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공산당원은 영예가 아닌 낙인” 중국인의 인식 전환

중국공산당이 내세우는 대표적 구호 중 하나는 “중국공산당은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올바른 당”이라는 문구다.
이 표현은 1951년 마오쩌둥이 초안을 작성한 ‘중공 중앙정치국 확대회의 결의 요점’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74년 동안 이른바 “위광정(偉光正)”은 중공의 선전 구호로 자리 잡으며 수없이 반복돼, 마치 절대적 진리처럼 포장됐다.
그러나 거짓은 아무리 되풀이해도 진실이 될 수 없다. 내부적으로는 인민을 기만할 수 있을지 몰라도, 외부 세계를 속이기는 어렵다.
최근 한 중국인의 해외 경험은 이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알고 보니 ‘공산당원’이라는 말은 부정적 의미였다”고 고백했다.
지난 9월 15일, 필자 장우보(張又普)는 외신 기고문에서 자신의 변화를 공개했다. 그는 자신을 “붉은 깃발 아래 태어나 신사회에서 성장한 세대”라고 소개하며, 과거에는 공산당 입당이 특별한 영예라고 믿었지만 결국 공산당원이라는 호칭이 국제사회에서는 오히려 ‘비하의 상징’임을 깨닫게 된 과정을 전했다.
교육부 강사의 발언에 충격… “눈이 휘둥그레졌다”
1982년, 장우보는 다롄 외국어학원에서 6개월간 진행된 해외 유학생 연수과정에 참여했다.
당시 ‘해외생활 상식’을 담당한 강사는 중국 교육부 소속 왕(王) 선생이었다. 왕 선생은 수업 중 학생들에게 “미국이나 일부 국가의 비자 신청서에는 ‘당신은 나치당원 또는 공산당원입니까?’라는 질문이 있다. 반드시 ‘아니다(No)’라고 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장우보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그가 오랫동안 ‘영광스럽다’고 믿어온 공산당원이라는 호칭이 해외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이다.
그는 당시의 충격을 이렇게 회상했다.
“정말 충격적이어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습니다.”
스즈키 사례, 장우보의 두 번째 충격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일본 쓰쿠바대학 컴퓨터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장우보는 당시 젊은 스즈키 교수를 알게 됐다.
일본 공산당 소속이었던 스즈키 교수는 1986년 미국에서 1년간 연수를 신청했지만, 미 대사관으로부터 비자를 거부당했다. 이유는 단 하나, “공산당원”이었기 때문이다.
장우보는 이를 통해 공산당원 신분이 실제로 미국 입국의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정부 추천을 받아 나보다 먼저 해외에 나간 사람들 대부분이 공산당원이었지만, 비자 신청서에는 당원 신분을 모두 숨겼다. 이는 출국 전 교육받은 결과였다”고 밝혔다. 즉, 중국 공산당의 해외 교육 과정에는 비자 신청 시 반드시 당원 신분을 감추고 거짓으로 통과하도록 가르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장우보는 일본 유학 중 또 다른 기이한 경험도 했다. 중국 대사관으로부터 “자비로 장기 유학을 떠난 공산당원은 일시적으로 ‘탈당 처리’를 하고, 귀국 후에 다시 복당 신청을 하면 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이는 일부 당원들이 해외에 나가기 위해 비자 신청을 할 때는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다”라고 답한 뒤, 출국 후에는 오히려 “나는 공산당원”이라며 자랑하다가 외국 정부에 발각돼 추방당하는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중국 공산당의 ‘신분 은폐 후 복당’ 방식은 자국의 당규에 정면으로 위배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는 이중 기만 행위로 비쳐지고 있다.
미국 세관의 인식: “공산당원 = 범죄자”
1995년, 장우보는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세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온 백인 이웃을 알게 됐다.
그는 왜 비자 신청서에 “공산당원 여부”를 묻는 조항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웃은 “공식 서류에 적힌 표현은 점잖게 에둘러 쓴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훨씬 직설적으로 기록돼 있다. ‘미국은 범죄자, 공산당원, 마약 밀수범의 입국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식이다”라고 답했다.
이 대화는 미국 세관 관계자들의 눈에 ‘공산당원’이 곧 범죄자, 밀수범과 같은 급으로 취급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퇴출되는 공산주의 상징
공산주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2015년, 우크라이나는 ‘탈(脫)공산주의법’을 통과시켜 공산주의 시대의 모든 상징물—동상, 구호, 지명 등을 철거하거나 변경하도록 했으며, 우크라이나 공산당도 공식적으로 해산됐다.
2025년 7월 17일, 체코의 페트르 파벨 대통령은 공산주의 선전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은 나치와 공산주의를 동일선상에 놓고,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거나 증오를 선동하는 운동을 지지·선전할 경우 최대 5년, 조직적인 활동일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2025년 9월 10일에는 네팔에서 반(反)공산 정권 투쟁이 발생했다. 시위대가 공산당 사무실로 추정되는 건물을 점거해 내부 집기를 불태우는 영상이 공개됐다. 특히 한 남성이 시진핑 초상화를 들고 카메라 앞에서 분노를 쏟아낸 뒤, 이를 불길 속에 던지는 장면이 포착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는 시진핑 초상화가 공개적으로 불태워진 첫 사례로 기록됐다.
동유럽과 구소련 지역, ‘레닌·스탈린상 붕괴’
구소련 해체와 함께 동유럽 각국에서도 공산주의 상징물 철거가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는 2013년 ‘유로마이단’ 시위 이후 레닌 동상 철거 물결이 본격화됐다. 2014년에는 하르키우의 초대형 레닌상이 무너졌으며, 2016년 자포리자에서는 20미터에 달하는 레닌 동상이 철거되는 장면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아르메니아, 루마니아, 몽골, 발트 3국, 폴란드, 헝가리 등에서도 거의 모든 레닌 동상이 철거됐고, ‘레닌’의 이름을 딴 도로나 광장 역시 잇달아 개명됐다. 이들 국가에서 레닌 동상은 피비린내 나는 억압과 점령의 상징이었으며, 동상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과거와 단절하려는 가장 분명한 선언이었다.
스탈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56년 헝가리 10월 혁명 당시, 분노한 시위대는 부다페스트 도심에 세워진 25미터 높이의 스탈린 동상을 끌어내렸다. 시위대는 두꺼운 강철 와이어를 동상 목에 걸고, 절단 장비로 구두 부분을 잘라낸 뒤 거대한 동상을 끝내 무너뜨렸다. 역사적 사진에는 스탈린상이 산산조각 나는 장면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결론
중난하이가 ‘공산당원’이라는 명칭의 악명을 모를까? 물론 잘 알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두 가지 증거가 있다.
첫째,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내세운 이유다. 중국 공산당은 만약 홍콩을 중국 본토와 동일한 체제로 강제 통합한다면, 홍콩은 물론 국제사회도 이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손해가 크다는 사실을 알았다.
둘째, 중국 공산당의 공식 이념은 마르크스주의다. 중국 내에만 1400여 개의 마르크스주의 학원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이미지를 포장하고, 통일전선, 침투 활동을 벌일 때는 ‘마르크스 학원’이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못하고 대신 ‘공자학원’이라는 간판을 걸어 전 세계에 확산시켰다.
그러나 중난하이가 ‘공산당원’의 평판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국민을 기만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 또한 두 가지로 드러난다.
첫째, 모든 체제 내 인원들에게 근무지에서 공산당 배지를 착용하도록 요구하며, 이를 ‘공산당원 신분을 드러낸다’는 미명 아래 강요한다.
둘째, 중공의 각종 기념일이나 교육행사 때마다 ‘입당 선서 재확인’과 같은 충성맹세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한다.
결국 공산당의 이름은 앞으로도 계속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기만당한 중국인들 또한 한동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장우보가 깨달은 바와 같이 “공산당원은 부정적 의미였다”는 이 말은 머지않아 전 중국인들의 공통된 인식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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