼이 싸워줄 누군가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흥분된다”며 “영킨 주(州) 행정부가 버지니아 주민들에게 열정을 가지고 있다. 약속을 꼭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DC 출신인 그린은 어려서부터 민주당 지지자였지만, 10여 년 전 보수주의자가 됐다고 했다. 그녀는 “민주당의 비전은 국민을 위한 봉사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취임식장을 찾은 한 주민은 “버지니아에 좋은 날”이라며 “자녀 교육은 주민들의 큰 관심사지만, 이전의 버지니아 행정부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중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을 조(Joe)라고만 밝힌 이 남성은 “버지니아 부모들은 공화당, 민주당, 무소속을 가리지 않고 자신과 주변, 회사 직원들까지 독려해 영킨에 투표했다”고 전했다.
영킨의 선거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버지니아 지역 대학 재학·졸업생인 에이든 시한, 앨리슨 버커 등 5명은 “선거운동을 하면서 주민들의 낙관적 기대감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람들은 일자리, 생활의 질, 정책이 새 주지사 취임을 계기로 달라지기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에 당선된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 흑인 윈섬 시어즈 신임 부지사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롱우드대 졸업생인 매튜 카펜터는 “부지사로 당선된 시어즈는 선거 기간에 피부색, 생활배경, 성정체성 같은 외부 요인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대신 자신의 쌓아온 업적들을 내세운 것이 효과를 봤다”며 “자신감과 실력”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 대해 일부 언론은 바이든-트럼프 대리전으로 보도했지만, 이는 선거 주요 쟁점을 흐리려는 민주당 측 프레임 전략도 일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됐다.
앞선 2016년 주지사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차별주의자라고 공격하며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는 전략으로 당선됐던 민주당 테리 매콜리프 후보는 2021년 재선에 도전하면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원사격을 받아가며 비슷한 전략으로 나왔다.
*이 기사는 테리 우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