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지명에 엇갈린 정치권…대통령실 “탕평 인사” 해명 속 논란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9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들어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보수는 “배신”, 여권 내부선 “원칙 훼손” 지적도
대통령실은 “다양한 견해 통한 정책 조율” 강조
이혜훈 후보자는 비상계엄 옹호한 과거 발언 사과
이재명 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국민의힘 출신 이혜훈 전 의원이 지명되면서 정치권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대통령실은 “탕평·실용 인사”라고 설명했지만, 야권에서는 “배신” 논란이, 여권 내부에서는 “국정 원칙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이번 인사는 환율 상승과 경기 둔화 우려가 겹친 상황에서 재정 컨트롤타워 수장을 둘러싼 결정이라는 점에서 정치적·경제적 의미를 함께 지닌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통합을 겨냥한 인사라는 해석과 함께, 책임 분산 성격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통령실은 인사 배경으로 ‘다양성’을 강조했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정부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만 채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인사들이 격렬한 토론을 거치며 접점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오히려 새로운 정책과 합리적 해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의 반발은 거셌다. 국민의힘은 즉각 이혜훈 후보자의 제명을 결정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9일 전남 해남군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도 확장은 중도 확장대로 하되, 이렇게 당을 배신하고 당원에게 상처를 주는 인사들에게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보수의 가치를 확고히 재정립하지 못하고, 당성이 부족하거나 해당 행위를 하는 인사들에 대해 제대로 조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라며 “잠시 볕이 드는 곳이라고 해서 그동안 본인이 가졌던 소신과 가치를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다른 시각을 내놓았다. 이 대표는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배신자라고 손가락질 할 때가 아니다”라며 “보수 진영이 국민께 매력적인 비전과 담론을 제시해 희망을 드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 진영이 내부 동질성 강화만 외쳐 더는 외연 확장이 불가능해졌다”며 반성했다.
다만, 이준석 대표는 이혜훈 후보자를 향해 “이재명 정부의 선심성 재정 낭비를 막아내고 자신의 역할을 직접 증명해 보라”며 “대통령에게 아부하거나 정권에 부역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저도 가차 없는 비판을 퍼부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평가가 갈린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KBS ‘사사건건’에서 국정 원칙을 벗어난 인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이재명 대통령은) 통합과 실용을 인사 원칙으로 하겠다고 한 바 있다”며 “쥐만 잘 잡으면 되지 흑묘, 백묘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언주, 윤준병 등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계엄을 옹호하고 국헌문란에 찬동한 이들까지 통합의 대상이냐”,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세력’이라고 외쳤던 인물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것은 포용이 아닌 국정 원칙의 파기”라고 반발했다.
이러한 당내 우려에 관해서는 이 대통령도 언급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이혜훈 후보자 지명을 발표하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옹호한 이혜훈 전 의원의 과거 발언에 관해 “본인이 직접 충분히 소명해야 한다”며 “단절의 의사를 보다 명확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혜훈 후보자는 30일 12·3 비상계엄에 대해 선긋기를 했다. 그는 이날 서울 종로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에 출근하며 “당시는 제가 실체를 제대로 파악 못 하고 정당에 속해 정치하며 당파성에 매몰돼 사안의 본질과 국가 공동체가 처한 위기의 실체를 놓쳤다”며 “판단 부족이었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기획예산처 장관 직무에 관해서는 “이 정부의 제안을 받았을 때 결코 개인의 영예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저의 오판을 국정의 무게로 갚으라는 국민 명령이라 생각한다”고 수행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편 이번 ‘탕평’ 인사는 과거 발언과의 공개적 선긋기를 전제로 보수 진영 인사들의 현 정권 참여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정책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분산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과거 행위에 대한 법적·제도적 판단보다는, 현재 시점에서의 태도 변화와 노선 정리를 더 중시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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