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보수의 아성이었던 미국이 반세기 만에 뒤집힌 이유
유럽 사상 침투, 60년대 격변, 그리고 트럼프의 문화 전쟁과 한국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현대 민주국가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나라로 꼽혔다. 종교적 신앙과 전통적인 가족 관념, 그리고 헌정 공화주의가 국가 정체성의 중심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대학 강의실과 언론사 편집국, 영화와 드라마 속 무대를 주도하는 것은 서유럽식 진보주의와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불과 반세기 만에 미국의 정신적 좌표가 근본적으로 뒤집힌 셈이다.
이 변화는 단일 정권의 정책이나 시대적 우연이 빚은 결과가 아니었다. 100년에 걸친 문화적 이주와 사상의 침투, 그리고 이를 흡수한 지식인의 세대교체가 만들어낸 장기적 변화의 산물이었다.
유럽 사상, 대서양을 건너오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군사·경제력뿐 아니라 학문과 문화 영역에서도 세계로 문호를 활짝 열었다. 냉전기의 직접적인 경쟁자는 소련이었지만, 미국이 승부의 핵심으로 본 것은 무기와 군함이 아니라 사상과 문화였다.
정부와 민간 재단, 대학, 언론은 ‘자유세계의 가치’를 확산시키겠다는 명목으로 해외 학문과 인재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유럽 좌파 사상 역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왔다.
1958년 제정된 ‘국가방위교육법’은 그 전환점이었다. 겉으로는 소련에 맞서 외국어·지역학·국제관계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실제로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팽창과 해외 학자 초빙으로 이어졌다. 포드, 록펠러, 카네기 재단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컬럼비아대 국제문제연구소, 시카고대 사회사상위원회 등 학문 거점을 세웠다.
이들이 가져온 사상은 전통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전후 유럽 특유의 ‘비판과 해체’의 철학이었다. 사르트르와 카뮈의 실존주의는 신과 헌법이 세운 도덕 질서에 의존하던 미국 사회에 “의미 없는 세계에서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라”는 문화적 충격을 던졌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대중문화 상품이 사람들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순응하게 만든다고 보았으며,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문화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레비스트로스와 데리다의 구조주의·탈구조주의는 절대적 진리나 신과 같은 권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지식과 권력이 얽혀 있는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람시의 신마르크스주의는 ‘문화 헤게모니’ 개념을 내세워 교육과 언론 장악이 권력을 얻는 핵심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와 캘리포니아 대학 시스템은 이러한 사상이 뿌리내리는 교두보가 되었고, 《뉴욕 리뷰 오브 북스》와 《애틀랜틱》 같은 매체가 이를 대중 이론으로 정리해 확산시켰다. 냉전기 미국이 의도치 않게 들여온 이 사상적 토대는 훗날 문화 좌경화의 토양이 되었다.
거리의 함성과 강의실 점령
1960년대 미국은 사상과 제도가 현실 속에서 폭발한 시기였다. 민권운동, 반전운동, 여성해방운동이라는 세 갈래의 거센 흐름은 정치 개혁을 넘어 사회의 가치 체계를 재편했다. 민권운동은 ‘기회의 평등’을 넘어 ‘결과의 평등’으로 나아갔고, 명문대들은 소수 인종 비율을 높이기 위해 ‘평등 조치(Affirmative Action)’를 도입했다.
반전운동은 대학 캠퍼스를 정치 전선으로 만들었으며, 1968년 컬럼비아대 점거 사태는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며 언론의 지지를 받았다. 여성해방의 물결은 학문과 정책의 지형을 크게 바꾸었고, 1970년대 말에는 대학 내 여성학 프로그램이 300개를 넘어섰다.
이 시위의 주역들은 훗날 교수, 언론인, 작가로 성장해 자신들의 세계관과 언어를 제도권에 이식했다. 변화는 거리에서 시작돼 강의실에서 제도화되었고, 이후 문화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레이건 시대의 역설 : 정치는 우향, 문화는 좌향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세금 감면과 소련 압박을 통해 정치·경제 분야에서 보수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문화와 교육 분야는 여전히 좌파 진영이 장악하고 있었다. 1960년대 좌파 성향의 학생들이 교수로 성장해 대학 인사권을 쥐었고, 언론과 할리우드, 그리고 대형 재단의 자금도 좌파 쪽이 압도했다. 정치적 승리는 있었지만, 문화권력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대도시는 좌파 성향의 다문화주의를 한층 강화했다. 반면 중서부와 남부 등 공화당 기반의 보수 성향 주들은 종교와 가족을 중시하는 가치를 지켜왔다. 여기에 대형 재단의 장기적인 자금 지원과 인재 채용 과정에서의 정치 성향 선별이 더해지면서, 좌파 문화권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인터넷 시대의 오판과 가치의 공백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이들이 국경과 시차를 넘어 토론하는 열린 광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양한 목소리가 교차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합의와 창의적 해법이 탄생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SNS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만 반복적으로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점점 같은 생각만 되풀이되는 ‘폐쇄된 방’ 속에 갇히게 되었다.
이 정보 환경 속에서 정치 진영은 점점 더 강하게 한쪽으로 치우쳤다. 자신의 생각이 옳고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믿음이 절대 기준처럼 자리 잡으면서,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은 금세 ‘이탈자’로 낙인찍혔다.
내부 비판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토론보다는 자기 확신만 강화되는 분위기가 굳어졌다. 그 결과 스스로를 돌아보고 현실에 맞게 생각을 조정할 기회는 줄어들었으며, 실제 상황과 동떨어진 주장만 늘어났다.
한편, 2007년부터 2021년 사이 무종교 성인의 비율은 16%에서 29%로 급증했다. 교회가 공동체 도덕의 중심이던 미국에서 그 빈자리를 젠더 유동성과 정체성 정치가 채우게 되었고, 세대 간 가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미국과 서유럽, 그리고 한국
서유럽은 오랜 세속화와 사회민주주의 전통 속에서 서서히 좌향했지만, 미국은 불과 수십 년 만에 급변했다. 한국 역시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종교와 가족 중심의 가치관이 사회를 지탱했으나, 2000년대 이후 서구의 좌파 담론이 급격히 유입됐다.
미국이 1960년대 민권·반전·여성운동으로 가치 전환을 겪었다면, 한국은 2010년대 촛불집회, 미투 운동, 젠더·환경 의제 확산을 통해 유사한 변화를 경험했다. 대학·언론·문화계의 가치 성향도 좌파로 기울었으며, 인터넷과 SNS는 양 진영의 ‘폐쇄된 방’을 고착화시켰다. 미국에서 나타난 ‘종교 약화 → 가치 공백 → 정체성 갈등 확대’라는 흐름이 한국에서도 점차 뚜렷해졌다.
트럼프의 문화 전쟁과 한국 보수의 과제
미국 보수 진영은 이제 문화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정치적 승리도 공허하다고 판단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임기 동안 이를 뼈저리게 체감했고, 2기에는 교육·문화 정책을 경제와 외교에 버금가는 핵심 과제로 끌어올렸다.
구체적으로는 대학 내 좌파 사상 확산과 학내 점거 행위 차단, DEI(다양성·형평·포용) 정책 폐지, 전통적 성별 규정 회복, 기술·제조업 중심 교육 확대 등이 포함됐다.
반면, 한국 보수 정치권은 여전히 경제와 안보 현안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뚜렷하며, 문화·교육·언론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장기 전략은 미흡한 상태다. 이로 인해 미국이 이미 겪었던 ‘정치에서 이기고도 문화에서 지는’ 상황을 되풀이할 위험이 상존한다.
문화 전쟁은 정치보다 길고 깊다
프랑스 사상가 토크빌은 “과거에서 배울 수 없다면, 사람들은 어둠 속을 헤매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 미국은 그 어둠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으며, 한국 역시 비슷한 기로에 서 있다. 정치에서의 승패가 단기간에 일어나는 파도라면, 문화 전쟁은 세대를 이어 흐르는 깊은 물줄기와 같다.
미국의 사례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문화와 교육의 기반이 바뀌지 않으면 정치적 승리는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쉽게 무너진다. 한국 정치도 이미 그 사실을 뼈아프게 겪지 않았는가. 선거에서의 승리가 잠시의 정권 교체로 끝날지, 아니면 사회의 흐름을 바꾸는 문명적 전환으로 이어질지는 결국 문화의 힘에 달려 있다.
한국 사회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어떤 문화적 방향을 설정하느냐에 따라, 미국과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전혀 다른 길을 열어갈 수도 있다. 그 선택은 정치권만이 아니라 언론, 교육, 예술, 시민사회가 함께 세우는 장기적이고 치밀한 문화 전략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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