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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이 무지치와 역사적 첫 무대… 구레츠키로 완성한 클래식

2025년 12월 03일 오후 10:46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 크레디아 뮤직앤아티스트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 크레디아 뮤직앤아티스트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 이 무지치와 함께하는 첫 무대

바로크, 고전, 현대음악까지…구레츠키 피아노 협주곡 한국 초연

한국 최고의 거장과 전설의 앙상블의 만남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실내악단 ‘이 무지치’가 4년 만에 내한해 거장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전국 투어에 나선다. 이 무지치는 2021년 소프라노 조수미와 함께 바로크 무대를 선보였던 적 있다. 백건우와 이 무지치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이 무지치는 1951년 창단되어 7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왔으며, 백건우는 1956년 데뷔 이후 70여 년 가까이 활동해 왔다. 이들은 긴 세월 동안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 왔으며, 다양한 레퍼토리와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발굴해 청중에게 소개해 왔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 무지치(I Musici), ‘사계’ 대중화

이 무지치(I Musici)는 이탈리아어로 ‘음악가들’이라는 뜻을 가진다. 1951년, 대부분이 로마 출신이자 명문 산타 체칠리아 국립 음악원을 졸업한 12명의 촉망받는 젊은 이탈리아 음악가들은 6개의 바이올린, 각각 2개의 비올라와 첼로, 더블베이스 1개와 하프시코드 1개로 구성된 챔버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그들은 기술적인 면과 음악적인 해석을 전원의 합의에 따라 결정하기 위해, 지휘자가 없는 형태의 앙상블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것은 당시로서 매우 파격적인 방법이었지만, 창단 직후 토스카니니의 찬사를 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들의 목표는 19세기와 20세기의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았던 18세기 이탈리아 음악의 방대한 유산을 소개하고 알리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이탈리아 바로크 실내악단 이 무지치(I Musici) | 크레디아 뮤직앤아티스트

오늘날 비발디의 사계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 무지치 덕분이다. 1955년~1959년 사이, 이 무지치가 필립스(Philips) 레이블로 전곡 녹음한 비발디 ‘사계’는 섬세한 연주와 균형 잡힌 음색으로 전 세계 청중에게 바로크 음악의 매력을 전하며, 오늘날 ‘사계’ 대중화의 초석이 됐다.

이 무지치는 알비노니, 코렐리, 제미니아니, 스카를라티 등 이탈리아 바로크 작곡가들의 작품을 재발견해 소개해 왔다. 이 무지치 특유의 깔끔하고 투명한 스트링 사운드는 바로크·고전 감성을 살린 연주에서 특히 깊은 인상을 준다. 물론 이들의 레퍼토리는 이탈리아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무지치의 모차르트 레코딩은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권위 있는 음악 음반상인 ‘그랑프리 뒤 디스크상’을 수상했으며, 멘델스존의 현을 위한 교향곡,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헨델의 합주 협주곡 등으로 호평받았다. 현대로 와서는, 니노 로타, 엔니오 모리코네, 류이치 사카모토 등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도 꾸준히 무대에 올렸다. 이들이 녹음한 약 100종에 달하는 음반 카탈로그는 이들의 폭넓은 레퍼토리를 보여준다.

한국 최고의 거장 백건우와의 만남

피아니스트 백건우도 역시 광범위한 음악 세계를 선보인다. 그는 11세에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국내 초연한 것을 비롯해 메시앙, 부조니, 리스트, 포레, 그라나도스 등의 한국에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처음 소개했다. 또한 “나는 어떤 작곡가의 작품을 시작하면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을 알고 싶다”라고 말한 바와 같이, 라벨 피아노 전곡,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전곡, 베토벤 소나타 전곡과 같은 전곡 연주 프로젝트를 통해 한 작곡가의 세계를 깊이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모차르트 앨범을 발표하는 등 80세를 앞둔 지금도 변함없이 음악적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백건우와 이 무지치는 이번 공연에서 새로운 곡을 소개한다. 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구레츠키의 피아노 협주곡 Op. 40을 한국 초연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제미니아니의 ‘라 폴리아’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K.414, 버르토크의 루마니아 민속 무곡, 쇼스타코비치의 다섯 개의 소품, 레스피기의 고풍스러운 춤곡과 아리아 모음곡 3번 등 바로크에서 고전, 20세기와 현대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로 구성된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구레츠키 (Henryk Mikołaj Góreck) | 퍼블릭 도메인

구레츠키의 피아노 협주곡 Op.40은 1980년 폴란드 라디오 음악 국장 안드제이 흐워페츠키(Andrzej Chłopecki)의 의뢰로 작곡됐다. 그는 동시대 폴란드 작곡가들을 소개하는 라디오 시리즈 ‘작곡가 포럼’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당시 구레츠키는 10여 년 동안 합창·성악 작품에 집중한 뒤 순수 기악 음악을 탐구하던 시기였다. 이 협주곡은 초연 당시 하프시코드로 연주됐으며, 후에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되어 연주되기 시작했다.

1악장은 하프시코드와 현악기가 거칠게 부딪히며, 오르간처럼 소리가 빽빽하게 쌓여 강렬하고 불길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악장은 열린 화음으로 마무리된다. 2악장은 보다 개방된 조성으로 시작하지만, 곧 거친 불협화음이 뒤덮는다. 이 악장은 에너지 넘치는 성격을 띠며 떠오르는 듯한 경쾌한 느낌을 자아낸다. 곡 전반에 걸쳐 일관된 음향, 단순한 선율, 제한된 화성, 지속적인 모터 리듬(기계처럼 끊임없이 반복되고 밀어붙이는 리듬) 등의 특징이 나타나며, 단순한 음악적 재료를 반복과 미세한 변화로 발전시키는 방식을 일컫는 축소주의적 스타일(reductionist)이 두드러진다. 피아노의 음색은 현악기의 화성과 어우러지고, 불협화음이 반복되는 리듬 구조 속 미묘한 변화를 주며 색채를 더한다. 구레츠키는 이 곡에서 폴란드의 민속성과 종교성, 단순한 구조를 결합한 ‘폴란드식 축소주의’를 구현한다.

구레츠키의 피아노 협주곡 Op.40은 그의 음악 세계가 실험적·현대적 스타일의 초기작품에서 축소주의로 전환하던 시기의 핵심 작품이자, 강렬한 음향과 독창적 구조로 현대 협주곡 레퍼토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탈리아와 한국을 대표하는 두 예술가가 함께하는 이번 무대는 도합 140여 년에 걸친 음악 여정을 확인하는 동시에, 스타일과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풍성한 연말을 선사할 것이다.

<백건우 & 이 무지치> 공연은 2025년 12월 17일(수) 오후 7시 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며, 전주, 대구, 부산, 천안, 창원에서의 투어공연도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