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째 영업 중” 헤밍웨이가 사랑한 세계 최고(最古) 식당
보틴이 있는 원래 건물은 16세기 후반에 지어졌으며, 레스토랑은 18세기부터 운영됐다. | Travel-Fr/Shutterstock 스페인 마드리드의 유서 깊은 거리 쿠치예로스. 좁고 굽이진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붉은 벽돌의 고풍스러운 건물 하나가 발길을 붙잡는다. 외관은 여느 노포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곳의 문을 여는 순간 손님은 17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에 초대된다. 기네스북이 인정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소브리노 데 보틴(Sobrino de Botín)’이다. 이곳의 유서 깊은 다이닝 룸과 지하 와인 저장고는 왕족과 작가 그리고 화가와 배우들의 아지트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개업 이후 단 하루도 문을 닫지 않은 식당
보틴의 역사는 1725년에 프랑스인 장 보탱과 그의 아내가 ‘카사 보틴’이라는 이름으로 레스토랑을 만들며 시작됐다. 1753년 보탱이 아이 없이 사망하자, 조카인 칸디도 레미스가 물려받으면서 ‘보틴의 조카’라는 뜻의 ‘소브리노 데 보틴’으로 가게 이름을 바꿨다. 1930년대 곤잘레스 가문이 인수한 이후 현재 3대째 가업을 승계하며 운영 중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마요르 광장 근처에 있는 보틴 | photravel_ru/Shutterstock
식당은 문을 열고서 2025년 300주년을 맞는 동안 한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 1808년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공과 1930년대 스페인 내전, 그리고 최근 팬데믹의 파고 속에서도 말이다. 특히,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화강암 화덕은 온도 변화로 인해 균열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365일 내내 불을 지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 대표인 안토니오 곤잘레스는 스미소니언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이토록 오랫동안 불을 지켜왔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신들의 불꽃을 훔쳐온 것이다”라는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내놨다.
유럽 미식사와 궤를 같이하는 보틴의 요리
스페인의 정치적, 행정적 수도인 마드리드는 ‘유럽의 음식 수도’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보틴의 역사도 유럽 미식사와 궤를 같이한다. 1590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본래 플라사 마요르 인근의 여관으로 출발했다. 당시 법규에 따라 직접 음식을 파는 행위가 금지되었던 탓에 손님이 가져온 식재료를 요리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다, 18세기말 규제가 해제되면서 본격적인 레스토랑의 면모를 갖췄다.

300년 동안 불이 한 번도 꺼지지 않은 보틴의 장작 화덕은 지금도 식당의 대표 메뉴인 새끼 돼지 통구이를 굽는 데 사용되고 있다. | Andrea De la Parra/Shutterstock
보틴의 대표 메뉴는 단연 300년 된 화덕에서 정성껏 구워낸 새끼 돼지 구이로, 이곳을 찾는 미식가들의 필수 코스로 꼽힌다. 이 밖에도 양고기, 어린 뱀장어 요리, 마늘 소스 닭고기 등 전통 스페인 요리의 원형을 고수하고 있다.
하루 평균 800여 명의 손님이 방문하는 이곳의 비결은 엄격한 품질 관리와 숙련된 인력에 있다. 식재료는 가족 경영진과 주방 스태프, 그리고 수십 년간 이곳을 지켜온 베테랑 서버들의 까다로운 검수를 거친다. 10대에 입사해 은퇴할 때까지 평생을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많다는 점은 보틴이 지닌 또 다른 경쟁력이다.

식당 내부는 노출된 나무 들보, 소박한 벽, 그리고 앤티크 장식으로 꾸며져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 Kiev.Victor/Shutterstock
거장의 아지트에서 경험하는 문학적 성지 순례
수많은 이들이 미식만큼이나 역사적 경험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벽면에는 세기를 넘나드는 스페인 국왕들의 사인이 남겨져 있고, 내전 당시 군인들은 이곳에서 허기를 달랬다. 지하 저장고에는 접시를 깨뜨린 벌로 갇히게 된 불만 가득한 손님의 유령이 떠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찰턴 헤스턴, 프랭크 시나트라,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같은 수많은 스타가 이곳의 매력에 매료됐다.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는 화가가 되기 전 이곳에서 설거지를 했다는 흥미로운 일화도 전해진다.
하지만 보틴을 진정한 전설의 반열에 올린 것은 공간을 감도는 짙은 문학적 향취다.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마드리드에 머무는 동안 이곳을 마치 자신의 집처럼 드나들었으며, 그의 걸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대미를 장식할 무대로 주저 없이 이곳을 택했다.
“우리는 보틴의 2층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다. 우리는 새끼 돼지 구이를 먹고 리오하 알타 와인을 마셨다.”

보틴은 정통 카스티야 요리와 함께 스페인 와인을 제공한다 | chettarin/Shutterstock
소설의 주인공 제이크 반스가 담담하게 읊조린 이 짧은 문장 하나로, 보틴은 영어권 세계에서 단순한 식당을 넘어 하나의 ‘성지’가 됐다. 헤밍웨이가 이곳에서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길래, 작품에 등장시켜 역사에 남겼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헤밍웨이 외에도 트루먼 카포티, F. 스콧 피츠제럴드, 그레이엄 그린이 보틴의 테이블에 앉아 영감을 얻었다.
안토니오 곤살레스는 2017년 한 인터뷰에서 “보틴은 박물관이자 역사가 쓰인 장소”라며 “오랜 세월 축적된 변화가 이곳에 영혼을 불어넣었다”라고 강조했다. 역사가 켜켜이 쌓인 건축미부터 입 안을 가득 채우는 근사한 메뉴, 그리고 당대 거장들이 남긴 화려한 문학적 족보에 이르기까지. 보틴은 여느 레스토랑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영혼’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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