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의 그늘…“프린스 그룹, 中 공작망의 자금줄이었다”

경제특구서 범죄단지로
중국 ‘일대일로’와 범죄경제의 결합
캄보디아에 기반을 둔 대형 기업집단 ‘프린스 그룹’이 중국 공안부(MPS)와 국가안전부(MSS)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미국 법무부가 이 그룹의 회장 천즈(陳志 38)를 인신매매·강제노동·암호화폐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하면서다.
캄보디아에 기반을 둔 대형 중국계 기업집단 ‘프린스 그룹(Prince Group)’이 중국 공안부(MPS)와 국가안전부(MSS)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정황이 미국 법무부 기소를 통해 드러났다.
미 법무부는 최근 프린스 그룹 회장 천즈(陳志·38)를 인신매매·강제노동·암호화폐 사기 등 중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기소장에는 천즈가 “공안부 관계자와 직접 소통하고, 국가안전부에 뇌물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으며, 프린스 그룹이 하루 평균 3천만 달러의 불법 수익을 거두고 암호화폐 형태로 150억 달러(약 21조 원) 이상의 범죄자금을 보유했다는 구체적 수치도 명시됐다.
68쪽 분량의 기소 문서에는 ‘MPS’가 6차례, ‘MSS’가 4차례 등장한다. 또 프린스 그룹이 캄보디아 전역에서 10여 개 이상의 구금시설을 운영하며 수백 명의 외국인을 감금하고 암호화폐 투자사기에 동원했다는 기록이 담겨 있다.
전직 중국 정보요원이라 밝힌 인물 ‘에릭(Eric)’은 소셜미디어 X에서 “프린스 그룹은 중국 공산당의 해외 공작망 자금줄 역할을 해왔으며, 통신사기와 강제노동으로 마련한 자금이 해외 첩보활동과 친중 세력 포섭에 사용됐다”고 폭로했다.
주요 외신 보도와 캄보디아 경찰 및 한국 외교부 발표 등에 따르면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7월 17일:
경북 예천 출신의 22살 대학생 A씨가 “캄보디아 박람회에 참가하겠다”며 출국했다. 이후 가족에게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왔다는 정황이 확인됐고, 연락이 끊겼다.
8월 8일:
A씨는 캄보디아 남부 깜폿주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지 검안 결과 “고문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이 심장마비를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이 나왔다.
9~10월:
정부는 캄보디아 당국과 공조 수사를 강화했다. 현지 스캠(온라인 사기) 센터에 억류됐던 한국인 수십 명이 송환됐으며, 경찰은 이들 일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정부는 “유인·감금·고수익 알선 구조가 실제 존재한다”고 확인했다.
10월 21일:
A씨의 유해가 발견 74일 만에 귀국했다. 부검 결과 전신 타박 흔적이 확인돼 강제노동·감금 가능성이 제기됐다.
10월 22~23일:
국가정보원은 국회에 “이번 사건 주범이 2023년 서울 대치동 ‘마약 음료 사건’ 관련 조직과 연계돼 있다”고 보고했다. 국내 마약·사기 조직과 캄보디아 범죄단지 간의 연계 고리가 드러난 것이다.
10월 10일:
우리 외교부는 캄보디아 대사를 초치해 스캠·유인범죄 대응 강화를 요구했다. 정부는 보코산·바벳·포이펫 등 위험지역에 대한 여행금지 조치를 강화했다.
프린스 그룹은 원래 중국 자본이 주도한 캄보디아 시아누크빌·깜폿 일대의 카지노·리조트 개발 사업에서 출발했다. 2010년대 중반,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투자를 계기로 도로·항만 등 인프라 건설이 급속히 진행되며, 이 지역은 “작은 마카오”로 불릴 정도로 카지노와 호텔이 밀집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관광객이 사라지고 중국의 해외 도박 단속이 강화되자, 이 시설들은 순식간에 온라인 투자·도박·암호화폐 사기 거점으로 변모했다. 카지노 객실은 모니터와 전화기가 빼곡한 ‘스캠 오피스’로 바뀌었고, 외국인을 속여 유인한 뒤 여권을 압수해 강제로 일하게 하는 ‘사이버 노예단지’로 운영됐다.
프린스 그룹은 이 구조의 대표적 사례로, 겉으로는 부동산·금융·전자상거래 기업을 내세웠지만 내부적으로는 인신매매·강제노동·사기를 결합한 복합 범죄체계를 가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법무부는 이를 “국가 지원형 네트워크의 가능성이 있는 조직”으로 평가했다.
일대일로가 만든 회색지대
중국의 일대일로 인프라 투자는 동남아 각국에 경제특구를 만들어냈지만, 이 과정에서 법과 제도의 공백이 발생했다.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등 일부 국가는 투자유치에 몰두한 나머지 외국 자본과 범죄자금 유입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 그 틈을 중국계 범죄조직이 파고들었다.
이들은 현지 권력층과 결탁해 카지노·리조트·공단 등을 자금세탁·인신매매·사기 산업의 기반으로 삼았다. 미 법무부 기소장에 명시된 중국 공안부와 국가안전부 연계 정황은 이러한 범죄 네트워크가 단순 민간 차원을 넘어 ‘국가적 지원 구조’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범죄 수사나 외교 현안에 그치지 않는다. 제도적 대응의 미비 역시 드러났다.
무엇보다 해외 취업 검증 체계의 부재가 뚜렷하다. 국내 구직 플랫폼과 유학원, 채용대행사들이 해외 일자리를 중계할 때 정부 차원의 인증 절차가 없어, 허위 구인광고가 사실상 방치돼 있다. 고용노동부와 외교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해외 채용 공고 인증제를 도입하고, 허위·의심 공고를 공유하는 정부 통합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대일로 투자에 대한 외교적 대응 공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캄보디아뿐 아니라 라오스, 미얀마 등에서도 유사한 ‘스캠 특구’가 확산되고 있지만, 한국의 대(對)아세안 ODA나 투자협력 정책은 이러한 위험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캄보디아 스캠 단지는 고수익 일자리를 미끼로 한국 청년들을 유인해 노동과 범죄행위에 동원했다. 일부는 피해자로, 일부는 자발적으로 가담한 정황이 섞여 있어 ‘피해자와 가담자의 경계가 모호한 신종 국제 범죄 구조’로 지목된다. 정부 관계자는 “피해자 구제와 함께 자발적 가담자 여부도 면밀히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외 허위 구인광고 차단 및 플랫폼 책임 강화 △아세안 각국과의 범죄정보 실시간 공유 △실종자 구조 핫라인 구축 등을 추진 중이다. 동시에 제3국 인프라 투자 시 안전성·투명성 검증 체계를 마련해, ‘경제특구형 범죄단지’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한 대학생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국제 개발과 범죄, 국가 정보기관의 결탁이 얽힌 글로벌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이번 사건은 ‘경제특구’ 이름으로 확장된 일대일로가 어떻게 ‘범죄 특구’로 변질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 청년들이 그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은 동남아에서 확장 중인 중국계 범죄경제를 국제사회가 공식적으로 기소한 첫 사례”라며 “한국 정부도 이를 단순 외교·치안 이슈가 아닌 경제안보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작권자 © 에포크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