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이콘’에서 ‘침묵의 수도자’로 변신한 할리우드 배우
1958년 영화 '킹 크리올(King Creole)’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출연한 돌로레스 하트 | 영화스틸컷/ 파라마운트 픽처 할리우드의 화려한 조명과 수도원의 소박한 수녀복. 이 극단적인 대조의 중심에 돌로레스 하트가 있다. 시대의 아이콘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고독한 영성의 길을 택한 그녀의 삶은 언제 들어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19세에 거머쥔 ‘엘비스의 여인’ 타이틀
1957년, 19세의 신예 돌로레스 하트는 당대 최고의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의 신작 ‘러빙 유(Loving You)’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녀는 스크린에서 엘비스와 키스를 나눈 최초의 여배우라는 기록을 남기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배우의 길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훗날 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며 “수많은 지원자가 몰렸던 그날, 주님께서 왜 제게 그런 기회를 주셨는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후 하트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해변에서 생긴 일’,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등 5년 동안 9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몽고메리 클리프트, 워런 비티, 안소니 퀸 등 전설적인 배우와 어깨를 나란히 한 그녀 앞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진 듯했다. 사생활에서도 건축가 돈 로빈슨과 약혼하며 대중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영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촬영장에서 스케치를 살펴보는 돌로레스 하트와 마이클 커티즈 감독, 1961년. Pictorial Parade│Archive Photos/Getty Images
잊고 지낸 평온함을 다시 일깨운 여행
1959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에미상 후보에 오를 만큼 절정의 연기력을 뽐내던 하트는 역설적이게도 지독한 번아웃에 직면했다. 당시 친구의 권유로 코네티컷주의 ‘레지나 라우디스’ 수도원 찾았고, 그곳에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된 기분이었다”라며 평생 느껴보지 못한 평온함을 경험했다.
이후 몇 년 동안 하트는 여러 차례 수도원을 찾았고, 결국 수도원 입회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결심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건 아니었다. 불우한 어린 시절 가톨릭 학교를 다니며 내면을 다져왔고, 배우로 바쁘게 보내던 시기에도 매일 새벽 미사를 거르지 않을 만큼 그녀는 평생 독실한 신앙인으로 살았다. 그의 고민을 알게 된 원장 수녀는 먼저 할리우드로 돌아가 연기에 대한 미련을 모두 정리한 뒤 다시 생각해 보라고 조언했다. 하트는 다시 현업으로 복귀해 열정적으로 활동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수도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1963년 수도원에 들어간 해, MGM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돌로레스 하트의 초상│Public Domain
명예와 사랑을 모두 내려놓은 선택
1963년, 그녀는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수녀원을 선택했다. 세간의 충격은 상당했다. 전성기를 맞은 청춘스타가 세속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결정을 내리자, 소속사 관계자는 황금으로 도금된 면도기를 선물하며 “너는 곧 잊혀질 것이고, 네가 가진 아름다움은 쓸모없어질 것”이라며 독설을 내뱉었다. 면도기를 준 의미는 ‘네 가치는 예쁜 얼굴과 금발에 있는데 그걸 없애다니, 넌 이제 끝이다. 이 면도기로 네 머리나 밀어버려라’라는 부정적 의미가 담겼다. 제작자는 업계에서 영구 퇴출 시키겠다고 분노했다.
실제로 그녀는 수녀원에 들어간 후 긴 머리를 잘랐고, 거친 수녀복을 입었지만 역설적으로 그곳에서 더 행복해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나는 할리우드가 싫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에 떠난 것입니다”라고 담담히 밝혔다.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약혼자인 로빈슨과의 이별이었다. 결혼식을 불과 보름 앞둔 상황에서 연인의 선택을 마주한 그의 상실감은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평생 그녀를 향한 순애보를 지켰다. 로빈슨은 평생 독신으로 살며, 201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년 두 차례 수도원을 방문해 그녀의 곁을 지켰다.

2012년 2월 26일,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돌로레스 하트 수녀 | Ethan Miller/Getty Images
수녀원에서 시작한 제2의 인생, 그리고 현재
수도원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엄격한 규율과 공동생활은 화려한 스타의 삶과는 정반대였다. 하트 수녀는 입회 초기 생활 방식의 급격한 변화를 두고 “20층 건물에서 맨바닥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시련을 견뎌낸 그녀는 이후 교육 원장으로서, 그리고 예술적 재능을 신앙에 접목한 중재자로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녀의 선택은 모든 것이 자본과 성공으로 치환되는 현대적 감수성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녀가 HBO 다큐멘터리에서 웃으며 던진 한마디는 이 모든 삶의 궤적을 관통한다.
“하나님은 제 삶에 불쑥 찾아온 은총이었죠. 그리고 그분은 엘비스보다 훨씬 더 거대한 존재이셨습니다.”
여든을 넘긴 ‘마더 돌로레스’는 현재 수도원에서 교육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여전히 아카데미 시상식의 투표권을 가진 정회원이라는 사실이다. 그녀의 삶은 비록 은막을 떠났을지언정, 예술과 영성이 어떻게 한 인생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증인으로 남게 됐다.
*이혜영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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