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경제학자 “공산당 체제 하의 중국에선 시민사회 설립 불가”

경제학자 쉬청강(Xu Chenggang, 許成鋼)은 오늘날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시기로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농장에서 보낸 10년을 꼽는다.
그가 지냈던 농장은 중국 동북부, 옛 소련 국경에서 불과 20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다.
1976년 문화대혁명 종식 후, 쉬 교수는 칭화대학(清華大學), 런던정치경제대학(LSE), 하버드대, 그리고 현재 소속된 스탠퍼드대 중국경제·제도연구센터(Stanford Center on China’s Economy and Institutions)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연구와 교육 활동을 이어왔다.
쉬 교수는 농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평생 연구에 영향을 준 근본적인 통찰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중국공산당의 본질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최근 저서 ‘제도의 유전자(Institutional Genes): 중국 제도와 전체주의의 기원’에는 이러한 통찰이 담겨 있다.
그는 최근 에포크TV의 시사 프로그램 ‘미국의 사상 지도자들(American Thought Leaders)’과의 인터뷰에서 “중국공산당은 전체주의 정당이며, 그 체제의 본질이 바로 중국이 민주국가가 될 수 없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전체주의 권력은 국민의 자발적 조직화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런 자발적 조직화가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그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전체주의 체제는 어떤 독립적인 조직도 존재하게 두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책에서 배운 이론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내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쉬 교수는 당시 농촌으로 내려간 것은 강제적인 조치가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사회주의 체제하의 ‘하방(下放)’ 생활을 직접 경험하고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1967년 12월, 중국 동북부의 한 외딴 농장에 도착했다. 다른 학생들과 함께 지내는 대신 농민들과 생활하기로 결정했고, 소를 몰고 말을 먹이는 한편, 공산주의 서적을 읽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편지로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곧 그에게 화를 불러왔다. 3년 후 그는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혔고, 문화대혁명이 끝날 때까지 감시 속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 기간은 6년이나 지속됐다.
쉬 교수는 왜 자신이 그런 죄명을 받았는지 이유를 찾아야 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생각이 공산주의 이념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이유는 달랐다. 그는 “반혁명 단체를 조직했다”는 죄로 고발된 것이었다.
그는 그 혐의가 완전히 조작된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조사가 반복되면서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달았다.
“조사가 계속 반복되자,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구나. 이런 죄명으로는 내 목숨도 빼앗길 수 있겠구나’ 하는 사실을요.”
쉬 교수는 그때 비로소 ‘전체주의’의 본질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전체주의란 어떤 형태의 독립적 조직도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존재하도록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기원
쉬 교수는 “중국 공산당(CCP)은 정치 정당이 아니라 비밀스럽고 폭력적인 테러 조직”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공산당은 일반적인 의미의 정치 경쟁을 통해 구성원을 끌어들이지 않으며, 당원들도 자발적으로 입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정당(political party)’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쉬 교수는 공산당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그 모태가 된 조직, 즉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서 ‘제도의 유전자’에서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아노프, 즉 레닌은 볼셰비키를 창당할 때 ‘인민의 의지당(People’s Will)’이라는 비밀 정치조직의 원리를 그대로 모방했다”고 밝혔다.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이 중국에 지부를 세울 때, 이 ‘성공의 공식’을 그대로 재현하려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쉬 교수에 따르면, 당시 중국에는 ‘개로회(哥老會, Brotherhood Society)’로 알려진 비밀 정치결사체가 존재했으며, 이 조직이 훗날 중국 공산당의 초기 구성원과 군사조직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저서에서 “초기의 공산당 지도자들은 이러한 비밀결사를 ‘피압박 계층의 조직’으로 보고, 당원들에게 이들 조직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것을 촉구했다”고 적었다.
쉬 교수는 또한 전체주의 정당의 본질을 “자신의 이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다른 모든 사상을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는 체계”라고 규정했다.
그는 “진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것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전체주의의 핵심”이라며, “이념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과 ‘명분’을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제거함으로써 ‘대안적 사상’을 뿌리째 없애는 전통을 형성해 왔다. 공산당의 이념에 반하는 인물로 규정되면, 그들은 존재 자체를 허락받지 못한다.
쉬 교수는 “이러한 이유로, 당 내부에서도 의견의 불일치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숙청’은 이미 공산당의 체제 속에 고착된 하나의 작동 메커니즘이 된 것이다.
그는 “이런 구조 속에서 권력 투쟁은 곧 생존을 건 사투가 된다”며 “그래서 중국 공산당 내부의 정치 싸움이 그렇게 잔혹하고 비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7월 14일, 중국 상하이의 한 도매시장에서 한 고객이 과일을 구매하고 있다. | Hector Retamal/AFP via Getty Images/연합
시민사회 없는 경제 발전
쉬 교수는 “중국 공산당은 사상의 다양성을 금지하고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시민사회의 핵심 요소를 제거했다”며 “시민사회가 없는 나라는 결코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산당은 지난 수십 년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는 동안에도 사회에 대한 철저한 통제를 유지해 왔다.
쉬 교수는 “중국 공산당이 핵심 산업, 재산권, 기업가를 장악함으로써 진정한 사유재산 제도를 없애고 이를 통해 사회를 통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산당은 소위 ‘지휘고지(commanding heights, 레닌이 처음 사용한 용어)’ — 국가 전략상 핵심적인 산업 분야 — 에 해당하는 모든 부문을 통제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에너지, 통신, 금융 등이 포함되며, 이 분야는 모두 국유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주택 소유자가 집뿐 아니라 그 땅까지 함께 소유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토지의 소유권이 국가, 즉 ‘당-국가 체제’에 있다.
중국 국민이 아파트를 구입하더라도 소유하는 것은 건물뿐이며, 토지는 7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임차권 형태로만 제공된다.
2007년 제정된 법은 지방정부가 임차 기간 만료 시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구체적인 조건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아직 중국에서 민간 주택 소유 기간이 70년을 초과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실제 갱신 사례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 부문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쉬 교수는 “중국에는 진정한 의미의 민간 부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중국 헌법과 회사법에 따르면, 기업 내에 공산당원이 3명 이상 있으면 반드시 ‘당 조직(黨支部)’을 설치해야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중국 공산당은 법적 절차를 통해서가 아니라, 기업가들을 직접 통제함으로써 기업을 장악한다”며 “모든 기업가들은 당의 요구에 복종해야 하며, 그 어떤 명령도 거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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